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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결사-북은 미국 적대정책 어떻게 극복했나
부시 재선과 한반도 정세 전망 - 계속된 미국의 압력 이겨낸 이북
기사입력: 2004/11/22 [08:2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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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에 성공한 부시가 2기 행정부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한반도 강경정책과 세계 패권 전략으로 일관했던 1기 행정부에 이어 과연 2기 부시 행정부의 세계지배전략은 어떻게 세워질까?

계속된 대북 강경정책에 따른 6자 회담의 불안정,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분수령이 될 2005년을 앞두고 부시 재선에 따른 동북아, 한반도 정세를 <참말로>와 한국민권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 전망해 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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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 2000년 까지의 북미대결 약사 - 북은 미국의 압살, 분단 정책을 어떻게 극복했나

2. 부시 행정부 1기의 대북 적대정책을 돌아본다

3. 부시 행정부 2기 북미관계, 한미관계 전망한다

4. 부시 행정부 2기 남북관계 전망한다

5. 부시 행정부 2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정세

 - 중국, 일본, 러시아와 미국과의 관계

6. 미국 사회 어떻게 나갈 것인가?

7. 연재를 마치며 - 21세기 세계정세와 미국, 그리고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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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일방적인 핵공격 협박으로부터 1988년 북-미 대좌까지

8.15 해방 이후 미국의 배후 조종에 따라 이남 단독정부가 수립되면서 남과 북의 분단이 고착화 되었다. 그 후 미국의 민족분열정책 속에 극소수 친미매국집단과 하나된 자주독립국가를 열망하는 대다수 우리 민족구성원들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급기야 6.25전쟁이 발발했다. 1953년 7월 27일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이기지 못한 전쟁을 ‘쉬기 위해’ “휴전협정”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의 핵미사일 무기의 이남 배치를 추진하기 위해 정전협정이 발효되고 4년 뒤인 1957년 5월 22일 정전협정 제2조 12(d)항을 일방적으로 폐기한다고 선언한다.

“정전협정 발효 후 Korea의 국경 밖으로부터 반입이 허용되는 무기는 정전 기간에 파괴․파손․손모 또는 소모된 작전용 비행기․장갑차량․무기 및 탄약, 동일한 성능과 동일한 유형의 것으로 하여, 그 수는 1:1로 교환하는 기초 위에서 교체할 수 있다.

한국전쟁 중 핵무기와 (핵)미사일은 쌍방 간에 사용된 바 없다. 한반도의 남과 북 어느 쪽에도 들어온 일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이 정전협정 제2조 12(d)항의 일방적 폐기를 중국과 북측에 통고한 것은 핵폭탄과 핵미사일을 아무런 제약 없이 남한에 배치하기 위한 선행조치인 것이다. 북측과 중국은 이것이 정전협정위반임을 규탄했다.
정전협정 제4조 6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본 정전협정에 대한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적대 쌍방 사령관들(조선․중국․미국)의 상호합의를 거쳐야 한다.

미국은 협정 조인 3년 뒤부터 이북을 공격목표로 하는 핵폭탄․핵탄두․핵지뢰․핵배낭, 핵미사일 등 각종 핵무기 수백개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알아보자면 미국은 58년 초 ‘어네스트 존’ 미사일 부대, 핵포병대 ‘펜토믹 사단(280밀리 원자포 보유)’을 한반도에 주둔시킨 사실이 93년에 미국무부가 발간한 포린 릴레이션스 23호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59년에는 주한 미 공군에 핵탄두를 장착한 마타도어 미사일을 배치해 대대적인 핵전쟁 훈련을 하기도 하였다.

91년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기 이전까지 미국은 남측내 미군 기지에 약 1720여 개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한반도 1백 평방킬로미터(경기도 수원시에 해당하는 넓이) 당 한 개 씩 혹은 동해에서 서해까지 200m당 하나씩 핵무기가 배치된 셈이다. 이는 핵무기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네 배가 넘는 밀도로 세계 최고라고 한다. 파괴력 면에서도 1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낼 수 있는 히로시마 급 핵폭탄의 1700배에 해당하며, 1억7천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위력인 것이다.

미국 대통령 부시의 ‘전술핵무기 철수 선언’으로 이런 핵무기들이 공식적으로는 한국에서 철수되었다지만 월간 <말> 92년 8월호 보도에 따르면 전술핵무기인 핵탄두 장착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로스엔젤레스”와 “스터전” 두 종류의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이 진해항에 여러 번 출입했다는 것이다. 이들 탄도미사일 탑재 핵 잠수함 한 척에 실린 핵무기만으로도 북측의 주요도시를 괴멸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미국의 전술핵이 철수되었다고 해도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는 한 오끼나와 미 공군기지와 미 해군 태평양 함대가 보유한 막강한 핵무장은 여전히 이북에 대한 위협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 땅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배치는 정전협정 위반일 뿐만 아니라 이른바 ‘전쟁억지력’ 혹은 이른바 ‘북의 대남도발 방어수단’이 아니라 핵이 없는 북에 대한 노골적인 협박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미국은 실제로 북에 대해 어떻게 협박을 해왔을까?

(1) 핵무기가 없는 이북에 대한 미국의 핵선제 공격 정책

미국은 과거 세계의 45개국과 군사적 방위협정을 맺고 있다. 이들 피보호국들에 대한 보호 의무는 최종적으로 그들의 가상적(과거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 중국, 조선, 쿠바 등)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은 그러나 이들 가상적국들에 대한 미국 핵무기 사용의 일반원칙은 ‘핵무기 대 핵무기’였다. 다시 말해 가상적국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핵무기를 쓰겠다는 정책이었다.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바르샤바 동맹군과의 일반원칙도 ‘재래식 무력 대 재래식 무력’이었다. 특히 1972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과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안보협력협정이 체결된 후는 미국의 핵무기와 전략미사일은 사실상 그 용도를 상실한 셈이다.

그런데 이 핵 일반원칙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국가가 이북이였다. 미국은 이란, 이라크, 쿠바, 수단, 리비아 등 미국이 규정한 ‘깡패국가’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조선에 대해서 ‘재래식 무기 대 핵무기’, 즉 ‘핵 선제 사용권’을 고수해왔다. 이것은 미국의 횡포한 ‘힘의 오만’의 표시였다.

이북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핵공격을 가하겠다는 미국의 오만은 미국 대통령, 장관, 군인들의 다양한 발언들 속에서 여지없이 드러났었다. 베트남 전쟁 패배 이후 높아진 한반도에서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이해를 사수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포드는 “우리들은 강력한 전략적, 전술적 억지력(핵병기)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핵병기는 당연히 장래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는 유연한 사고 방식 아래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핵선제 공격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으며 그 직후인 1975년 6월 25일, 미 국방장관 슐레진저는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북으로부터의 침략”에 대해 “북한의 목표를 전술핵병기로 공격할 것”을 분명히 했다.

또한 1975년 7월 대통령 포드는 다시 한번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을 상정하고, 그 때에는 “재래식 전쟁에서도 2차대전 후 처음으로 핵병기를 사용할 것이다”라고 공언하였으며, 당시 국방장관 럼스펠드(부시 1기 행정부 국방장관) 역시 “한국에서 유사시에는 핵병기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1976년 2월 9일)고 말했으며 미 국방성에서는 “핵의 선제공격”, “평양에 핵을 투하하라”는 발언들이 쏟아졌으며 “핵병기가 배치되어 있는 지역에는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필요하면 핵병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1977년 미국 대통령 카터는 말했다.

80년대로 들어서 이러한 핵공격 위협 발언뿐만 아니라 핵무기의 배치도 늘어난다. 미국 육군참모총장 에드워드 마이어는 서울에서 기자회견(1983년 1월 23일)을 열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북한에는 우리가 아는 한 소련이나 중국 또는 자체의 핵무기․미사일이 없다.
- 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에 배치된 미국 핵미사일의 발사는 그 국가들 정부와의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 때문에 유럽에서의 미국 핵미사일의 사용에는 제약이 있다.
- 그러나 한국에 배치된 핵미사일 발사 여부의 기본적 판단과 권리는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그 판단과 결정을 미국(과 한국)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된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한국에는 건물은 파괴하지 않고 사람만 죽이기 때문에 미국에 의해 ‘깨끗한 폭탄’이라고 불리우는 ‘악마의 병기’ 중성자탄용 랜스미사일이 배치된다. 미 국방성과 주한미군 사령부는 1986년 10월 14일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지상전투 지원을 위해 미국 내의 랜스 미사일 1개 포대를 수개월 내에 한국전선에 배치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계획을 입안한 코헨이라는 자는 한반도에서 중성자탄의 사용은 서유럽의 경우보다 유리한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 줄 것이라고 말했으며 다른 미국 당국자 역시 “중성자탄을 사용할 가능성은 유럽보다는 극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미 국방성 대변인 윌즈, 1981년 8월 11일)고 공언하였다.

핵무기를 갖지 않고 있는 조선에 대해 이처럼 미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핵선제 공격권’을 가지고 끊임없이 협박했던 것은 북에 대해 ‘죽는 권리’만 가지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편 미국은 대북 핵선제공격 발언을 반복하면서 핵전쟁 도발의 시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러한 협박을 구체화하여 실천한 것이 미국의 한․미 공동 팀스피리트 훈련이다. 1991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 동원했던 규모의 핵군사력을 그대로 휴전선 바로 남쪽 육지와 바다와 공중에서 전개한 연례 핵전쟁 훈련이 바로 팀스피리트 훈련이였다.

(2) 노골적인 핵공격 협박의 시작

왜 미국은 한반도에서 핵선제공격 훈련, 팀스피리트 훈련을 시작하였는가?

먼저, 미국이 핵공격 연습을 할 곳이 없어졌다.
1975년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북대서양동맹은 동서 진영 35개국이 군사대결체제의 해체를 의미하는 전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CSCE)를 헬싱키에서 발족시킨 선언(헬싱키 선언)을 하였다. 그 후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이 평화시에 1개 사단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는 군사훈련, 그것도 매년 고정적으로 실시하는 훈련은 지구상에서 없어졌다. 그 때문에 미국은 육․해․공군 합동 핵 군사훈련을 매년 실시할 수 있는 구실과 장소와 대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북을 대상으로 하는 ‘팀스피리트 훈련’은 유럽 공산국가들의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상대로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동원하여 전쟁규모훈련을 할 수 없게 된 1976년부터 시작된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더 이상 전쟁규모의 훈련을 할 수 없게 되었던 사정 이외에 팀스피리트 훈련을 시작한 또 다른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사상 최대의 전쟁비용을 투입하고도 보잘 것 없는 무장력 밖에 갖추지 못한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게 1975년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만다.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던 미군이 6․25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두 번째 맞이한 패배였다 .

당시 미 국방장관 슐레진저를 비롯한 미 군부는 패배의 원인을 ①핵병기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무기 사용상의 제한 ② 하노이의 심장부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지역적 제한 ③지상군이 북위 17도선을 넘지 않는다는 정치적 제한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며 선제핵공격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적극적인 무력개입노선을 주창하였다. 이것이 바로 “적극적 방어”라는 개념이었는데 이 개념은 ‘북한의 심장부에 핵무기를 퍼붓는’ 새로운 작전계획, ‘9일간의 전쟁계획’으로 구체화된다.

이 ‘9일간의 전쟁계획’은 한반도에서의 단기전 계획이다. 이는 박정희 정권에 의한 이른바 ‘북한의 남침 위협’ 선전과 함께 미국의 선제핵공격 위협이 최고조에 달하던 1975년 6월 한미합동 제1군단 사령관 제임스 홀링스위드가 입안하고, 8월 국방장관 슐레진저가 서울에 와서 승인을 한 계획으로서 그 내용은 이렇다.

먼저 전쟁개시와 함게 즉각 괌도와 오키나와 등에서 B52전략폭격기를 포함한 공군력을 비무장지대 상공에 시간당 202기, 하루 24시간 1천 회 이상 출격시키고 공중 및 지상화력을 집중하여 5일 만에 ‘적의 기동력을 완전 제거’한 뒤, 나머지 4일간 지상 병력에 의한 토벌전을 전개해 섬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1976년부터 출범하게 된 팀스피리트 훈련으로 단순히 계획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전을 상정한 것임이 실증되었다. 이는 또한 그동안 미국이 ‘말’로만 이야기해왔던 대북 핵선제공격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훈련의 시작이며, 미국이 이야기하는 ‘적극적 방어’라는 것이 바로 ‘핵선제타격’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해주었다.

1980년대 들어 ‘별들의 전쟁’이 상징하듯 무한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 한-미-일 삼각 동맹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는 첨예한 대립구도가 형성된다. 이와 함께 대북 핵선제공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 역시 한층 더 공세적이고 강도 높게 진행된다.

(3) 미국, 처음으로 ‘조선’과 마주 앉다

이에 대해 미국이 이북과의 평화협상 테이블에 앉았다는 사실은 한반도 분단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 것이었다. 6.25전쟁 이후 40년에 걸친 조미 대결구도에 변화가 생기고 갈등과 대립의 남북관계에서도 간간이 대화국면이 생겨나면서 거둔 성과가 89년과 90년 남북회담에 이어 91년 남북기본합의서였다.

그러면, 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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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서원 위원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부설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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