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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결사(4) - 미국이 겁먹은 북 광명성 1호 발사
[부시 재선과 한반도 정세 전망] -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북
기사입력: 2004/12/01 [16:2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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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에 성공한 부시가 2기 행정부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한반도 강경정책과 세계 패권 전략으로 일관했던 1기 행정부에 이어 과연 2기 부시 행정부의 세계지배전략은 어떻게 세워질까?

계속된 대북 강경정책에 따른 6자 회담의 불안정,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분수령이 될 2005년을 앞두고 부시 재선에 따른 동북아, 한반도 정세를 <참말로>와 한국민권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 전망해 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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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 2000년 까지의 북미대결 약사 - 북은 미국의 압살, 분단 정책을 어떻게 극복했나

2.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 적대정책을 돌아본다

3. 부시 행정부 2기 북미관계, 한미관계 전망한다

4. 부시 행정부 2기 남북관계 전망한다

5. 부시 행정부 2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정세

 - 중국, 일본, 러시아와 미국과의 관계

6. 미국 사회 어떻게 나갈 것인가?

7. 연재를 마치며 - 21세기 세계정세와 미국, 그리고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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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네바 핵 합의 이후 98년 광명성 1호까지

(1) 미국, 합의는 했으나 이행은 하지 않던 시기

미국이 제네바 핵 합의를 성실히 이행했더라면 한반도 평화는 이미 정착됐을 것이고 남북대화 국면 또한 다시 조성됐을 것이나 미국이 이 합의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이북은 또 한 차례 충격요법을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기 조성된 조미 평화공존 분위기는 98년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2000년까지 조성되었던 한반도 냉전구조 청산 및 평화통일 국면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역시 이북의 핵-미사일 기술이 미국 본토를 가격할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94년 남북정상회담 국면이 2000년 정상회담 실현 때와 비교할 때 남북화해와 협력 구도가 부실했던 이유는 이북의 대미 협상력 즉, 이북 핵-미사일 무력이 미국의 핵공격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과 함께 당시 이남 사회 전반에 대북적대감이 만연했고 상대적으로 통일운동진영도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또 94년 제네바합의에서 98년 ‘광명성 1호’ 발사까지의 기간은 이북의 ‘고난의 행군’이 ‘붕괴’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미국과 이남 정부의 반북대결론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미국은 93년과 94년 공언한 이북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려 하지 않았다. 94년 합의 이후 이북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종용하지만 미국은 이를 계속 거부한다.

미국은 이북의 조미 평화협정 공세에 맞서 허울뿐인 ‘남북당사자 원칙’을 앞세우며 남북과 미국 및 중국이 참여하는 소위 ‘4자회담’을 고안해 낸다. 96년 4월16일 제주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이를 공식화한다. 남과 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4자회담’은 일종의 교차승인론으로서 남과 북을 2개 국가로 만들려는 분단관리전략에 다름 아니다. 이남 정부 역시 이를 받아들여 이에 응하지 않으려는 이북을 비난해왔다.

‘조미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이북과 ‘4자회담’을 주장하는 한-미 간의 대결구도는 98년 8월31일 이북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하면서 사실상 종결된다. 2000년 10월 12일 발표된 조미 공동코뮤니케에 “한반도 전쟁상태를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4자회담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있지만 이는 이남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한 수사로 봐야 한다.

한편 당시 반북대결론은 나라 밖에서는 이북에 대한 봉쇄강화로 나라 안에서는 한총련 등과 같은 민족민주진영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광명성 1호의 발사를 전후해서 조성된 전쟁위기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극복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2) 금창리 땅굴을 둘러싼 전쟁위기와 광명성 1호의 발사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1998년 7월 29일자에서 미 의회 산하 ‘미사일 위협 조사위원회’(위원장 현재 국방장관 럼스펠드)의 비밀 보고서를 기초하여 “북한이 직경 15m의 터널을 하루에 60m씩 굴착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 소속 인공위성이 촬영한 바에 의하면 금창리에 핵시설이 있는 땅굴이 굴착중이라는 것이다. 국방정보국의 중장 패트릭 휴즈는 위성사진 판독결과를 <뉴욕타임즈>전 동경지국장 데이빗 상가 기자에게 흘렸고 <뉴욕타임즈>가 8월 17일자에서 이를 보도하게 된다. 이것을 빌미로 미국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던 공화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대북 강경파들은 금창리 핵시설은 이북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는 증거라며 대북 제재를 들먹였다.

이에 대해 이북의 조치는 단호했다.
1998년 8월 31일 하늘을 향해 사정거리 5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발사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일주일 만인 9월 6일 이북에 금창리 문제에 대한 회담을 제안했으며 11월 16일에서야 1차 회담이 열릴 정도로 이북은 여유있는 자세로 회담에 응하게 된다.

이 와중에 미국 의회의 강경파들은 1999년 3월 위기설, 6월 위기설을 이야기하며 대북선제공격을 이야기하였으며, 미국 언론들에서는 한-미 연합군이 평양까지 침공하여 이북 정권을 타도하고 한국 주도하에 통일하겠다는 계획이 흘러나오곤 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이북의 대응이 미국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어버렸다.
1998년 12월 2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인 성명을 통해 “선제공격은 미국만의 독점물이 아니고”, “지구상에 조선의 공격을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다음날인 12월 3일 국방성 부상 전창렬은 성명을 통해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을 아예 날려버리겠다”고 했다.

이러한 이북의 대미 강경 자세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이전시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본토까지 날아올 수도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보유사실이 광명성 1호 발사를 통해 알려졌고, 자신들은 이북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지 않았던가?

주일 미국 대사 훠리는 12월 14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지하 핵시설 의혹 사찰을 계속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조-미 합의가 깨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1999년 1월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미 국방장관 역시 기자회견에서 대북 선제공격을 부정하며 3월과 6월 위기설을 부정하였다.

결국 이북과 미국은 1999년 3월 금창리 핵시설 의혹 해소와 관련한 합의를 하였으며  3억 달러 상당의 식량으로 관람료를 지불하고 “사찰”이 아닌 “참관” 형식으로 금창리를 방문한 후 핵의혹이 없음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또 한 번 미국은 참패하였으며, 더 이상 북을 무력으로 고립․압살하려는 정책을 펼 수 없음을 깨닫고 평화공존의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조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이 1999년 9월 미 의회에 제출한 “페리보고서”의 배경으로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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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서원 위원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부설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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