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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제국주의 문화가 거대담론 거세시켜”
임헌영,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출간 간담회
기사입력: 2020/02/25 [22:1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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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소명출판사)를 출간해 24일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너무나 지금 거대담론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시대가 됐다. 너무 거대담론이 사라져 버리니까 전부 일상적인 문학이 나오고, 거기에 따라서 인문학 자체가 미세화 돼서 어떻게 보면 역사라든가, 사회라든가 이런 문제가 완전히 밀려나 버리게 된 것 같다.”


노(老) 평론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제기한 문제의식은 만만치 않았다. “세계역사나 한국역사가 지금 산업사회가 깊어질수록 사회문제, 거대담론이 더 많아지는데 거꾸로 문학은 거기서부터 더 멀어져 버렸다”는 것.


역사의 격류에서 비켜서지 않고 감옥도 마다하지 않았던 문학평론가 임헌영(79)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 모처럼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소명출판사)를 출간해 24일 낮 서울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통매(痛罵)하다’는 ‘몹시 꾸짖다’는 뜻이다.


특히 “올해는 최인훈의 <광장> 발표 60주년에 남정현의 <분지> 필화 55주년을 맞는다”며 “최인훈과 함께 남정현, 두 분을 사부로 모시고 20대 후반, 30대 초반을 문학평론가 활동을 했다”고 회고했다.


   
▲ 임헌영 소장의 평론집 출간 기자간담회에 조중동 기자들은 초청받지 못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번 평론집은 장학용, 이호철, 최인훈, 박완서, 이병주, 남정현, 황석영, 손석춘, 조정래, 박화성, 한무숙의 소설을 다루고 있다.


나아가 덤으로 작가들과 동시대를 살며 교류해온 체취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가 최인훈, 남정현을 ‘사부’로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삼총사나 다름없는 막역지우임을 평론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임 소장은 “현존 전후문학부터 지금까지 활동하는 작가들 다 포함해서 가장 정치적인 의식을 많이 다룬 조정래가 1위”라며 “조정래는 지금도 거대담론 다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금의 한일문제에서 소위 식민지근대화론(비판)을 가장 뒷받침하는 것은 조정래의 <아리랑>이다”며 “그거 능가하는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 이유는 학자들이 자료에만 의존했지만 조정래는 ‘현장’을 발로 뛰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이어 “최인훈이 가장 비판적으로 초점을 맞춘 게 두 가지”라며 “한국은 외세 지배하에 있다. 아직 식민지다. 일제 식민지도 못 벗어났고 미국 식민지다”라고 <총독의 소리>와 <화두>를 소개하고 “지금도 한일관계를 이만큼 다룬 작가 없다. 미국을 최인훈만큼 심각히 다룬 작가가 없다”고 상찬했다.


임헌영 소장은 이번 평론집에서 “분단 시대 우리 문학사가 <분지>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정도로 한 분수령을 이룰 수도 있다”며 “<분지>만 평가하는데 그 뒤에 오늘의 북핵문제라든가 이미 다 예견했다”며 “북한 문제, 남북 문제, 북미 문제, 핵 문제를 다루려면 남정현을 자세히 보면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분지>로 필화를 겪은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의 모든 평론가들이 다 홍만수가 스피드 부인을 겁탈한 걸로 나온다”며 “그런데 남정현 선생 말에 의하면 전혀 겁탈 안했다”고 확인하고, 오히려 “미군이 한반도에 와서 제일 먼저 겁탈한 것이 소설에 나타난 1호가 <분지>”라며 “홍만수 어머니가 미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미군에게 겁탈당해서 화가 나서 울화병 터져서 죽은 거다. 참 아이러니하다. 어머니가 독립운동가 아내다. 쉽게 말하면 미군이 와서 독립운동가 아내를 겁탈했다”고 짚었다.


   
▲ 신간『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를 들고 포즈를 취한 평론가 임헌영.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는 “세계화의 시대, 민족문학이란 구호가 낡은 것처럼 보이고, 이를 주장하면 구시대의 비평가로 착시되는 시대에 남정현을 읽는 기쁨은 배가한다”며 “여전히 21세기에도 제국주의와 민족 주체성의 대립은 유효할 정도가 아니라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분지>와 <허허 선생> 연작은 일깨워 준다”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꿀 때 그는 “반대했다”며 “민족이라는 말이 유럽에서는 제국주의고 국수주의적이고 한데, 개념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아직까지 준식민지 상태고, 우리는 제국주의적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를 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임헌영 소장은 의외로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평론집의 제2부를 이병주에 전적으로 할애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70년대에 가장 지식인 독자가 많았던 대단한 작가”라며 “그 당시 우리는 박정희 어용작가로만 알았다. 박정희와 친한 술친구였다”고 인정하면서도 “나중에 내가 아들 만나서 다시 이야기 해보니까 박정희 시대 때 그렇게 박정희 욕을 했다더라”고 전했다.


특히 “5.16부터 10.26 죽을 때까지 박정희의 모든 정책을 비판한 게 바로 <그해 5월>이라는 소설”이라며 “지금까지 나도 박정희에 관심이 많아서 연구 논문 다 봤는데, 어떤 정치학자도 이 소설보다 못하다”고 극찬했다.


또한 이병주의 <‘그’를 버린 女人>은 박정희의 여성 편력을 구체적으로 폭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재규 당시 정보부장이 박정희를 살해한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 동기’가 담겨있다고 주목했다.


바로 박정희가 여순사건(여순병란) 때 밀고했던 피해자의 후손들로 구성된 지하 써클 ‘박정희 암살단’을 김재규가 수사하고 석방한 다음 날 박정희를 저격했다는 소설 내용이다.


임 소장은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며 “김재규는 그런 말 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병주는 하지 않았을까 유추는 가능하다. 소설이니까 뭐라고 말할 수도 없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 외에도 그는 ‘한국의 카프카’ 장용학을 각별히 호명했고, ‘그렇게 독한’ 박화성도 거론했다.


그는 “모든 작가들의 공통분모가 뭐냐”고 자문하고 “오늘 모든 악은 친일파 청산을 안 해서다”라고 자답했다. “친일파가 친미파 되고, 그 사람들이 통일 반대하고 민주주의 반대하고 독재 찬양하고 독점기업 찬양하고 다 그대로”라는 결론이다.


임헌영 소장은 “왜 소설가들이 이렇게 훌륭한 소설을 썼는데 평론가들이 하나도 중요한 대목을 독자들에게 좀 중계해주고 소개해주고 널리 알려줘야 하는데 왜 안 해주느냐, 참 안타깝다”며 “은연중에 거대한 제국주의 문화가 거대담론을 서서히 거세시키는데 진보적인 지식인까지도 거기에 은연중 동조, 지지는 아니지만 은연중에 공감해서, 마치 거대담론을 다루면 문학이 아닌 것처럼, 정치를 다루면 문학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흔히 말하면, ‘문학적인 것’, ‘문학성이 있는 것’ 그렇게 말한다”고 세태를 지적했다.


   
▲ 임헌영 평론가는 한국사회의 거대담론을 정면에서 다룬 소설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는 “결국 거대담론을 다룬 것만이 인류 문학사에 남는 거지 당대에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들은 역사의 풍화작용 속에 대부분 사라지지 않느냐”며 “앞으로 여러분도 가능하면 거대담론 다룬 시나 소설 평론을 좀 많이 써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나는 그런 이야기했다. 만약에 이게 80년대까지의 작가들만 활동한다고 해도 김남주, 김지하 같은 시인이 수십 명 나왔을 거다”며 “참 너무 문단이 쓸쓸하다”고 말하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은 그 이전 때보다 훨씬 심해졌다. 그야말로 거대담론이 ‘날 잡아잡수쇼’ 떠오르는데 외면해 버린 거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번 평론집 스타일이 평론이 아니고 평론적 에세이”라며 “문학을 안 한 사람이 봐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밝혔다.

<통일뉴스=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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