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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제거, 음모의 명수 박정희
[박정희는 누구인가 4] 쿠네타 이후 친일 측근 기용과 정적 제거
기사입력: 2005/12/25 [06:1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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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쿠데타 44해를 맞은 2005년 5월 1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걸린 박정희의 모습.     ©이철우 기자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지난 7일 박정희 정권시절 대표적 공안사건으로 조작논란이 끝이지 않았던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과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사건이 ‘학생시위로 인한 정권의 위기상황 속에서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이 사건의 실체를 매우 과장되게 발표한 사건’이라며 정권에 의한 조작임을 발표했다.

<참말로>는 그동안 친일청산과 역사 바로 잡기에 헌신적 노력을 해온 한상범(대통령 소속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 교수의 <박정희는 누구인가?>를 79년 유신을 마감한 10.26에 이은 또 다른 군사독재정권의 시작인 12.12사태에 즈음해 6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4. 박정희의 쿠데타와 그 이후 행적
 
(1) 5.16쿠데타와 미국 중앙정보부
 
한국군대의 통수 작전권이 1950년 전쟁발발 후 대전협정으로 미군에게 이양된 이후 그것이 근본적으로 틀을 바꾸진 않았다. 물론 지금 한미연합사령부란 지휘체계가 수립되어 있다. 그렇지만 군대가 미국 통제 또는 주재 하에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한국군은 미국고문관이 각 요소에서 배치돼 있고 군부대의 이동을 함부로 한국군지휘관 재량으로 할 수 없다. 이것은 상식이 아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박정희가 3000여명으로 수도서울로 진격 쿠데타를 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고, 그것이 미국군부나 미국정부에서 인용하는 일이 되었을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박정희와 김종필이가 아무리 천재적인 모사꾼이고 쿠데타 전술의 달인이라고 해도 한국의 1961년의 군사실정에서 박정희의 쿠데타의 성공은 의문투성이다.
 
여기에 한가지 참고자료가 있다. 일본의 군사법령과 군대문제에 전문가인 역사학자 오오에 시노부(大江志乃夫)가 지은(<<戒嚴令>>(岩波新書, 초판1978년-1992년)을 보면 미국초대 중앙정보부장 알렌 덜레스가 영국 비비시방송에 출연해 재임 중에 가장 성공한 공작으로서 한국의 1961년 5-.6쿠데타를 들고 있음을 소개한 것이 있다(위에 든 책, 28쪽.)
 
위의 사실은 더 깊이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우리에겐 심각한 의문을 던져주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2) 박정희의 일본인맥 
 
박정희는 집권전후에 그의 정권 장악과 유지에 있어서 철저하게 만주시절의 일본군인으로 돌아가서 만주시절의 인맥에 의존했다. 우선 한국인으로서 만주중심으로 활동한 친일파를 모아서 정권 핵심부에 드려 앉힌 것을 비롯해서 만주국괴뢰정부와 인연이 있으면 더욱 신뢰하고 친근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친일파이면 다른 사람보다 신뢰했다. 1963년 대통령선거 운동에서 밀가루 등 양곡을 뿌려서 유권자를 자기편으로 하였다. 그런데 그 외국양곡의 변칙도입에서도 장기영이라고 하는 일제시대 은행출신을 이용했다. 일제친일과 인연이 있는 백두진도 뒤에 고위층으로 국회의장까지 시켜가며 써먹었다. 이 점은 이승만의 친일파 신뢰에 뒤지지 않은 행적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부상할 당시에 일본에 생존한 만주시절의 최고의 인물은 기시노브스게 수상과 세지마류조 관동군 참모중령이었다. 기시에게는 일찍이 1961년 미국 방문길에 인사차 방문 밀담하면서 믿을 만한 일본인 추천을 의뢰해 일본의 흑막이 되는 인물의 추천을 받았다. 기시는 세지마와 함께 박정희가 가장 숭배한 인물이다.

다음에 세지마류조는 관동군 참모 중령으로 일본군의 박정희 소위의 상관이었다. 그는 일본 육사와 육대의 수재로 알려진 신화적 인물로서 야마사키 도요코의 <<불모지대>>란 소설의 주인공이고, 나카소네의 최고 자문역이고 박정희와 거래할 당시엔 이토추 상사간부로서 강화조약을 체결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나라와의 뒷거래를 하는 브로커로서 한일관계에서도 그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과 노태우 3개 군정대통령의 고문이고 스승으로서 한국의 국정지도에 임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일본 극우 우익의 흑막이고 깡패 두목인 고다마요시오(兒玉譽士夫)와의 관계이다. 그는 2등 수교훈장까지 대한민국정부로부터 받았으니 할말이 없다. 여기에 정건영(鄭建永)(일본 이름 아리모리 다카시(有森隆))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재일동포로서 1천 5백 명을 거느리는 깡패두목이고 그러한 인연으로 고다마의 그늘에서 활약했다. 그가 한국외환은행의 보증으로 수십억엔(圓)대의 토지매입과 그것이 박정희 재산이라고 한일 두 나라 국회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박정희는 죽을 때까지 친일파이고 그리고 나아가서 일본사람이었다. 그 일본사람도 제국시대의 군국주의자로서 일본 왕의 신하였다고 하는데 한국의 치부가 되고 있다. 
 
(3) 박정희의 정적(政敵)처리 - 라이벌을 제거해 온 음모의 명수
 
박정희의 정적 제거의 기술은 당장에는 눈에 안 띠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면 깜짝 놀랄 정도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주변측근의 한시적 이용과 사후 제거의 기술에 능수 능란했다.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고 쿠데타의 둘러리를 섰던 장도영, 송요찬, 박창암으로부터 하급 부하격인 원충연까지도 반혁명음모로 제거해 감옥에 보내고 폐인을 만들었다.  
 
쿠데타로 쫓겨난 장면 총리도 쫓겨난 것으로 부족해서 법정에 세워서 망신을 주고 웃음꺼리를 만들어서 속이 터져 죽게 했다. 윤보선 처리는 운 좋게도 박정희 남로당 전력을 들치는 것을 트집 잡아서 오히려 윤보선이 매카시즘으로 모함한다고 해서 동정표를 받았고 그 후에  윤보선을 필요하면 적당히 재판정으로 끌어낼 듯이 법률의 올가미로 당겼다, 늦췄다 하다가 자연사하는 것을 기다렸다. 이 공작은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의 집권 후에 가장 골칫거리는 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이었다.
 
여기서 함석헌에 대해선 그가 내던 <<씨알의 소리>>잡지를 폐간도 시키고 잡아넣기도 했으나, 꼿꼿해서 부러지는 체질이 아니고 밟히곤 일어나곤 했다. 별별 모략중상을 하고 섹스 스캔들로까지 정보기관을 동원해 몰아갔으나 성공하진 못했다.
 
그런데 장준하에 대해선 참지 못했던 것 같다. 장준하가 일본군대 탈출과 임정에 가담한 광복군출신이란 민족사에 빛나는 ‘금뺏지’는 박정희의 일본제국군대 하급장교인 민족반역자란 렛델과 대조가 되어서 그의 화통을 터지게 했을 것이다. 결국 장준하는 의문의 죽음을 했다. 아마도 앞으로 정보기관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는 날에는 그 비밀도 밝혀질 것이다.
 
김영삼은 결국 초산세례란 테러도 당하고 1979년 국회에서 제명까지 시켜서 매장하려고 했으나, 결국  박정희 자신이 부마사태로 목숨을 내놓았다. 김영삼은 섹스 스캔들로 간단하게 추락시킬 수도 있다고 예측했었으나, 워낙 그가 ‘바람둥이’로 알려져서 그의 섹스스캔들 문제는 국민대중이 듣고는 웃어넘기는 정도가 되어서 먹혀들지 않았다.
 
박정희가 일생일대 가장 미워하고 두려워한 적수는 김대중이다. 빨갱이로 만들려고 온갖 공작이 진행되었으나 실패했다. 결국 납치 살해하는 공작도 재일한국 중앙정보부 간부인 김동운의 지문이 범죄 현장에서 발각됨으로써 수포로 돌아갔다.

김대중 제거의 특명은 전두환에게 이어졌으나,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고 내란죄로 법정에 세웠다. 그런데 성공직전에 전두환은 김대중의 미국망명을 허용했다. 릴리대사의 회상록에 의하면 레이건대통령이 전두환의 방미조건으로 김대중의 미국망명을 조건으로 내세워서 전두환에게 갈고리를 걸었다고 한다. 전두환이 충견노릇을 하기에는 두툼하고 강한 목걸이 이외에 갈고리로서 김대중을 미국에 두는 미국정책에 양보한 것이다.

이처럼 전두환에게 신뢰를 두지 않은 것은 전두환이 박정희의 충복이긴 했으나, 1979년 12.12 반란을 준비하면서 일본대사에게는 사전에 보고했으나, 미국에겐 거리를 둔데 대한 불신에서 연유하기도 했을 것이다.   
 
박정희의 라이벌에 대한 제거책술은 결국 자기 코앞에 있는 두 사나이를 충복으로 착각함으로써 ‘남잡이, 제잡이’식으로 스스로가 치명타의 자살 꼴을 불러드렸다. 정보부장인 김형욱을 망명토록 놓쳐버린 것이고, 김재규를 궁정동에서 여인환락의 술자라 파트너로 너무나 오래도록 혹사시켜 모멸하고 그의 매국적 치부를 보여주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든 실수라고 할까?

결국 독재자는 그의 측근 심복의 칼을 받는다는 것을 현대사에선 도미니카 도루이요 대통령이 정보부장 총에 맞아죽은 사례가 있고, 고대 로마제국의 시저는 그의 사생아인 브르터스에게 칼을 맞아죽는 운명에서 보여주고 있다.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 지난 2002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며 최종길 교수 살해사건과 비전향장기수 옥사 사건에 대한 의문사 인정을 비롯해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 과거청산에 기여해 왔다. 그는 1964년 한일협정반대교수단 서명을 시작으로 저술 등을 통해 과거청산 작업을 벌였다. 1991년에는 ‘한국 법 학계를 지배한 일본 법학의 유산’을 역사비평에 발표해 일제잔재 청산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쓴 책으로는 <사상을 벌주는 나라>, <인권-민중의 자유와 권리>, <화 있을진저 너희들 법률가여>, <금서 세상을 바꾼 > 을 비롯해 수십 권이 있으며 <일제잔재 청산의 법이론>으로 외솔상을 수상했고 <한국의 법문화와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로 현암법학저작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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