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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세계
폭발점으로 다가서는 군사정세
[한호석의 개벽예감] 동북아시아 군사정세는 폭발점으로 다가서고 있다
기사입력: 2020/11/16 [09:2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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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군을 몇 시간 안에 궤멸시킨다

2. 제4차 대만해협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3. 조선인민군과 한미연합군의 싸움, 중국인민해방군과 미일동맹군의 싸움 

4. 동북아시아 군사정세는 폭발점으로 다가서고 있다

 

 

1.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군을 몇 시간 안에 궤멸시킨다

 

2020년 11월 4일 대만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황수광(黃曙光) 참모총장과 쉬옌푸(徐衍璞) 부참모장을 비롯한 대만군 수뇌부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명령에 따라 타이베이(臺北) 북쪽 다즈(大直)에 있는 헝산(衡山)전쟁지휘소에 들어갔다고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을 심각하게 우려한 대만군 수뇌부가 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한 것이다. 전쟁이 임박했을 때, 군수뇌부는 전쟁지휘소에 들어간다. 

 

대만군 수뇌부는 2020년 9월 19일에도 헝산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했었다. 2020년 9월 18일 중국인민해방군 전략폭격기와 전투기 18대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가 대만 해안에서 불과 68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상공까지 바짝 접근했고, 이튿날에도 폭격기와 전투기 19대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가 또 다시 대만 해안 상공에 바짝 접근했으므로, 대만군 수뇌부는 즉시 헝산전쟁지휘소로 직행하여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했던 것이다. 당시 이런 위기상황이 조성된 원인은 2020년 9월 17일 키드 크락(Keith Krach) 미국 국무부 차관이 이끄는 국무부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하여 중국을 극도로 자극한 데 있었다.  

 

그런데 2020년 11월 4일에는 중국인민해방군 전자전기 1대가 대만 서남부 방공식별구역에 들어갔을 뿐이고 전략폭격기와 전투기를 동원한 대만근접비행은 없었는데도 대만군 수뇌부는 헝산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했다. 이런 급박한 움직임은 대만군 수뇌부가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근접비행보다 더 심각한 군사적 위험을 직감하고 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대만군이 직감한 심각한 군사적 위험은 무엇인가? 나는 2020년 11월 9일 <자주시보>에 실린 ‘공동전선에서 포성이 울릴 때’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1년 7월 23일을 앞두고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할 다섯 가지 주객관적 조건이 성숙되었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그 조건들을 여기에 다시 열거한다. 

 

-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준비를 완료했다.

- 대만의 국가분렬세력은 분리독립책동에 광분하면서 중국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다.

- 미국은 대만문제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 보건재앙과 정치혼란에 빠진 미국의 전쟁능력이 약화되었다.

-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유리한 군사정세가 한반도에 조성되었다.

 

중국 <신화퉁신(新華通信)> 2020년 11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 11월 13일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제출한 ‘중국인민해방군 연합작전강요’라는 제목의 군사전략문서를 비준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연합작전이라는 말은 육군, 해군, 공군, 전략로켓군의 연합작전을 뜻하므로, 지금 중국인민해방군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언론매체 <환추시바오(環球時報)> 2016년 12월 7일 사설에 따르면, “인민해방군은 몇 시간 안에 대만군을 궤멸시키고 대만섬을 점령할 능력이 있다. 대만을 도우려는 미국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투는 끝날 것”이라고 한다. <사진 1> 

 

▲ <사진 1>위의 사진은 대만 북쪽 다즈에 있는 헝산전쟁지휘소 정문을 촬영한 것이다. 헝산전쟁지휘소는 대만군 전쟁지휘소다. 이 전쟁지휘소는 당연히 지하에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에 나타난 지휘소 정문은 어느 중소기업사업장 정문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저런 분위기 속에서 전쟁지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2020년 11월 4일 대만군 수뇌부는 헝산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경계태세를 명령했다. 전쟁이 임박했을 때, 군수뇌부는 전쟁지휘소에 들어간다.  

 

매우 다급해진 대만군은 전시동원체제를 마련했다. 2020년 10월 22일 옌더파(嚴德發) 대만 국방부장은 입법원 외교국방위원회에서 “차이잉원 총통이 동원령을 내리면, 45만명 병력이 대만방어작전에 나설 것”이라고 하면서, 전시에 정규군 18만5,000명과 예비군 26만명이 동원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10월 27일 대만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대만군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대처하기 위한 대규모 전투훈련을 대만 각지에 있는 5개 작전지구에서 일제히 진행했다고 한다. 

 

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만 국가안전국 추궈정(邱國正) 국장은 2020년 10월 29일 대만 입법원 외교국방위원회에서 “현 시기 양안(중국과 대만을 뜻함-옮긴이) 사이에서 전면전이 일어날 확률이 평소보다 높다”고 말했다고 한다. 바로 그때 어느 대만 입법위원이 최근 중국 모래채취선들이 대만군이 주둔하는 마쭈렬도(馬祖列島) 인근 해역에 자주 출현하는 것이 무력공격조짐이 아니냐고 추궈정 국장에게 거듭 물었다. 대만군이 요새화한 마쭈렬도는 중국 본토 해안에서 불과 3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몇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다. 질문을 받은 추궈정 국장은 직답을 피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두고 분석하고 있다”고 아리송하게 답변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해협에 있는, 대만군이 주둔하는 작은 섬들을 공격하는 국지전을 차츰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대만해협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즉시 전면전에 돌입하는 방식으로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므로 무력공격조짐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연평도를 포격했다. 그런데 당일 오후 6시 30분(서울시간으로 오후 7시 30분) 당시 대만 총통 마잉주(馬英九)는 총통부 청사에서 비상국가안전회의를 긴급히 소집했고, 대만군 수뇌부는 헝산전쟁지휘소에 들어가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취하도록 명령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오후 3시 41분에 끝났고, 한국 외교안보장관회의는 오후 4시 35분에 시작되었는데, 대만 비상국가안전회의는 오후 7시 30분에 시작되었고, 대만군 수뇌부는 전쟁지휘소에서 대만군에게 경계태세를 명령했던 것이다. 포격전은 대만에서 약 1,000km 떨어진 연평도에서 벌어졌으나, 대만군이 즉시 경계태세를 취한 것은 한반도 군사정세와 대만해협 군사정세가 얼마나 밀접히 결부되었는지를 보여준다.    

 

 

2. 제4차 대만해협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전진, 전진, 태양을 따라 나가자

최후 승리를 위해, 전국 해방을 위해“

 

이것은 중국인민해방군가의 맨 마지막 소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후 승리”와 “전국 해방”은 대만통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중국 전국을 해방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만 봐도, 대만통일전쟁이 중국의 국가운명을 좌우하는 핵심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대만통일전쟁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직후부터 중국의 국가운명을 좌우하는 핵심문제로 되었다. 

 

1949년 12월 7일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참패한 장졔스(蔣介石)의 국민당군은 130만 명에 이르는 지지자들과 함께 대만으로 달아났다. 1950년 5월 1일 중국인민해방군은 중국 최남단에 있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하이난섬(海南島)을 점령했고, 그때부터 대만을 점령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면 25년 동안 지속된 내전이 종식될 수 있었다. 중국인민해방군 정예부대들은 대만 해안으로부터 약 150km 떨어진 푸젠성(福建省)으로 집결하여 대만통일전쟁을 준비했다. 중국은 대만통일과 내전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바로 그런 시기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6.25전쟁이 일어난 때로부터 이틀이 지난 1950년 6월 27일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은 “대만해협의 중립화는 미국의 최고 이익”이라고 하면서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 해군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급파하여 해상을 봉쇄했다. 미국의 대만해협봉쇄는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한 불법행위였지만, 1949년 4월 23일에 창설된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은 무장력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미국 해군 제7함대에 맞설 수 없었다. 미국은 6.25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1953년 2월 2일에 가서야 대만해협봉쇄를 해제했는데, 6.25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의 결정적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전쟁의 포성이 멎었던 1953년 7월 27일 이후 중국은 대만통일전쟁을 위한 군사행동을 재개했다. 제1차 대만해협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푸젠성에 집결한 중국인민해방군 포병부대들은 1954년 8월 11일부터 9월 3일까지 푸젠성에서 3~4km 떨어진, 대만군이 주둔하는 진먼댜오(金門島)와 마쭈렬도에 집중포격을 퍼부었고, 11월에는 다첸제도(大陳諸島)에 집중포격을 퍼부었다. 푸젠성과 저장성(浙江省) 인근에 있는 여러 섬들에서 중국인민해방군과 대만군이 치렬한 공방전을 벌어는 가운데, 중국인민해방군은 1955년 1월 18일 다첸제도에서 13km 떨어진 이장샨댜오(一江山島)에 상륙하여 그 섬을 점령했다. 대만통일전쟁의 결정적인 시기가 다가왔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대만통일을 가로막으려고 광분했다. 1955년 1월 29일 미국 연방상원과 연방하원은 ‘대만결의안’을 의결했다. 그 결의안에서 미국 연방의회는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을 하는 전쟁권한을 미국 대통령에게 주었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의 전쟁권한에 중국 본토에 핵공격을 가하는 권한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1955년 3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는 미국이 중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핵공갈을 늘어놓았고, 당시 미국 해군 참모총장 로벗 카니(Robert B. Carney)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중국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전쟁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중국 본토에 대한 미국의 핵공격을 반대한다는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L. S. Churchill)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중국은 미국의 핵공갈이 공갈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중국이 6.25전쟁에 참전하였을 때 중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므로,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만해방전쟁에 돌입하는 경우 중국 본토가 미국의 핵공격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중국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되어 중국인민해방군 포병부대들은 1955년 5월 1일 대만군이 점거하고 있는 대만해협의 작은 섬들에 대한 집중포격을 중지했다. 

 

포격은 중지했지만, 대만통일을 집요하게 가로막는 미국의 핵위협을 물리치고 기어이 대만통일을 실현하려는 중국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중국이 미국의 핵위협을 물리치는 길은 핵무장밖에 없었다. 그래서 1955년 7월 4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중국의 핵무기개발사업을 지휘할 정책담당자 3인을 지명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제2차 대만해협위기가 발생했다. 1958년 8월 23일 오후 6시 중국인민해방군 포병부대들은 대만해협 진먼댜오와 마쭈렬도에 포탄 50,000발을 퍼붓는 집중포격을 가했다. 이튿날 밤 중국인민해방군 상륙부대는 대만해협의 작은 섬 둥딩댜오(東碇島)에 상륙하기 위한 전투에 돌입했다. 화들짝 놀란 미국은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급파했고, 최신형 전투기들을 대만 공군기지들에 배치했으며, 미국 본토에 있는 반항공미사일부대 1개 대대를 대만에 배치했고, 203mm 곡사포와 155mm 곡사포를 대만군 포병부대에 제공했다. 

 

제2차 대만해협위기 중에 중국인민해방군은 집중포격에서 멈추지 않고 공습작전을 전개했다. 1958년 9월 22일 중국 본토에서 이륙한 중국인민해방군 J-5 전투기 100대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대만 공습에 나섰다. 그에 맞서 대만군도 전투기 32대를 긴급히 출격시켰다. 대만해협 상공에서 조우안 쌍방 전투기들은 치렬한 공중전에 돌입했다. 100 대 32의 공중전이 벌어졌으므로,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이길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대만군 전투기들은 비밀병기를 사용하여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들을 한 대씩 격추하기 시작했다. 그 비밀병기가 바로 미국이 대만에 긴급히 보내준 AIM-9 공대공미사일이다. 공대공미사일이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던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어이없게도 20여 기를 격추당하고 퇴각했다. 그로써 미국이야말로 대만통일전쟁을 가로막은 주적이라는 사실이 또 다시 입증되었다.  

 

1995년 7월 21일 제3차 대만해협위기가 발생했다. 대만독립을 획책하는 리덩후이(李登輝)가 대만총통에 당선되어 국가분렬책동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기 때문에 중국은 군사행동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7월 21일부터 1996년 3월 23일까지 8개월 동안 지속된 제3차 대만해협위기 중에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해협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위협사격을 여러 차례 진행했고, 푸젠성에 전투부대들을 집결시켜 대만상륙전을 연습했다. 화들짝 놀란 미국은 항모전투단 2개를 대만 인근 해역으로 급파했고, 100,000t급 핵추진항공모함과 40,000t급 강습상륙함을 비좁은 대만해협 안으로 들이밀면서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상륙을 서둘러 차단했다. 

 

그러나 미국군에게 겁을 먹고 물러설 중국인민해방군이 아니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8,400t급 미사일구축함과 3,000t급 잠수함들을 출동시켰다. 그 구축함에는 항공모함을 공격할 반함선미사일을 탑재되었고, 그 잠수함들에는 항공모함을 공격할 중어뢰가 탑재되었다. 또한 중국인민해방군은 최신형 전투기 수호이-30을 100대나 출격시켰다. 대만통일전쟁이 눈앞에 다가왔다. 전쟁공포에 빠진 많은 대만주민들이 미국과 캐나다로 도피했다.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이 탄도미사일을 집중발사하여 대만군 방공망을 파괴하면, 중국인민해방군 상륙부대들이 대만해협을 건널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은 제3차 대만해협위기 속에서도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지 못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3년 1월 1일 중국 언론매체 <환구망> 보도기사에서 그 사연이 밝혀졌다. 보도에 따르면, 1996년 제3차 대만해협위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미국은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이 사용하는 위성위치확인체계신호(GPS signal)를 조작하는 전자전을 은밀히 벌여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비행 중에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도록 교란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어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이 대만 인근 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 3발 가운데 2발이 목표수역에서 벗어났다. 1996년 당시 중국은 전자교란전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전자전으로 탄도미사일의 비행을 교란하면, 중국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1996년에 일어난 제3차 대만해협위기 속에서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20년 1월 19일 중국 웨이보에 유출된 중국인민해방군 전쟁지휘소 내부를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을 보면, 대만섬 남쪽에 상륙하는 작전지휘소라는 지휘소명칭이 보이고, 대만섬 남쪽에 상륙하는 작전경로도라는 제목의 대형지도가 벽에 걸려있다. 상륙지대를 보여주는 커다란 모형판이 실내 중앙에 놓여 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사진 속의 전쟁지휘소는 대만 남부해안에 상륙하는 작전임무를 맡은 중국인민해방군 해군 륙전대의 전쟁지휘소인 것으로 보인다. 대만섬 서부해안은 높은 산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상륙하기에 불리하다. 그래서 중국인민해방군은 남부해안과 북부해안에 상륙하는 작전계획을 세워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제3차 대만해협위기가 발생했던 때로부터 어언 25년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 동안 중국은 미국의 무력개입을 차단하고 대만통일전쟁을 수행할 강한 힘을 키워왔다. 이를테면, 중국인민해방군 미사일부대들은 대만의 전략거점들을 조준한 미사일 2,500발을 집중배치했다. 그리고 대만해방전쟁에서 중심역할을 수행할 중국인민해방군 해군은 자기의 무장력을 대폭 강화했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항공모함 2척 

핵추진잠수함 12척을 포함함 잠수함 79척

구축함 50척

호위함 49척

경비함 71척

미사일정 109척

구잠함 94척

경비정 17척

소해정 36척

강습상륙함 2척

상륙수송함 8척

상륙함 32척

상륙정 33척

 

대만해방전쟁에서 중심역할을 수행할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도 해군에 뒤질세라 자기의 무장력을 대폭 강화했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전투기 1,200대

공격기 150대

폭격기 153대

정찰기 139대

수송기 445대

훈련기 1,618대

헬기 1,157대

 

그것만이 아니었다.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한 미국군을 격퇴할 강한 무장력도 갖췄다. 만일 상황을 오판한 미국이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 본토를 공격하면, 중국은 사거리가 4,000km에 이르는 정밀타격탄도미사일 둥펑-26을 발사하여 괌과 오끼나와에 설치된 미국의 군사전략거점들을 외과수술식으로 제거할 수 있다. 만일 상황을 오판한 미국이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을 저지하기 위해 항모전투단을 대만 인근 해역으로 출동시키는 경우, 중국은 사거리가 1,500km에 이르는 반함선탄도미사일 둥펑-21D를 발사하여 미국 항모전투단을 격침할 수 있다.  

 

지금 중국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중국은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1년 7월 23일 이전에 오끼나와 ⟶ 대만 ⟶ 필리핀 ⟶ 보르네오를 연결하는 제1도련선(島連線) 밖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내려는 평정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제1도련선 평정에서 핵심문제는 대만통일이다. 중국이 대만통일을 실현하면 일본 오끼나와는 중국의 포위망 안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중국은 제1도련선 평정계획을 실행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49년 10월 1일 이전에 일본 오가사와라제도 ⟶ 괌 ⟶ 싸이판 ⟶ 파푸아뉴기니를 연결하는 제2도련선 밖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몰아내려는 제2차 평정계획을 추진할 것이다. 제2도련선 평정에서 핵심문제는 괌에 배치된 미국의 군사력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3. 조선인민군과 한미연합군의 싸움, 중국인민해방군과 미일동맹군의 싸움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이 서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의 측면을 공격하는 것이다.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이 중국인민해방군의 측면을 공격하면,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혹심한 피해를 입고 승리할 것이다. 중국은 어떻게 하면 혹심한 피해를 입지 않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중국의 고심은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했을 때 과연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이 자동적으로 무력개입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결부된 것이다. 우선 한미연합군의 무력개입문제부터 살펴보자.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한미연합군의 무력개입문제를 결정하는 근거로 된다. 그 조약의 제2조는 다음과 같다. 

 

“당사국은 어느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와 상호원조에 의하여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고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실현하고 그 목적으로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 하에 취할 것이다.”

 

위에 인용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에 나오는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는 뜻이 아니라, 북이 남을 공격한다는 뜻이므로, 이 조항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무관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다음과 같다.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지배 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지배 아래로 합의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위의 인용문은 암시적인 표현이 들어있는 데다, 매끄럽게 번역하지 못한 문장이어서 뜻을 이해하기 힘들다. 위의 인용문을 직설적인 용어로, 알기 쉽게 다시 풀어쓰면 다음과 같은 뜻이 드러난다. 

 

“중국이 한국의 행정지배 아래에 있는 영토(군사분계선 이남지역)에 무력공격을 하는 경우, 그리고 중국이 앞으로 한국이 흡수통일하여 행정적으로 지배하게 될 영토(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무력공격을 하는 경우, 미국과 한국은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 자국의 헌법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위의 해석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6.25전쟁에 참전하여 한국을 공격했던 중국이 한국을 또 다시 공격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 따르면, 중국이 한국을 공격하는 경우에도 미국이 자동적으로 무력개입을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헌법절차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헌법절차에 따라 행동한다는 말은 미국 연방의회에서 무력개입문제를 의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남측이 북측을 흡수통일하는 경우 중국이 한국을 공격하는 상황을 가정한 조항이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상황을 가정한 조항은 아니다. 따라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무관하다. <사진 3> 

 

▲ <사진 3> 1961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는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위의 사진은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조약문에 서명하고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조약 제2조에 따르면,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면, 조선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중국을 지원해야 한다. 전쟁상황에서 조선이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중국을 지원한다는 말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이 일어날 때 조선도 지체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조선과 중국이 체결한 조약이다. 1961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조약 제2조는 다음과 같다.

 

“체약 쌍방은 체약 쌍방 중 어느 일방에 대한 어떠한 국가로부터의 침략이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를 지닌다. 체약 일방이 어떠한 한 개의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련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위의 인용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면 조선은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 따라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중국을 지원해야 한다. 전쟁상황에서 조선이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중국을 지원한다는 말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이 일어날 때 조선도 지체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한다는 뜻이다.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은 한미연합군이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아니라,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하는 미일동맹군의 전투력을 분산시킴으로써 중국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미일동맹군이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하는 문제인데, 미일안전보장조약이 그 문제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살펴보자. 1960년 1월 19일 워싱턴에서 체결된 미일안전보장조약 제5조는 다음과 같다. 

 

“각 당사국은 일본의 행정권 아래에 있는 영토에서 벌어지는 각 당사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인식하면, 각자 헌법조항 및 절차에 따라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는 행동을 할 것임을 선언한다.”

 

위의 조항에 따르면, 미일동맹군은 일본 영토에 대한 제3국의 무력공격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하는 경우 일본은 그 전쟁에 무력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중국은 대만을 귀속하고 나서, 일본이 불법적으로 지배하는, 대만과 오끼나와 사이에 있는 무인도인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은 센가꾸렬도라고 부름)도 귀속할 것이고, 그에 따라 오끼나와는 중국의 포위망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일동맹군은 중국인민해방군을 상대하는 전쟁연습을 줄곧 해왔기 때문에 일본자위대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개입하는 데서 작전적 어려움이 없다. 

 

예컨대, 2020년 10월 26일부터 11월 5일까지 주일미국군 9,000명과 일본자위대 37,000명이 참가한 합동전쟁연습 ‘킨 쏘드(Keen Sword)’가 일본 전역에서 진행되었다. 일본방위성이 펴낸 ‘방위백서’ 2019년판에 따르면, 일본자위대와 주일미국군은 1년 동안 10종 이상의 합동전쟁연습을 38회나 실시했으며, 총연습기간은 406일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일본은 2016년 3월부터 미국의 중국공격에 동참하는 무력행사를 합법화한 ‘안전보장관련법’을 만들어놓고 미일동맹군의 대중전쟁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육상자위대 막료장(육군참모총장) 출신 이와따 기요후미(岩田淸文)는 2017년 9월 15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미국이 중국과 무력충돌을 하는 경우 미국군은 제2도련선으로 일시 후퇴하고, 일본자위대가 제1도련선에서 중국인민해방군과 싸우는 작전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붕> 2020년 10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방위성은 14만명을 동원한 대규모 대중전쟁연습을 2021년에 실시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일본자위대는 미국의 힘을 믿고 만용을 부리며 중국인민해방군과 붙어보려는 것이다.  

 

 

4. 동북아시아 군사정세는 폭발점으로 다가서고 있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 돌입했을 때, 조선이 지체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하면, 전시에 한미연합군을 무조건 지원해야 하는 미일동맹군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과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에 동시에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미일동맹군은 그 두 전쟁에 동시에 대처할 전투력을 갖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에 무력개입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대만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한국을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해방군이 각각 준비한 군사력과 전쟁준비태세를 보면, 미국은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에 무력개입을 해도 패할 수밖에 없고,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을 해도 패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게는 패전 가능성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은 수수방관하지 않고,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전략적 선택은 다음과 같은 손익계산에 따라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대만통일전쟁에서 승리하면, 미국은 대만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미일동맹의 전략거점인 오끼나와가 중국의 포위망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미국의 서태평양 전략거점인 괌마저 전략적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조선이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면, 미국은 한국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미일동맹의 전략거점인 일본 사세보가 불안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괌과 오끼나와를 종전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손익계산을 따져보면, 미국은 조선의 조국통일대전에 무력개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에 무력개입할 때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그러므로 중국인민해방군은 대만통일전쟁에서 대만군을 제압하는 한편, 대만군보다 훨씬 더 강한 미일동맹군과 싸우게 될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2020년 11월 초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큰물피해복구에 동원된 군부대들에게 피해복구지역 살림집건설을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11월 25일까지 무조건원대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것은 2020년 12월 1일부터 2021년 3월20일까지 진행될 연례적인 군사훈련에 참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번 군사훈련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엄중한 시기에 진행될것이므로, 조선인민군은 가장 강도 높은 실전연습을 벌일 것이며, 그에 따라 한미연합군 수뇌부는 극도로 긴장할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개활동을 중지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10월 21일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0주년을 맞아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렬사릉원을 방문한 이후 오늘까지 26일째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올해에 들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회의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가 거의 매달 진행되었는데, 2020년 10월 5일 이후 회의는 열리지 않고 있다. 

 

미국의 반사회주의선전매체 <자유아시아방송> 2020년 1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2020년 11월 초 큰물피해복구에 동원된 군부대들에게 피해복구지역 살림집건설을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11월 25일까지 무조건 원대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원대복귀명령은 2020년 12월 1일부터 시작되는 연례적 군사훈련에 참가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조선인민군은 2020년 12월 1일부터 2021년 3월 20일까지 연례적 군사훈련을 진행할 것인데, 예년 경험을 보면, 정치사상학습 ⟶ 부대별 실전연습 ⟶ 신년사 학습 ⟶ 쌍방실동연습 및 협동작전연습 ⟶ 작전지휘훈련 ⟶ 판정과 총화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번 군사훈련은 중국의 대만통일전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엄중한 시기에 진행될 것이므로, 조선인민군은 가장 강도 높은 실전연습을 벌일 것이며, 그에 따라 한미연합군 수뇌부는 극도로 긴장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인구이동이 가장 많은 2020년 11월 26일 추수감사절 휴가가 끝나면, 그러지 않아도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폭발하여 최악의 보건재앙에 빠질 것이고, 대선결과와 정권이양문제를 놓고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는 트럼프파와 바이든파의 대결이 격화되어 최악의 정치혼란에 빠질 것이다. 미국이 그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동북아시아 군사정세는 조선의 조국통일대전과 중국의 대만통일전쟁이 동시에 일어날 거대한 폭발점으로 다가설 것이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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