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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없었으면 친일청산과 통일 이뤄”
[강정구 교수의 논문 연재 2] 한미관계의 비판적 검토와 새판짜기
기사입력: 2005/10/11 [01:3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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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는 지난 9월30일 오후 2시 서울대 문화관 국제회의실에서 ‘요동치는 한반도 어디로 가나?’를 주제로 정세 토론회를 열었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가 이날 발표한 학술논문 <한미관계의 비판적 검토와 새판짜기> 전문을 17회에 걸쳐 연재한다. 각주는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괄호에 넣어 파란 글씨로 처리했다.(편집자)


2. 한.미동맹의 근본적 속성
 
한.미동맹에는 검증되지 않는 통념이 자라잡고 있다. 그것은 외교, 군사, 경제 등 전 영역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해야 하며, 이는 국익에 도움이 되고, 미국은 한국전쟁을 함께 치른 ‘혈맹’이며 세계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이며, ‘오랜 친구’가 어려울 때는 돕는 것이 국제사회에서의 바람직한 행동이며, 한.미연합작전체계 때문에 무기는 미국제를 사서 쓰는 것이 좋다 등이다(김진환, 2004).
 
이러한 통념과는 달리 한.미동맹은 전형적인 반민족성, 예속성, 반평화성, 맹목성, (한국전쟁) 보은론 포로성, 반통일성 등이 그 본질적 속성임을 이 절에서 밝힌다.
 
1) 반민족성
 
흔히들 한.미동맹의 출발점을 1950년 6.25전쟁 당시 미국이 전쟁 발발 사흘 만에 개입해 남한정부를 전적으로 수혈하는 시점이나 또는 1953년 한국전쟁 직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시점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기준을 동맹의 기원으로 삼는 것으로 실질적인 동맹관계가 1945년 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이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한.미동맹이 일방적으로 강제되었음을 간과한 역사해석이다. 곧 미국은 현재의 한.미동맹을 대한민국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친일-반민족 집단을 괴멸상태에서 구원하면서 일방적으로 맺었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미국은 한.미동맹국가를,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예속국가를 이 땅에 창출시키고는 지금까지 한․미동맹 또는 대미예속을 이어왔다. 이는 해방 조선과 조선인이 지향하는 내재적 역사행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친일반민족 세력이 지배하는 타율적 역사행로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반민족성과 반역사성의 전형이다.
 
이 태동기의 한.미동맹은 두 수준에서 이뤄졌다. 하나는 일본이 조선에 남겨놓은 식민지구조와의 구조적 동맹이었고 다른 하나는 친일반민족 집단들과의 인적 동맹이었다.
 
(미국과 미군정이 친일파와의 동맹, 이를 기반으로 한국 보수 세력을 형성한 과정을 다룬 글로는 강정구, 2002. "한국 보수지배체제 확립의 역사적 기원" <진보평론> 통권11호 2002년 봄호.)
 
(1) 일제 식민구조와의 구조적 ‘동맹’
 
미국의 조선점령 정책기조는 철저하게 냉전에 기초한 것으로 첫째, 사회주의 등장을 막고 자본주의를 강제시키기 위해 반공산주의를, 둘째 소련의 사회주의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반소련주의를 택했다.
 
셋째 모스크바 3상회의의 합의대로 미.소 공동위원회에 따른 조선임시정부가 실시되면 미국이 남쪽에 실시하고 있는 군정을 철폐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조선전체가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합의한 모스크바 3상협정을 스스로 되짚는 반신탁을 추구했다
.
넷째, 기존의 식민지 반봉건사회의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혁파하여 사회주의로 이행하려는 급진 사회혁명을 봉쇄하기 위한 반혁명주의 정책기조를 띠었다.
이들 반공, 반소, 반혁명, 반탁의 정책을 구현시키려는 미국은 조선인의 염원인 탈식민화나 친일파 숙청 등의 내재적 역사지향을 처음부터 심대한 장애요소로 인식했다. 바로 이러한 조선의 내재적 역사방향을 타파하기 위해 등장한 물적-제도적 장치가 미(米)점령군의 직접적인 군사정부였다.
 
그러나 군사정부는 아무 것도 없는 진공상태에서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기존의 일제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식민통치구조의 실질적인 존속을 통해 그 기틀을 닦아 나갔다.
 
따라서 미국의 점령정책은 대부분의 조선인이 원하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의 기존 통치구조를 변혁시키는 것보다 유지 및 강화시키는 것, 곧 구조적 동맹을 맺는 것을 택했다. 이로써 일제식민지지배의 골격을 이루었던 경제, 정치, 사회 등 전 영역의 구조, 법, 제도 등에 대한 구조청산은 미군정의 폭력과 강제에 의해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해방공간의 내재적 민족사 행로는 좌절되어 남한사회는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 행로를 처음부터 걷게 되었다.
 
(2) 친일반민족 세력과의 인적‘동맹’
 
반공‧반소‧반혁명, 반탁을 정책기조로 삼은 米점령군은 ‘일반명령 1호’에 의해 어제의 적이었던 일본인을 동원해 조선인 대중투쟁에 의해 와해 직전으로 몰린 식민지 통치구조를 긴급 구출하고 친일 구조청산을 가로막았다.
 
이제 미군정은 기존의 일제 식민통치구조를 재강화하면서 점령정책 기조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친일반민족 세력과의 인적동맹을 결성했다.
 
미군정은 크게 나누어 두 종류의 조선인 집단과 인적 동맹관계를 맺었다.
 
하나는 조선인 구래의 지주계급과 지주‧자본가계급이다. 이 집단은 김성수-송진우 등이 이끈 한국민주당처럼 직접적인 친일파와 간접적 친일파로 주로 구성되었다.
 
다른 하나는 식민지 경찰과 군을 중심으로 한 친일관료집단이다. 이 집단은 거의 전부가 직접적인 친일파 집단이다. 미국은 이들 직‧간접 친일반민족 집단과 동맹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식민지 잔재의 철저한 청산과 친일파 숙청을 제창하는 급진세력과 민중세력을 제압하여 남한을 반소‧반공, 반혁명의 보루로 삼으려 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전자와의 동맹관계를 맺음으로써 해방된 조선사회를 기존의 일본제국주의가 지배하던 식민지적 구조를 큰 변화 없이 유지,강화하려 했다. 또 후자와의 동맹으로 미국은 전자와의 동맹으로 설정된 사회적 목표, 곧 식민지구조의 온존‧강화를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충실한 도구와 수단을 확보한 셈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전자와 더불어 정책목표를 공유하고 후자와 더불어 정책수단을 공유하는 공생관계를 이루었다. 이러한 한.미동맹과 공생관계를 통해 이 땅의 친일반민족 세력들은 그들의 옛집 구조 속에서 새로운 친미 서식처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
 
전자와의 동맹관계를 구체적으로 몇 가지 보겠다.
 
가장 먼저 동맹관계가 맺어진 곳은 米점령군이 1945년 9월 인천에 상륙하여 조선을 본격적으로 점령하기 시작한 직후인 10월에 임명한 11인의 행정고문에서다. 조선인 행정고문 11명 가운데 보수세력이 10명, 급진세력이 1명으로 당시 조선사회의 실질적인 이데올로기 지형과는 전혀 상반된 10:1 비율로 식민지 시대 지배계급 집단을 행정고문으로 선정했다. 실재로 남쪽에 있는 고문 10명 가운데 6명이 주로 친일파와 옛 지배계급 정당인 한민당 당원으로 충원되었다(강정구, 1989).
 
이러한 한민당 중심의 친일우익 편향의 동맹관계는 미군정의 집행부에서 정책결정의 고위직(주로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 곧 정책결정의 직위임) 임명에서 두드러진다. 46년 1월에 임명된 중요정책 직무의 조선인 구성에서 친일파 편향은 가장 중요한 국가억압기구 분야에 확연히 드러난다.
 
경무부장 조병옥,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대법원장 김용무, 사법부장 김병로, 검찰총장 이인 등은 전부 친일친미파 정당인 한민당 출신이다. 다른 부처에도 이와 유사한 인적 구성을 형성해 친일정당인 한민당은 자타가 공인하듯이 미군정의 실질적 여당으로 군림했다.
 
이들 친일파들은 일제시대에는 단지 경제적 지배계급의 수준에 머물렀으나 해방된 미군정에서는 경제적 지배계급에다 정치적 지배계급으로 성장하여 더욱 강화되었다.
 
‘해방’된 이 땅에서 어제까지 민족해방을 억압하고 일제 식민지지배의 안존과 강화에 앞장섰던 친일민족반역자 집단이 더욱 강화된 지배집단으로 군림하게 되는  역사가 한.미동맹의 형태로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동맹관계를 기반으로 친일 지배계급을 소생시키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식민지 관료와 동맹‧밀월관계를 맺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군과 경찰이었다.
 
미군정하의 경찰은 식민지의 중앙집권적 구조, 일제 식민지 경찰인력, 일제의 악랄한 법률과 범죄 관행 등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이 군과 경찰의 인적동맹이 군사동맹을 주축으로 한.미동맹이 진척되는 터전을 일구었다.
 
이들 친일파가 카멜레온처럼 친미파로 옷을 갈아입은 채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해 오늘까지 한국사회를 이끌어 왔다. 이로써 한․미동맹의 태생적 반민족성은 구조화되어 발생적 결정론(genetic determinism)으로 오늘의 역사를 주조하게 되었다.
 
이 한.미동맹은 해방된 조선인을 대변하는 진정한 조선인과의 동맹이 아니라 친일반민족 세력과의 동맹이었고, 이들 해바라기 친일-친미세력의 뿌리가 그 후대로 전승되어 오늘 한국사회의 주류로서 우리 민족사를 오염시키고 있다.
 
(3) 한.미동맹이 없었더라면
 
‘역사의 가정은 무용지물’이라고 사학자 이에이치(E H) 카는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역사의 가정은 훌륭한 혜안과 길잡이가 된다. 특히 친일 및 과거청산이 전혀 이뤄지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우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해방공간에 반민족적이고 예속적인 한.미동맹이 없었더라면 해방공간의 민족사적 핵심과제가 어떻게 되었을 것인지 역사추상을 해봄으로써 반민족적 한.미동맹의 태동이 우리 역사를 얼마나 굴절시켰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만약 한.미동맹이 없었더라면 해방공간의 민족사적 핵심과제였던 친일파와 일제식민구조의 청산, 통일국가 수립, 민족정기 확립, 민족자주성 견지, 민중의 권익실현, 제국주의와의 연결고리 철폐 등이 남한처럼 좌절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이들을 구현하려는 의지까지 빼앗아갈 정도로 한국사회 주류의 심성을 ‘숭미 자발적 노예주의’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1-2년 사이 민족독립선언과 민족해방 절인 3.1절과 8.15광복절 기념일에까지 소위 ‘반핵.반김세력’들이 전쟁광 부시의 사진과 제국주의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 나와 서울시청 앞에서 활개를 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마치 일제시대 친일반민족 무리인 일진회가 이제 숭배대상을 미국으로 바꿔 그 자발적 노예주의성을 적나라하게 연출하는 듯 했다. 만약 반민족적 한.미동맹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이런 기막힌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만약 해방 이후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그랬다면 2004년 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박관용과 조순형이 각각 국회의장이나 민주당 대표로, 최돈웅이 차떼기 주역 국회의원으로, 탄핵을 즐기던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또 탄핵의 근원인 이회창이 감히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을까?
 
천부당만부당한 이야기다.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이들 친일파 후예들이 우리 정치사에 아예 발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또 2004년 1월 외교부 항명파동 때 ‘숭미적 사고로 가득 찬 외교부 간부들’이라고 질타하다, 7월 초  미국에 가서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특수 임무를 띠고 작전을 수행하러 왔다’며 ‘한.미 동맹 자체가 국익’이라는 자발적 노예주의식 발언을 서슴지 않은 일제 헌병 오장의 아들인 신기남 여당대표는 존재치 않을 것이다.
 
이처럼 반민족적 한.미동맹의 문제는 어제인 과거의 문제일 뿐 아니라 오늘인 현재와 미래인 내일의 문제다.
 
또한 관료 가운데 가장 숭미 자발적 노예주의에 경도되었다는 국방부와 외교부의 작금의 행태는 없었을 것이다.
 
국방부의 경우 공군의 차기전투기사업(F-X) 외압설 폭로의 주인공인 조주형 공군대령이 2002년 6월26일 3차 공판 최후진술에서 국방부의 ‘식민지성’을 국방부 수뇌부의 자발적 노예주의성이란 행위적 측면과 한국군부체제의 미국동질화라는 구조의 문제를 들먹이면서 질타한 데서도 드러난다.
 
“미국 무기에 대한 국방부 수뇌부의 맹목적인 추종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국이 미국에 종속적인 위치에서 F-X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미국의 자국이기주의와 우리나라 지도층 일부의 사대주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미군에 의한 군사종속 때문입니다...우리 군의 모든 체제는 미군 체제에 의해 동질화되었으므로 미국 무기 이외에는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냉철하게 떠져보면 식민지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오마이뉴스>200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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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05/10/15 [17:07] 수정 삭제  
  정말 바른말이다.
어떻게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새빨간거짓말과 사기꾼들이 출세하고 정당화되는 삐두른 사회로 발전했을까? 그 원인에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다 바르지못한일을 한 친일매족노들이 그대로 집권하는 사회가 되어서 그들의 기회주의적근성이 계속 이어간 까닭이다. 그렇게하는 견인력을 미국넘들이 발휘했다. 쥑일넘들..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으니.... 한심한 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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