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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늘이 보고 싶다
[이정훈의 옥중서신] 왜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가?
기사입력: 2021/06/04 [22:2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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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17일째.


5월 30일 일요일 오전이다. 국정원 조사는 마무리 단계이다.

일반사건의 조사 기간은 경찰 조사 10일, 검찰 조사 10일 합쳐서 20일인데, 유독 국가보안법 사건은 국정원(경찰) 조사 20일, 검찰 조사 30일이다. 조사 기간만 무려 최장 50일이다. 긴 조사 기간 자체가 고문에 가깝다.

갑자기 하늘이 보고 싶다. 평소 한 번 쳐다보지도 않던 하늘이 왜 보고 싶을까. 구치소와는 다르게 유치장은 ‘창’이 없다. 사방이 막혀 굴 같다. 운동시간도 따로 없다. 조사실도 창이 없다. 사람이 하늘을 오래 못 보면 하늘도 그리워진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오늘 오후에는 향린교회 주관으로 여기 종로서 앞에서 나의 ‘무죄 석방 거리기도회’를 열고 면회를 오신다니, 다시 국가보안법 철폐 연대 인사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다. 너무나 고마운 벗들 동지들이다.

오늘은 국가보안법 이야기 두 번째로, 왜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가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공안 당국은 입만 열면 ‘국가 안전’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이야기하는데, 국가보안법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이자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다른 말로 ‘일반민주주의’ 또는 사회과학적으로 ‘부르죠아 민주주의’라고 한다. 모두 유사한 개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유럽 민중들이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봉건적 신분제를 깨고 쟁취한 주권재민의 근대시민사회 구조(공화정)와 원리를 말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모든 권력은 왕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리’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헌법 1장 1조의 내용이며 세계 여러 나라 헌법의 기본정신이다. 이 주권재민의 원리를 구현한 형태, 형식이 의회주의와 선거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또 다른 핵심 가치는 ‘사상의 자유 원칙’이다. 모든 권력의 주인인 국민의 다양한 사상, 견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주권재민의 원리가 내용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선거를 많이 해도 국민들의 요구와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따라서 ‘주권재민’과 ‘사상의 자유’ 원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두 개의 마차 바퀴이다.

그러면 ‘사상의 자유’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양심의 자유가 주로 개인 내면의 가치 판단과 견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자유라고 한다면, 사상의 자유는 반대로 개인의 생각과 견해를 밖으로 드러내는 자유이다. 표현하지 않는 이불 속 나만의 생각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도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상의 자유’는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동반한다.

사상이란 철학적으로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 관점, 입장, 태도를 의미한다. 즉 같은 사물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다른 견해와 입장을 갖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사상의 자유의 기본 내용이다. 또 이것을 강제로 억압하거나 힘으로 탄압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상의 자유 실현의 기본 원칙이다.

단, 예외적으로 어떤 사람의 견해와 사상이 테러, 살상, 폭파와 같은 ‘명백히 현존하는’ 위협으로 될 경우에는, 그것을 법이 미리 정한 항목, 즉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그 ‘행위의 결과’를 규제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보조 원칙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일반적 사상과 견해 자체를 미리 예단하며 처벌하는 ‘사상의 자유’ 제한과 금지 규정은 근대법에 없다.

사상의 자유를 표현하는 다양한 형태가 바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학문, 예술, 종교의 자유 등이다. 만약 생각하고 표현하는 사상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알맹이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선거…등의 자유는 형식과 껍데기에 불과하게 된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속 없는 만두’이다. 탄산이 없는 김 빠진 사이다이다.

‘사상의 자유’ 문제가 맑스주의, 주체사상 등 추상적 운동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우리 일상생활을 규정하는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문제이다.

자, 구체적으로 국가보안법 문제로부터 제기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 관점, 입장, 태도’의 문제, 즉 북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을 예로 들어보자.

Ⓐ견해: 국가보안법이 보는 북에 대한 규정은 ‘반국가단체’이다. 따라서 적이며 섬멸대상이라는 입장과 태도를 취한다.

Ⓑ견해: 헌법과 세계시민, 일반 남한국민의 상식적 견해는 북은 당연히 ‘국가’이다. 따라서 평화통일의 상대이며, 공존과 통일 그리고 교류협력의 대상이라는 입장과 태도를 일반적으로 취한다.

Ⓐ가 과거지향적이고 파괴적이며 반헌법적 견해라면 Ⓑ는 미래지향적이며 화해 협력적, 통일 지향적 견해이다. 여하간 사람들은 Ⓐ와 Ⓑ 모두 자기 견해로 선택하고 표현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의 견해와 입장을 처음부터 원천적으로 강제적으로 전면 부정하는 법이다. 북을 반란단체로 규정하고 모든 북한 주민을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관점에 서면 북한 바로 알기는 ‘반국가단체 바로 알기’로 되며 북한 주민과의 교류와 만남은 공작원, 간첩과의 회합, 통신으로 된다. 국가보안법 자체가 Ⓑ의 견해를 힘으로 강제로 원천 부정하는 관계에 있다. 토론하는데 줄 풀린 도사견이 어슬렁거리는 것과 같다.

헌법이 정한 평화통일을 하려면 북을 통일의 상대로 연구해야 하며, 북을 연구하려면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노동신문, 북 사회과학원 공식 출판자료들을 제대로 연구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구에 북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다양한 견해가 있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이것을 ‘이적표현’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정치토론과 학술 향연으로 처리할 일을 상식 이하의 전근대적 법으로 밥상을 걷어차고 발언자의 목을 비트는 만행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 법이 있는 한 한국사회는 아무리 경제적 물질적 부가 늘어나도 민주주의가 꽃 필 수 있는 사회로 나갈 수 없다.

민주주의가 정착한 어떤 나라도 사회주의, 주체사상, 맑스주의, 북한, 중국에 대해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것을 결코 법으로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그것은 근대 시민혁명이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원천 부정하는 전근대적 야만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일반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아직 자유민주주의조차 완성치 못한 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적 기초로부터 더 발전된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데,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한국은 결코 완성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진보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나라 합리적 보수, 합리적 민주주의자들이 추진해야 할 미완의 시민혁명적 가치이다. 만약 헌법 위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된다면 나는 비로소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가 성립되었다고 판단한다.

내가 쓴 책 ‘주체사상 에세이’와 공저로 쓴 ‘북 바로알기 100문100답’은 어디 국제적으로 말하기도 민망스러운 ‘이적표현물’이 아니라 ‘통일표현물’이다.

분단체제의 경직성으로 국가가 할 일을 민간연구단체에서 한 것을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이적표현물로 탄압하니 한국 민주주의 수준에 한숨만 나온다.

촛불투쟁으로 등장한 현 정부가 국가보안법 하나 폐지할 의지와 능력이 없이, 오히려 이 법으로 진보 민주 세력을 탄압하니 이 정부를 ‘민주정부’로 부를 수는 없다.

민주나 진보는커녕 ‘합리적 보수’ 수준에도 자격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의 간판을 단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이다. 이 나라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이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다음주에는 서울구치소로 이감갈 것 같다. 다음주에는 공안당국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전략’의 허구성에 대해서 논할 예정입니다.

2021. 5. 30. 종로서
이 정 훈

ps 바쁜 시간 면회와 석방기도회에 나오신 분들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힘쓰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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