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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인사건'과 '아람회사건'의 역사적 필연
식민과 분단을 마감하는 정의의 시간 조국통일이 다가오고 있다
기사입력: 2007/09/03 [00:3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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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아람동지회가 2007년 7월5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아람회사건\'에 대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인병문 기자

9월 3일. 이날은 96년 전 ‘105인사건’의 조작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그리고 26년 전 5공의 경찰 검찰 군 안기부 등 권력기관이 총동원돼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아람회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던 날이다.
 
역사의 순리와 역사의 정의
 
역사는 그 자체에 ‘순리적인 역사발전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역사의 순리라 하자) 그리고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다. (역사의 시공이라 하자.) 그래서 ‘잘못된 역사시간’을 거쳐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만난다.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거쳐 역사는 반드시 ‘사회변혁 또는 개혁의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진다.(역사의 정의라 하자)
 
우리 인간이 만든 역사시간 중 잘못된 역사시간을 우리는 역사의 정체기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변혁 또는 개혁과 혁명의 시간을 우리는 역사의 진보기라고도 한다.
 
역사의 순리를 가지고 보았을 때 1910년대 초 일제강점기의 ‘105인 사건’과 1980년대 초 전두환의 권력찬탈기 ‘아람회사건’은 상당히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105인사건'과 '아람회사건'의 닮은 점
 
첫째, 시기적으로 역사의 순리상 잘못된 역사시간에 두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105인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일제의 힘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라는 잘못된 역사시간에 놓여 있었고, ‘아람회사건’이 발생한 시간은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의 힘에 의한 민주정권 찬탈기라는 잘못된 역사시간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똑같은 사건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둘째, 두 사건은 본래 없는 사실을 권력자들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문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두 사건은 모두 최고 권력기관의 지시에 의하여 날조되었다는 점이다. ‘105인사건’은 일제의 조선총독부에서 조작지시가 내려졌고, ‘아람회사건’은 청와대와 내무부에서 조작지시가 내려졌다.
 
넷째, 두 사건 모두 한 달 이상 지속된 가혹한 고문에 의하여 조작되었고, 고문의 수법도 다양했다는 점이다.
 
다섯째, 날조된 사건의 연루자들은 한반도 역사를 당시 민족이 처한 잘못된 역사시간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을 통해 ‘정의로운 역사시간’으로 끌고가려 했다는 점이다. 곧, 105인사건 연루자들은 민족해방을 꿈꾸었고, 아람회사건 연루자들은 민족통일을 꿈꾸고 있었다.
 
여섯째, 대부분 서울이 아닌 지방에 주거지를 두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이 두 사건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1911년 9월 3일은 96년 전 일제식민기, 국권회복단체인 신민회의 주요 인물들이 일제 조선총독부 무단정치의 총본산인 남산의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제2헌병대에 불법으로 체포되어 구금되기 시작하는 날이다.
 
항일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사건
 
‘105인사건’이 조작되는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일제는 제국주의 군대를 동원하여 한반도를 일본 영토에 통합한다.(1910. 8. 29) 그리고 대한제국을 조선식민지로 격하시킨다. 때문에 일제에 의한 강제 ‘합방’은 국토의 강점이요, 주권의 강탈이다. 이 탓에 일제는 국내외로부터 조선통치의 정당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즉, ‘105인사건’이 일어난 1911~1912년은 ‘합방’ 직후 일제가 향후 조선을 자국의 ‘완전한 식민지’로 개편하기 위해 포악한 무단통치가 자행되던 시기이자, 국권 강탈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노와 반일감정이 고양되던 시기였다. 하여 일제는 무엇인가 식민통치 기반 확보와 일제 통치의 정당성을 인정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 정부 내부의 권력구조에 변화가 온다. 정권교체(1908. 7)와 ‘대역사건’의 조작이다. 비교적 자유주의를 표방하여 왔던 사이온 내각이 “일제의 조선침략을 비판하는 일본 사회주의세력을 방임했다”는 이유로 퇴각한다. 그리고 가쓰라 내각이 새로 들어선다.
 
가쓰라 내각은 집권하자마자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곧바로 ‘대역사건’을 조작한다.(1910. 5) 그리하여 고오도쿠 등 수백 명의 사회주의자들을 검거한 다음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문을 가하여 24명을 ‘천황암살모의대역죄’로 몰아서 기소한다.(1911. 1) 그리고 재판이라는 합법적 수단을 이용하여 고오도쿠 등 12명을 사형에 처한다.
 
일제의 본국이 이러할 때, 식민지조선에서도 비밀결사 신민회(1907~1911)의 활동이 포착되었다. 신민회는 ‘근대 시민의식 양성, 공화제 국가 건설’을 설립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고 이 목적 달성을 위하여 ‘점진적 국권회복’ 즉 ‘기회포착적 독립전쟁’을 주 전략으로 세우고 이 전략의 수행을 위하여 전술적으로 표면단체들을 통한 표면운동을 하고 있었다.
 
즉, 교육을 통한 자신(自新)운동, 언론ㆍ학술을 통한 자신운동, 그리고 경제를 통한 신민(臣民)운동, 전쟁을 통한 신민운동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식민통치 초기 통치기반을 확립해야 할 당면성에 놓여 있었다.
 
그리하여 일제 조선총독부는 통치기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본토에서처럼 ‘데라우찌암살음모미수사건’ 즉 ‘105인사건’을 날조한다. 데라우찌 총독의 암살음모계획은 애시당초 있지도 않았다.
 
즉, 평안도 일대 항일민족운동가들이 일제의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이 평안도 일대 순시 때(1911. 11. 28) 이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었다는 풍문만을 가지고 이 지역 항일민족운동가와 신민회 회원 700여명을 불법으로 체포한다.
 
그리고 온갖 방법의 가혹한 고문을 가해서 ‘데라우찌암살음모미수사건’을 조작한다. 이 중 123명을 기소하였으나 1심에서 105명만이 유기징역을 받았다 하여 ‘105인사건’이라 이르게 된다. 
 
5.18 민주유공자들을 반국가단체로 고문조작한 5공 만행
 
1981년 7월 16일은 ‘아람회사건’ 주요 인물들이 불법으로 체포되기 시작하는 날이며 9월 3일은 대전경찰서 공안경찰이 ‘아람회사건’ 관련 인사들을 검찰에 송치한 날이다.
 
그러면 ‘아람회사건’이 날조되는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1979년 10월 26일 유신독재를 통하여 영구집권을 노리던 친미반공정권의 우두머리 박정희는 권력 내부의 모순에 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으며 제거당한다. 권력의 공백기가 발생하였다.
 
이 기회를 포착하고 ‘박정희총살사건’의 수사책임을 가지고 있던 보안사령부의 전두환은 하나회를 중심으로 신군부를 형성하고 친미반공정권을 승계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것이 한국의 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기습적인 1979년 12.12쿠데타이다.
 
이로써 정승화와 김재규를 제거한 전두환 일당은 중앙정보부의 권력까지 장악하고 군부독제체제를 구축한다. 그리고 정권장악을 위한 첫 단계로 계엄령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 1980년 5.17계엄령 확대조치이다.
 
그러자 더 이상 군부독재정권을 원하지 않던 남한의 자유민주세력들은 신군부의 친미반공정권 승계를 반대하는 시위집회를 연일 곳곳에서 열었다. 전두환 신군부는 전국적으로 터져나오는 민주화 요구를 ‘광주’ 지역에서 대규모로 폭발하도록 유인한다. 그리고 이를 “빨갱이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허위선전하고 이를 명분으로 짓누름으로써 민주화 투쟁에 쐬기를 박고 친미반공적 권력 승계의 정당성을 삼으려 했다.
 
이것이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이 보여준 ‘5월 광주학살’이다.(1980) 광주학살 뒤, 전두환 도당들은 권력기반의 안정을 위해, 반미ㆍ반군부적 성격을 지닌 모임과 단체, 그리고 그러한 인물로 지목된 자들을 무차별로 체포ㆍ구금하여 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지방에서 일어난 아람회, 한울회, 금강회, 오송회, 부산 미문화원사건, 강원도지역학생의 미성조기방화사건 등이다.
 
전두환 내란반란정권은 이 중에서도 전두환의 광주학살의 진실을 알리며 심판을 촉구한 현직 경찰관과 검찰청 직원, 현역 육군대위와 교사 등 국가공무원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하여 ‘아람회’라는 반국가단체를 조작해 냈다. 아무런 조직이 없었던 민주인사들이 고문에 의해 날조된 사건의 피해자가 된 점에서 ‘아람회사건’은 일제의 식민지조선 초기 일어난 ‘105인사건’과 공통점을 갖는다. 
 
이제 일제 헌병경찰이 96년 전 ‘105인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간악하게 저지른 고문과 한국의 공안경찰이 26년 전 ‘아람회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자행한 악랄한 고문수법을 비교해 보자.
 
전두환 내란반란정권, 일제가 사용한 악랄한 고문으로 ‘아람회’ 조작
 
먼저 일제는 신민회 회원들을 상대로 ‘105인사건’을 조작하기 위하여 야수적인 72가지가 넘는 고문수법을 총동원한다. 이제 인간의 탈을 쓴 자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고문방법을 들어보자. 여기서는 72가지 고문방법 중 몇 가지만 적어보기로 한다.
 
 “며칠씩 잠 안 재우기/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 밥 안 주기/ 물고문 하기/ 죽인다고 협박하기/ 가족을 죽인다, 가족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등 협박하기/ 손가락 주리틀기/ 다른 사람 고문하는 것 보여주기/ 다른 사람이 고문을 당하면서 고통스럽게 지르는 비명소리 듣게 하기/ 머리를 땅에 박고 손을 등 뒤로 한 채 오래 버티기(일명, 원산폭격) 등은 일제 헌병경찰이 쓴 가장 기초적인 고문에 해당된다.
 
이밖에 인간의 신체적 고통을 최대로 끌어내고 정신적 공포를 극도로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 동포들에게 가했던 고문의 만행을 조금만 들어보자.
 
 “눈을 가린 채 공중에 매달고 쇠몽둥이로 매질하기/ 대나무 못을 손톱 및 발톱 밑에 박기/ 수십 일간 완전 밀폐된 독방에 가두면서 일체 음식물을 주지 않기/ 몹시 추운 날씨에 옷을 벗긴 후 수도전에 묶고 찬물을 끼얹어 사람을 얼음기둥으로 만들기/ 발가벗기고 손을 등 뒤로 묶은 다음 묶은 손의 끈을 문설주 위로 끌어당겨 온몸을 공중에 메달아 흔들어 문틀에 부딪치기(일명, 학춤) /기름을 바른 온몸에 인두와 담뱃불로 단근질하기 / 입 벌리고 혀를 빼게 한 후, 기도에 담배연기 불어넣기 / 두 다리를 땅에서 들게 한 채, 1전짜리 동전 크기의 머리채를 만들어 천정에 매달아 머리털 뽑기/ 거꾸로 매달아 놓고, 코에 뜨거운 물을 붓고 거꾸로 매달아 뱅뱅 돌리기 / 입을 벌린 채, 입안에 석탄가루를 쑤셔 넣기 / 콧수염의 양끝을 서로 묶은 다음 잡아당기기 / 쇠몽둥이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손가락을 비틀기 / 손가락을 쇠줄로 묶고 잡아당기기 / 밤에 산으로 끌고가 나무에 매달고 예리한 칼을 목에 들이대고 죽인다고 협박하기 / 가슴 높이의 궤짝 속에 들어가 장시간 서 있기 / 손을 묶은 다음, 선박 밑으로 들어가 머리카락을 땅에 동여매고, 왼쪽 다리를 무릎 높이로 하여 선박에 묶어 장시간 방치하여 피를 토하게 하기” 등. 또 있다. 아주 간악한 고문으로 성기에 고통주기 / 전기로 고문하기 등이다.
 
다음은 아람회사건 연루자들의 구술 자료를 통하여 제 동포인 한국 공안경찰로부터 당한 야비한 고문수법들을 들어보자. 먼저 잡혀온 이후는 대략 일주일 가량 수면을 취하지 못하게 하였다. 옆에는 전투경찰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일체 잠을 재우지 않았다.
 
잠을 자고 싶어도 운동경기장에서나 쓸법한 밝기의 전등(와트수 미상)을 눈에 비추는 바람에 결코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리고 공안경찰은 미리 작성한 시나리오의 내용대로 허위자백을 강요한다. 만일 시인하지 않을 때에는 영락없이 짓밟고, 때리고, 머리를 쥐어뜯는 구타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의 조작된 원고에 의한 강제된 허위자백이 안 나올 때는 또 다시 택견과 주먹 등으로 개 패듯 수없이 두들겨 팼다. 그래도 경찰의 뜻대로 안 되면, 몽둥이로 사정없이 패대었다. 이외 ‘원산폭격’을 시키는 등 인격파괴 행위를 유발하는 고문이 다반사로 행해졌다.
 
날이 거듭할수록 경찰은 초조해진 모양이다. 고문의 강도를 높여나갔다. 지하실 내의 복도에 설치된 욕조대로 끌고 가 머리채를 억지로 끌어당겨 얼굴을 물 속에 처박아 질식케 하는 물고문을 하루에도 수차례 감행하였다. 또 ‘아람회사건’ 관련자들의 고문현장을 들여다보게 하였다. 유리를 통해 보인 장면은 고문 받은 자의 머리 모양이 수없이 굴절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른 조사실에서 고문 받으며 지르는 비명소리를 듣게 했다. 이는 참으로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 그 자체였다. 비명소리에 전이되는 정신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이상이었다. 이러한 고문에도 견뎌나가면, 조사실에서는 손을 뒤로 하여 수갑을 채우고 무릎을 끓인 채 굽힌 무릎 사이에 각목을 끼워 무릎 위에서 밟아댔다.(일명 무릎골절 빼기)
 
또 눈이 가려진 채 다른 고문실로 이동하여 인간 수치의 발가벗겨진 상태에서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무릎 사이에는 굵은 각목이 끼워진 채 두 책상 사이로 거꾸로 매달려졌다.(일명, 통닭구이) 그리고는 얼굴에 수건이 덮어진다. 그 위에 물이 부어져 내려온다. 이렇게 되면 수건의 수막현상으로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들어온다.
 
이에 견디다 못해, “차라리 죽여라”고 고함을 치면, 수사관들은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그래 죽여주겠다. 그러면 ‘빨강볼펜으로 나는 빨갱이 짓을 하다가 죽었다’는 유서를 써라, 그러면 죽여서 가마니에 돌돌 말아 길거리에 버려주겠다.” 어처구니없는 위협도 가했다.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35일 만에 날조된 경찰의 각본대로 허위진술서가 작성되고 강제로 지장이 찍혀졌다.
 
그리고 허위진술서는 녹음기에 녹취되어 반복 청취되었다. 이것이 반복 청취되면서 세뇌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정신착란, 피해망상, 공포심 등 심리적 강제 속에서 범죄서류가 조작되었다.(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2007년 상반기 조사보고서》2007. 7.26 참조)
 
정의의 시간 조국통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마무리하자. 역사의 순리는 오류 - 성찰 - 정의로 나가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역사의 오류에 대한 역사의 성찰시간이다. 한국의 역사적 오류가 민족분단이라면 역사의 성찰은 6.15남북공동선언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통일운동이다, 이 통일운동이라는 성찰의 시간이 끝나면 곧 역사의 정의시간이 틀림없이 온다. 바로 민족통일이다.
 
일제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비밀결사활동을 하다 ‘105인사건’으로 조작되어 옥살이를 하였던 신민회 회원들은 출옥한 이후에도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민족해방운동을 올곧고 힘차게 전개하여 나갔다. 그 결과 우리 조국에 민족해방을 가져다주었다.
 
마찬가지로 반공ㆍ반통일의 독재권력으로부터 민주ㆍ통일세력으로 몰려 감옥살이를 하다 출옥한 아람화사건 연루자들도 신민회회원의 모범을 귀감삼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수구ㆍ보수세력의 압력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한반도의 역사적 순리 곧 역사의 정의로운 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선에서 또는 뒤에서 통일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앞으로 시민사회가 끌고 있는 통일운동은, 경제 분야보다 문화면에서 통일운동이 주종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사회의 통일운동을 호시탐탐 훼방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불순한 세력들이 있다.
 
분단을 강요한 외세와 국가보안법이다. 그래서 통일운동은 필연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과 함께 미군의 철수, 미국의 반공적 이념을 반대하는 운동도 동시에 전개해나갈 것을 요청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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