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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세계
정전상태와 준전시상태가 교차돼온 역사
[한호석의 개벽예감]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었던 급박한 상황들
기사입력: 2021/05/10 [12:3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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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었던 급박한 상황들

2.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

3.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

4. 1965년과 1975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5. 조선인민군에 ‘폭풍 5호’가 발령되었던 1979년

 

 

1.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었던 급박한 상황들

 

2015년 9월 1일 애쉬튼 카터(Ashton B. Carter)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세계 각국에 배치된 미국군 병사들과 화상담화를 진행했다. 화상담화에 참가한 해외 미국군 병사들 가운데는 판문점에서 군사복무를 하는 육군 일병 조너던 쏘머스(Jonathan Somers)도 있었다. 화상담화 중에 애쉬튼 카터는 쏘머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반도는 언제든지 쉽게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다. (중략) 우리는 언제든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미국 국방장관이 판문점에서 군사복무를 하는 미국 육군 일병에게 그런 말을 꺼내놓은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 화상담화가 진행되기 열흘 전인 2015년 8월 20일 군사분계선에서 일촉즉발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되었다. 2015년 8월 말에 전개되었던 급박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군 합참본부는 2015년 8월 20일 오후 3시 52분경 조선인민군 비무장지대 민경초소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총탄 1발이 한국군 비무장지대 감시초소로 날아왔다고 하면서 한국군 포병부대에 사격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한국군 포병부대는 조선인민군 민경초소 4개소 주변을 향해 155mm 자주포 36발을 집중사격했다. 주변을 향해 쏘았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북은 자기 지역으로 자주포를 사격한 한국군의 도발행동에 격분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앞으로 48시간 안에 대북확성기방송을 중단하고 방송기재들을 전부 철거하지 않으면 “즉시 강력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최후통첩”을 한국군 군방부에 보냈다.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비상확대회의를 긴급히 소집하여 대남공격작전계획을 검토, 비준했다. 2015년 8월 21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을 각 전투부대들에 하달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한국군도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를 취했다. 

 

초긴장상태에 빠진 미국도 부산하게 움직였다. 2015년 8월 24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군 고위사령관들과 전쟁기획자들은 북의 공격징후에 대처하기 위한 전쟁계획을 며칠 동안 검토했다고 한다. 2015년 8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는 전쟁계획을 검토하기 위한 공동작전기획단을 가동하였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2015년 8월 20일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된 이튿날 북에서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었다는 사실이다. 준전시상태는 전쟁이 임박한 상태를 뜻한다.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면, 조선인민군 지휘관들은 비상소집되고, 전투원들은 임의의 시각에 전투를 개시할 수 있도록 완전무장을 하고 갱도진지로 들어가 공격준비를 완료하게 된다. 또한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면,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는 완전무장을 하고 결전태세에 돌입하고, 전체 인민들은 공습대피훈련과 등화관제훈련에 참가하고, 모든 차량은 징발된다.  

 

북의 준전시상태는 2015년 8월 21일에 처음 선포된 것이 아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오늘까지 북에서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가 전환되었던 급박한 상황을 시대별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968년 1월 

북은 조선 영해를 침범한 미국 첩보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직후, 미국의 북침전쟁위협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이 유혈충돌한 판문점사건이 일어난 직후, 북은 미국의 북침전쟁위협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1983년 3월

북은 평양점령을 상정한 새로운 공중-지상전 전략에 따라 미국이 감행한 북침전쟁연습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1993년 3월 

북은 새로운 선제핵타격계획에 따라 미국이 감행한 북침전쟁연습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2015년 8월 

군사분계선에서 한국군의 포격으로 촉발된 무력충돌위험에 대처하여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준전시상태보다 더 엄중한 상황은 전시상태다.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전시선포를 하는 것은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다르다. 선전포고를 하고 개전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통용되었던 낡은 전쟁방식이다. 현대전쟁에서는 선제타격을 하는 쪽이 승리하게 되어 있으므로, 어떤 나라도 의회에서 선전포고를 의결하고 나서 개전하지 않는다. 당연히 북도 전쟁을 결심하는 경우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개전할 것인데, 적의 전략거점들에 대한 선제타격을 개시하는 것과 동시에 전시를 선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은 북측 외부에 전시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북측 내부에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에서는 북이 전시를 선포했다는 사실을 즉각 알 수 없다.  

 

 

2.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

 

북은 어떤 상황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어떤 상황에서 전시를 선포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2013년 8월 22일 <동아일보>가 입수해 보도한 북의 ‘전시사업세칙’ 요약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의 ‘전시사업세칙’은 2004년 4월에 제정되었고, 2012년 9월에 개정되었다. 북은 ‘전시사업세칙’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과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을 각각 규정했다.  

 

우선 북은 어떤 상황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지 살펴보자.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적대세력이 최고존엄을 모독하였을 때 

 

2) 적대세력이 전선과 해상에서 군사도발을 감행했을 때 

 

3) 적대세력이 북의 최고리익을 침해하는 도발을 감행했을 때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적대세력이 북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것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여 대처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다.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의 시각에서 보면, 수령을 모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악독한 적대행위로 된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면, 탈북자단체가 미국의 지령에 따라 북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대북전단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보내는 것은 북의 격분을 유발하는 적대행위가 아닐 수 없다. 2021년 4월 25일부터 29일까지 기간에 경기도 북측 지역과 강원도 북측 지역에서 반북전단 50만장을 대형 풍선 10개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보낸 탈북자 박상학의 행동은 북의 격분을 유발한 적대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남측의 실정법을 공공연히 위반하면서 반북전단살포를 감행하여 남북무력충돌을 불러일으키려고 광분하는 악질범들을 엄벌에 처하고, 그들의 대북적대행위를 근절해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두 번째로 엄중한 상황은 미국군사령관이 지휘하는 한미련합군이 ‘평양점령’과 ‘참수작전’을 상정한 도발적인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군은 2021년 3월 8일부터 19일까지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북의 거듭되는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북침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했다. 그것은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대북적대행위였다. 그러므로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여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한미련합군의 대북적대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위와 같은 맥락을 살펴보면, 올해 들어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대북적대행위가 벌써 두 차례나 감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고 해서, 무력충돌위험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요즈음 한반도 정세는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상황에 버금갈 만큼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되었다.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이후 무력충돌위험이 단계적으로 고조되는 과정에 전시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미처 알지 못한 시각에 전시를 선포할 수 있다. 현재 한반도에 조성된 심각한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3.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것은 개전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전은 무력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군사행동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북이 통일방도의 하나로 제시한 무력통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국가분렬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두 가지 방도는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분단국가는 이 두 가지 통일방도를 추구한다. 이를테면, 조선과 중국은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분단국가들이다. 예맨과 기쁘로스도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분단국가들이다. 

 

평화통일은 통일협상에 의해 실현되고, 무력통일은 통일전쟁에 의해 실현된다. 분단국가에서 통일세력과 분렬세력이 통일협상을 성사시키는 경우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지만, 분렬세력이 통일협상을 끝내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사의 경험을 보면, 분렬세력이 분단고착화책동을 자진하여 포기하고 통일협상에 호응한 사례는 없으므로, 평화통일은 비현실적인 방도이고 무력통일은 현실적인 방도라고 말할 수 있다.  

 

분렬세력이 통일협상을 거부하고 분단고착화책동에 광분하면, 통일세력이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을 성사시키는 수밖에 없다. 통일협상을 거부하고 분단고착화책동에 광분하는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을 성사시키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조국통일의 길이다. 평화통일을 반대하면서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무력통일은 통일협상에 의거한 평화통일을 실현할 통일국가건설의 방도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통일협상에 의거한 평화통일과 분렬세력을 제압하는 무력통일이 상호모순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1953년 정전 이후, 북은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에 의거하여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통일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의 시각으로 보면, 무력통일과 평화통일은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하나의 연속적인 진전과정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의 시각으로 보면, 전시를 선포하는 것은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을 성사시켜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북은 어떤 상황에서 전시를 선포하게 되는지 살펴보자.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미국과 남측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되거나, 북에 무력침공을 감행했을 때 

 

2) 남측의 애국력량이 북에 지원을 요구했을 때 

 

3) 국내외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을 때 

 

4) 미국과 남측이 국부지역에서 일으킨 군사도발행위가 확대되었을 때 

 

위에 열거한,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들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국내외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을 때 북이 무력통일을 실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전시사업세칙’에 서술된 바에 따르면, 국내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다는 말은 남측에서 그런 국면이 조성된다는 뜻이고, 국외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다는 말은 국제정세에서 그런 국면이 조성된다는 뜻이다. 양자를 구분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4. 1965년과 1975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북이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한 적이 있었던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미국의 우드로우 윌슨 국제학술쎈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가 발굴하여 2012년 5월 16일에 공개한 역사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역사자료는 평양 주재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대사 브리(Brie)가 동베를린에 있는 사회주의통일당(SED) 외교담당 비서 겸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제1외무상 헤겐(hegen)에게 1967년 12월 8일에 보낸 비밀전문이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조선의 지도부가 생각하는 세 가지 민족문제해결방안”은 “남조선 인민들이 대규모 혁명봉기를 일으키는 것”과 “박정희를 반대하는 군부세력이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것”과 “미국이 남조선정권을 지원해주지 못할 만큼 국제정세가 악화되는 것”인데, 첫 번째 해결방안과 두 번째 해결방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북은 세 번째 해결방안에 노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비밀전문에 서술된 세 번째 해결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비밀전문이 작성되었던 1967년은 북이 세 번째 해결방안을 실현할 수 있는 국제정세가 조성되었던 시기였다. 당시 국제정세를 보면, 미국은 남측 정권을 지원해주지 못할 만큼 깊은 수렁 속에 빠져있었다.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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