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없다
건국대학교
광고
광고
광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편집  2021.05.11 [01:36] 시작페이지로
강대석의 <철학산책>
개인정보취급방침
사람일보소개
광고/제휴 안내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HOME > 강대석의 <철학산책> >
HOME > 강대석의 <철학산책>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강대석의 <철학산책>
18세기 프랑스 최대의 유물론자 돌바크
[강대석 철학자의 철학산책] 유물론 강의 33
기사입력: 2020/12/15 [00:30] 최종편집: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33. 18세기 프랑스 최대의 유물론자 돌바크

▲ 돌바크     ©사람일보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가장 철저한 무신론자이며 유물론자인 돌바크(P. Th. Holbach, 1723-1789)는 프랑스 국경에서 멀지 않는 독일 아이데스하임(Eidesheim)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세무관리였고 아버지는 하층 귀족이었다. 돌바크의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에 별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가 일찍 죽자 돌바크는 고아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다행이 파리로 이민을 간 삼촌이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프랑스 국적을 획득했으며 그 덕분으로 귀족 칭호까지 얻었다. 이 삼촌이 12살 된 돌바크를 파리로 데려갔다. 돌바크는 파리에서 귀족신분에 어울리는 교육을 받았고 상류사회에 드나들면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돌바크는 삼촌 덕분으로 귀족 칭호에 사용되는 드(de)를 성 앞에 붙여 돌바크(d'Holbach)라 불렸다. 파리에서 교육을 마친 돌바크는 네덜란드의 라이덴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 유럽에서 종교적 규제를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웠던 이 대학에 자유사상을 가진 이웃나라의 학생들이 많이 유학을 왔는데 돌바크는 영국에서 온 학생들과 친하면서 영국의 진보적인 철학을 알게 되었다. 특히 로크의 감각주의 인식론이 그의 사상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많은 지식을 습득한 후 돌바크는 1749년에 26세의 나이로 파리에 돌아왔다.
 
1753년에 삼촌이 사망하자 돌바크는 삼촌의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으며 그 재산으로 파리와 파리의 교외에 화려한 저택을 마련하였다. 당시 프랑스에는 절대주의와 그 이념적 지주인 종교를 비판하는 많은 저서들이 쏟아져나와 시대의 분위기를 주도하며 사회적 변화를 예고하였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1748), 볼테르의 『쟈디그』(1747), 뷔퐁의 『자연의 역사』(1749), 투생의 『도덕론』(1749), 라메트리의 『인간기계론』(1748), 디드로의 『맹인에 관한 편지』(1749)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새로운 과학적·사회적 개념들을 항목별로 정리할 필요성이 나타났다. 이러한 과제를 맡은 사람이 봉건주의에 대항하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었고 그 대표자가 디드로였다.
 
▲ 디드로     ©사람일보
파리에 돌아온 돌바크는 디드로와 사귀는 행운을 얻었다. 디드로는 백과전서 출판에 동감하는 많은 지식인들을 모아 상호간의 의견 차이를 조정하였다. 처음에는 수동적으로 참여하였던 돌바크는 차츰 이 사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으며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살롱은 백과전서의 저술가들이 모여 철학적인 토론을 하는 본부가 되었다. 목요일과 토요일 밤의 모임이 로얄 쌩 로슈 가에 있는 돌바크의 집에서 30년 이상 계속되었으며 이 모임은 이 집에서 준비하는 독특한 저녁식사뿐만 아니라 급진적인 이념의 발상 때문에 유명하게 되었다. 이 모임에서는 잡담이 아니라 진지한 철학논쟁이 진행되었으며 이 모임에 흄, 기번, 아담 스미스, 벤자민 프랭클린 같은 국외의 명사들도 참여한 일이 있었다.

여기서의 논쟁을 토대로 돌바크 자신도 백과전서에 400개 이상의 항목을 기술하였다. 특히 돌바크는 독일의 자연과학적 저술들을 프랑스말로 번역하였고 그 일부를 백과전서에 싣기도 했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관심은 훗날 그의 철학 형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사람일보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강대석 유물론철학자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하여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독일사를 공부했고,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미학을 연구했다.


광주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독일어과 및 대구 효성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제헤겔학회 회원, 국제포이어바흐학회 창립회원이다.

 

주요 저서로는 『미학의 기초와 그 이론의 변천』(1984)을 비롯하여 『서양근세철학』(1985), 『그리스철학의 이해』(1987), 『현대철학의 이해』(1991), 『김남주 평전』(2004), 『왜 철학인가』(2011), 『왜 인간인가?』(2012), 『왜 유물론인가?』(2012), 『니체의 고독』(2014), 『무신론자를 위한 철학』(2015),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vs. 불꽃을 품은 철학자 포이어바흐』(2016), 『루소와 볼테르』(2017),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꿈꾼 유토피아』(2018), 『카뮈와 사르트르』(2019), 『철학으로 예술읽기』(2020), 『유물론의 과거와 현재』(2020)  등이 있다. 역서로는 포이어바흐의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2006)와 『기독교의 본질』(2008),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11) 등이 있다.

강대석 강대석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사람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강대석 / 유물론강의 / 돌바크 / 디드로] 18세기 프랑스 최대의 유물론자 돌바크 강대석 2020/12/15/
연재소개 전체목록
보수적인 엥겔스의 아버지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엥겔스
금강산도 식후경
포이어바흐와 사실주의 예술
포이어바흐가 지향하는 미래철학
『기독교의 본질』
인간 중심의 유물론
인간의 영혼은 불멸인가?
헤겔의 비판에서 출발한 포이어바흐
유물론의 계승과 발전
소시민적 지식인 칸트
독일관념론의 시대적 배경
프랑스혁명 이후의 서양철학
돌바크의 철학이 지니는 한계
돌바크의 사회철학
돌바크의 도덕론
돌바크의 유물론
돌바크의 기독교 비판
돌바크 『자연의 체계』에 들어있는 명문장
돌바크 주요저서 『자연의 체계』의 목차
오늘의사진
6.15 10.4 자주통일평화번영결의대회
많이 기사
  개인정보취급방침사람일보소개광고/제휴 안내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광고 대전 동구 동부로 55-58 603동 306호(판암동) ㅣ 전화 : (02)747-6150 ㅣ 전자우편:saram@saramilbo.com
등록번호 : 대전, 아00255 제호:사람일보ㅣ창간일: 2003년 6월 15일ㅣ발행·편집인 박해전ㅣ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해전
후원 : 하나은행 555-810120-77607 박해전
Copyright ⓒ 2003~2021 saramilbo.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 saram@saram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