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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강상기 시인 '당신의 심장에 얹어주는 편지'
[사람시선] 죽었으나 살아있는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민족통일과 조국을 말하라
기사입력: 2020/11/16 [01:3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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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일보의 [사람시선] 제2편으로 강상기 시인의 '당신의 심장에 얹어주는 편지'를 싣는다. <편집자>


당신의 심장에 얹어주는 편지
 
 
나는 해방군으로서 온 것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왔다고 큰소리 친 장군이 있었다 그 장군의 외침이 있었던 해에 나는 이 땅에 자랑스러우나 서럽게 태어났다
 
그래, 점령군 밑에 살아온 내 나이 75세 남북하나 되는 것 보지 못하고 아직도 부끄럽게 살아있다 골병든 온몸은 쑤시고저리고, 아픈 것도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통증을 견디며 조국의 새날을 기다린다 참혹하게 굴종하며 사는 것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래, 내 가슴은 무엇에 공헌했는가 찢겨진 내 동포의 상처 위에 페스트균을 뿌리려는 점령군 앞에 아부했나
 
희망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잠을 자는 거리를 교활한 점령군들이 활보하는 모습에 경배를 보낸다면 눈 부릅뜨고 죽은 동포들 눈동자의 소망을 설계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뜨거운 심장이 추락했는가 우리는 모진 바람 속에서 신음하며 어둠에 쳐박혀 살았다
 
서로 숨결을 나누는 사랑하는 내 형제자매들이여 선인장 몸통에 박힌 가시를 제손 아파 빼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점령군의 포로들이어야 하는가
 
점령군은 우리를 유리벽에 가두었다 점령군은 우리를 철조망 속에 가두었다 점령군은 우리를 짙은 안개방에 가두었다
 
하늘에는 하늘거리는 독수리가 선회하며 감시한다 아, 끔찍한 공허의 세월이여 우리는 새날을 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튀어나온 눈망울들을 잊을 수 없다
 
그 죽었으나 살아있는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민족통일과 조국을 말하라
 
멈춘 물방앗간은 물이 흘러 넘칠 때를 기다린다 꺼져가는 불은 풀무질을 기다린다 미루나무 찍어낸 도끼날과 식민과 분단을 주저없이 청산하자 점령군을 몰아낼 유예된 시간이 눈앞에 훤히 보인다
 
<강상기 시인>
 
강상기 시인은 1946년 전북 임실에서 출생하였으며,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고래사냥』외 다섯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고, 2018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문학부문)을 수상하였다. 현재 시문학동인회 ‘포엠만경’의 회장이다.
 
강 시인은 1982년 군산제일고등학교에 재직할 당시 5공 이적단체 고문조작 국가범죄 오송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17년 동안 해직교사의 아픔을 겪었다. 시인은 1999년 9월 복직하여 10년 동안 국어교사로 재직하다가 2009년 8월에 정년퇴직했다. 오송회사건은 2008년 11월 25일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 시집 : 『철새들도 집을 짓는다』, 『민박촌』, 『와와 쏴쏴』, 『콩의 변증법』, 『조국연가』
 
* 산문집 : 『빗속에는 햇빛이 숨어 있다』, 『자신을 흔들어라』,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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