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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판사뒷조사문건은 재판독립성침해할위험"
김성훈 부장판사,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적 조치 및 제도적 보완 필요"
기사입력: 2020/12/05 [17:5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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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4일 대검찰청의 '판사사찰문건'과 관련해 "판사 뒷조사 문건은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며 "이에 관하여 논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에 해가 되지 않으며, 더 큰 공익에 봉사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또 "현재는 국민이 군주이며, 그 군주가 겁박받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경찰, 검찰, 법원으로 역할을 나누어 형사사법절차를 진행하도록 하였는데, 이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법원의 공정성, 중립성이 훼손되면 국민은 다시금 겁박받는 상태로 갈 것이다. 이 문건에 대한 판사들의 사회적 논의 참여는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 및 국민의 인권 보장이라는 큰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판사나 검사나 모두 권력의 세계, 정치의 세계에서 법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 선발된 사람들"이라며 "검사가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 과정에서 법의 지배를 약화시키면서 사실상의 권력, 위력, 여론전을 강화시키게 되면 그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제 법의 세계를 지켜야 하는 소명을 받은 자는 외롭게 판사만이 남게 되고, 판사들은 그 특성상 개별적으로 다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집단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의 인격과 헌신에 근거하여 법의 세계를 지켜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현 상황에 대하여 법관대표회의 또는 법원 행정처의 적절한 의견 표명, 검찰의 책임 있는 해명,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적 조치 및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성훈 부장판사의 게시글 전문은 다음과 같다.

1. 들어가며

제가 토론방에 댓글 말고 본문글을 올리는 것은 처음입니다. 제 일도 바쁘고 신경쓸 일도 많은데, 남이 써 놓은 글을 읽어나 보았지 제가 토론방에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문제되고 있는 판사 뒷조사 문건 관련 내용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2. 먼저 옛날 이야기 하나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한비자 이병 편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송나라에 자한이라는 대신이 어느 날 군주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관직과 포상을 내리는 일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일이니 임금께서 직접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죽이고 형벌을 내리는 일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니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군주는 꽤 좋은 생각인 듯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는 백성들 사이에서 어질다는 명성을 얻을 뿐, 잔인하고 포악하다는 질책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송나라 군주는 덕을 행하고 자한은 형을 행했습니다. 마침내 자한은 군주의 위엄을 갖게 되었고 시간이 흐른 뒤, 송나라 군주는 자한에게 겁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3. 판사들은 사회적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지적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논의의 수준도 매우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사법절차에 관하여는 아직 많은 오해가 쌓여 있습니다. 검사는 행정부에 속하고, 판사는 사법부에 속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아신 분들도 있고, ‘구형’과 ‘선고’를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도 많으며,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위한 ‘영장’은 헌법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또한 법원은 각 재판부별로 독립적으로 판결하고 3심제를 통하여 그 판단의 적절성을 확인해 가는 곳이지, 검찰 등 다른 국가기관들처럼 수장의 결단으로 의사결정이 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모르시거나, 믿지 않으시는 국민도 많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국민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형사사법절차의 큰 축을 차지하는 판사들이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을 위하여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하다 보니, 언론에는 주로 수사기관의 시각에서 사안을 보는 보도가 나오게 되고, 생업에 바쁜 국민들은 그런 보도를 보게 되면서 수사기관의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판사가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형사처벌 과정에서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따르는 많은 법원칙들, 예컨대 죄형법정주의, 위법수집증거배제원칙 등은 일반인의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직관적으로는 ‘나쁜 사람은 하여간 처벌해야 하는데 판사들이 봐줬다’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사람’인지도 확인되기 전에 ‘나쁜 사람’임을 전제로 처벌을 논하는 상황을 바라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위 법원칙들이 바로 ‘나쁜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임을, 그리고 형사사법절차는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를 이제는 판사들도 말하고, 사회적 논의에 참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4. 판사 뒷조사 문건은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위험이 큽니다. 이에 관하여 논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에 해가 되지 않으며, 더 큰 공익에 봉사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뒷조사 문건에서 몇가지 문구를 그대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 ‘검찰에 적대적이지는 않으나’, ‘물의야기법관 리스트포함’ 등이 눈이 뜨입니다.

일단 ‘물의야기법관 리스트포함’이라는 것은 문서 작성자가 어떤 경위로 알게 된 것인지 수사기록에서 불법적으로 온 것인지 여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에 적용된 판단기준을 그대로 하되 결론만 바뀌어 만약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비합리적이라는 평가’로 기재되어 있으면, ‘검찰에 적대적이지는 않으나’에 적용된 판단기준을 그대로 하되 결론만 바뀌어 ‘검찰에 적대적이나’로 기재되어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증거법칙에 충실한 것이, 검찰의 증명책임을 높게 설정하는 것이 검찰에 적대적인 것은 아닐 것이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검찰이 스스로 재판장을 ‘검찰에 적대적’이라고 판단하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요? 작년에 모 사건에서 공소장변경을 불허한 재판부에 대해 검찰이 취한 대응과 이후 ‘검찰·재판부 대충돌’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참고로 피고인도 형사재판에서 검찰과 대등한 당사자인데, ‘피고인·재판부 대충돌’이라는 기사가 나오지는 않고, ‘피의자·검찰 대충돌’이라는 기사는 더더욱 나오지 않습니다.

1회성이니까 또는 내용 자체가 별거 아니라는 입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건을 보면 그 자체로 문제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건 작성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과 확장성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위 문건과 비슷한 항목으로 이 법원 재판부 뒷조사, 내일은 역시 비슷한 항목으로 다른 법원 재판부 뒷조사, 모레는 항목을 확장하여 검찰에 적대적인지 여부를 확인해 나가면서 전국 검찰청이 형사 재판부 뒷조사를 하고 대검찰청이 이를 관리하게 되면, 어느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인가요?

위와 같이 공소유지와 관련 없는, 때로는 공개되지 않은 개인정보까지 수사기관이 수집하고 있으면 그러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피고인과 비교해 볼 때 당사자 대등의 원칙이 훼손됩니다. 나아가 이것이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의 빌미가 되어 버리면 법관의 중립성, 공정성이라는 가치는 크게 훼손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미 판사 뒷조사 문건이 공개되었고, 검찰은 공소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는데, 언제든지 뒷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판사들이 이에 관해 아무 문제를 삼지 않으면, 이후 피고인들이 과연 법원의 유죄 판결에 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에 반하여 현재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와 관련된 신청절차에서 해당 재판부가 독립하여 판단하였고 앞으로 관련 사건을 배당받을 해당 재판부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국민이 군주이며, 그 군주가 겁박받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경찰, 검찰, 법원으로 역할을 나누어 형사사법절차를 진행하도록 하였는데, 이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법원의 공정성, 중립성이 훼손되면 국민은 다시금 겁박받는 상태로 갈 것입니다. 이 문건에 대한 판사들의 사회적 논의 참여는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 및 국민의 인권 보장이라는 큰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마치며

판사나 검사나 모두 권력의 세계, 정치의 세계에서 법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검사가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 과정에서 법의 지배를 약화시키면서 사실상의 권력, 위력, 여론전을 강화시키게 되면 그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법의 세계를 지켜야 하는 소명을 받은 자는 외롭게 판사만이 남게 되고, 판사들은 그 특성상 개별적으로 다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집단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의 인격과 헌신에 근거하여 법의 세계를 지켜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판사들은 법의 세계의 마지막 수호자로 부름받은 자이고, 법의 사제입니다. 판사들에게는 물리력도 여론형성력도 그 밖에 어떠한 형태의 무력도 없습니다. 판사들은 오로지 법의 정신을 이해하고 이를 문장으로 바꾸고 이를 선언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저는 재판진행과 판결문 작성을 성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그 숙명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도와 법률문화가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을 침해할 위기에 처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토론방에도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 상황에 대하여 법관대표회의 또는 법원 행정처의 적절한 의견 표명, 검찰의 책임 있는 해명,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적 조치 및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박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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