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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을 단죄한다
[이정훈의 옥중서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고무신 같은 법"
기사입력: 2021/06/03 [22:5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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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 5월 14일 체포 구속된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의 옥중서신을 싣는다. <편집자>


조사 14일째.


체포되어 조사 받은 지 14일째, 5월 27일 새벽 종로서 유치장이다.

나는 공안기관이 나와 동료들의 정당한 학술활동과 통일운동을 간첩사건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이미 실패하고 있으며, 저들이 적용한 ‘회합통신죄’와 나의 ‘통일표현’ 저작물을 이적표현물로 둔갑시킨 ‘고무찬양’ 시도도 모두 실패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묵비권을 행사하여 이 사건에 대해 진술한 바가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분노가 점차 쌓여감을 느낀다.

국정원과 안보수사대가 수사에서 인권보장과 적법한 수사절차를 새삼 강조하는데 쓴 웃음이 난다. 그들이 말하는 인권수사 속에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고문수사, 강제강압수사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와 피해자들의 눈물과 피가 묻어있고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희생에 내 청춘의 피도 섞여있음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공안수사당국이 이제야 ‘고문 강압 없는’ 인권수사를 강조해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전근대적 야만의 법이 존재하는 한, 이 법에 의한 태생적 원천적 인권유린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고문과 강압수사로 한 개인의 정당한 학술활동과 사상의 자유를 죽이는 것이나, 분단안보논리의 조악한 논리적 비약과 조작과 침소봉대로 고문보다는 다소 부드럽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그것은 본질에서 차이가 없는 인권유린이기 때문이다.

그러리라 짐작은 했지만 새삼 놀랄 것도 없이 이들의 수사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개인의 ‘사상의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일반 사건의 초기 수사의 기본은 그 사건에 대한 피의자의 내적인 동기와 원인을 찾는 것이다. 왜 그 사람이 그런 책을 썼는지, 왜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지 밝히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이 사건 수사의 지향점은 내가 아니라, 처음부터 ‘북’이다. 나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어떻게 북으로부터 흘러나와 연결되었는가를 인위적으로 구성할 뿐이다.

이 수사에서 나는 독자적으로 자주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며, 늘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이상한 존재가 된다. 이 조악한 국가보안법의 논리를 성사시키기 위해 논리적 비약과 조작은 필연이다.

국가보안법 사건에 ‘사상의 자유’와 ‘만남과 교류의 자유’라는 개념이 설 자리가 아예 없다. 이들은 내가 ‘주체사상’을 논하는 것과 통일운동과 북 바로알기에 대해 논하는 것이 ‘사상의 자유’에 속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모른다.

민주질서를 파괴하는 자가 바로 본인들이라는 것을 모른다.

수사의 전제와 원리가 처음부터 잘못 구성되었다는 것 자체에 대한 생각이 없다.

국가보안법은 한마디로 ‘웃기는 법’이다. 아니 법의 이성적 체모를 갖추지 못한, 법의 자격이 없는 법 아닌 법이다.

이 법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고무신 같은 법이며 궁색한 법인지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하려 한다.

오늘은 첫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란단체(반국가단체)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이 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정부를 참칭(임의로 부름)한 반국가단체이며, 북한 주민 2,500만은 반국가단체 수괴의 지령을 받는 ‘반국가단체 구성원’들이라고 한다. 무려 2,500만명의 반국가단체 구성원, 세계 최대이다. 국가보안법의 모든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이들 북한동포들을 만나는 것은 반국가단체 구성원, 즉 간첩이나 북한 공작원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쉽게 포장된다.

우리나라 헌법4조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북을 통일의 상대로 보고 있다. 남한의 역대 통일방안도 당연히 북을 국가로 인정하는 ‘연합제’ 방식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북을 국가로 인정하고 UN도 북을 국가로 인정하는데 유독 국가보안법은 북을 국가나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법이다. 냉전시대의 낡은 섬멸적 반공논리에 기초한 ‘극한대결 법’이다.

이 법은 면면히 이어온 통일운동 역사와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선언들을 비웃고 있다. 이 법은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 선언, 10.4 선언, 4.27 판문점선언을 법리적으로 부정한다. 사형대상으로 명시한 반국가단체 수괴와 무슨 합의를 하는 것 자체가 이 법에 의하면 ‘이적행위’로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상회담을 많이 해도 이 법이 있는 이상 모두 공염불 선언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비상식적 법이 왜 아직도 살아남아 판을 치는가? 응당 사라져야 할 법이 폐기되는 대신에 도리어 살아 숨 쉬게 만든 법이 바로 ‘남북교류협력법’이다. 이 법은 국가보안법의 친동생이다.

이 법은 친형 국가보안법의 악역을 합법적으로 가리는 ‘시다바리’ 역할을 기본으로 하는 법이다. 반공멸공 분단체제라는 아버지가 낳은 한 몸에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같은 형제 법들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 남북교류를 하는 것은 모두 법률상 불법이다. 이른바 정부의 ‘통치행위’라는 것도 법에 기반한 것이지 법을 무시한 정치행위는 그 자체가 불법이다. 법은 정부나 민간 개인이나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북교류협력법’의 탄생이라는 묘수에 따라 이제 남북 당국 간 회담, 정상회담은 ‘내로남불’의 궁지에서 겨우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남북교류협력법이 정상일리 없다. 태생부터 형 국가보안법의 악행을 보완하려고 만들어진 ‘모지리 법’, ‘시다바리 법’이기 때문이다.

이 법이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나 진정한 통일지향의 남북교류를 위한 법이 아니다. 오히려 남북교류를 통제하고 독점하기 위한 법으로 기능을 한다. 평화통일을 하려면 민간의 정치, 정당 교류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이 법에는 의도적으로 정치분야 남북교류 항목 자체가 없다. 정치교류도 문화교류로 제한하고 있다.

이 법은 북을 합법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하나의 ‘북’이라는 실체에 대해 전혀 상반된 두 개의 법리가 한 국가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세계 법학자들이 신기해하는 이상한 나라의 법이 이들 법이다.

국가보안법이 위헌이라는 것은 사실 국내 법학자들도 잘 알고 있다. 단, 한정적 합헌(위헌의 요소가 있으나 그래도 합헌이라는 기이한 논리) 이상을 이야기할 용기 있는 법학자들이 없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서로 법리가 공존할 수 없는 두 법이 어떻게 적용되어 춤추는지 보자.

북에 사는 ‘철수’가 남에 사는 ‘영희’를 어느날 북경 또는 서울에서 통일부 사전승인 없이 만났다고 가정해보자.(반대로 남에 사는 영희가 철수를 평양에서 만나도 마찬가지다).

자 이 불법 만남에 어느 법을 적용할 것인가? 적용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는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적용하면 이 만남은 무려 10년 이하 징역을 살아야 한다. 실제 많은 남한 사람들이 이렇게 징역을 살았다.

남북교류협력법 상 사전접촉신고 위반으로 다루면 이것은 300만원 이하 과태료 또는 3년 이하 3천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법리가 상반된 두 법의 적용은 공안당국과 정부 마음이다.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면 철수가 영희를 왜 만났는지 묻지도 따질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영희는 ‘반국가단체 구성원’을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 불문 만남 자체를 불법으로 여긴다.

교류협력법을 적용하면 철수와 영희가 왜 만나서 무슨 행위를 잘못했는지 최소한 따져 적용해야 한다.

만약 진보 통일운동 하는 사람이 철수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그것은 이유불문하고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로 적용할 것이 틀림없으며 그것이 통일운동을 탄압하는 피비린내나는 역사였다.

국가보안법도 교류협력법도 결국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인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남북 주민과 민족이 어떤 형태로건 접촉할 기회를 기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공안당국은 내가 반국가단체 구성원 ‘철수’를 만나 이른바 ‘이적표현물’들을 제작 유포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그들이 말하는 이적표현물을 제작 유포하고 있었다. 그가 반국가단체 구성원 ‘철수’라는 것도 공안당국의 일방적 추정과 주장일 뿐 그가 외국인인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역시 그가 철수인지 해외동포인지 알 길이 없다.

설사 그가 만약 ‘철수’라고 해도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나의 죄는 무엇인가?

나는 정당한 학문과 사상의 자유, 그리고 통일운동의 자유를 주장한다. 나는 나의 ‘무죄’를 법정에서 밝힐 것이다.

2021.5.27.
이 정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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