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편집  2019.06.18 [04:03] 시작페이지로
사회·문화
개인정보취급방침
사람일보소개
광고/제휴 안내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HOME > 사회·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사회·문화
“함께 살 수 없나?”
영화 ‘기생충’이 자본주의를 향해 던진 질문
기사입력: 2019/05/30 [11:08] 최종편집: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각종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관용처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4인 가구 기준’이다.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혹은 정상적인(?) 가족의 상징처럼 굳어진 기준이다. 부부와 함께 두 명의 자식들로 구성된 ‘4인 가구’. 하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과 형편은 제각각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가족도 그러하다. 부부와 딸 하나, 아들 하나로 구성된 ‘박 사장(이선균)네 가족’과 ‘기택(송강호)네 가족’은 비슷한 ‘4인 가구’지만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 사장네와 가족 구성원 전원이 백수인 기택이네는 서로 만날 일도, 함께 할 일도 없이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서로 마주칠 일 없던 두 가족은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를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기묘한 인연으로 엮이게 된다. 기우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준 고액 과외 자리는 이들 가족에겐 거의 유일한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박사장네 저택의 문이 열리고,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조여정)가 기우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식의 운명이 결정되고, 능력치가 높으면 ‘금수저’, 낮으면 ‘흙수저’로 분류하는 이른바 ‘수저계급론’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다. 지금도 이 단어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다른 계급으로 나뉜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은 서로를 마주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삶의 공간부터 먹고, 마시고, 보는 모든 것이 다르다. 모든 것이 다르다 보니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배부르고, 편안하지만 굶고 있는 누군가와 잘 곳을 잃고 헤매는 누군가는 마치 바퀴벌레처럼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눈을 감으니 더욱 편안해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박사장 네 가족은 화목하다. 아이들을 위해 놀아주는 박사장 부부의 모습은 아름답다. 예의 바르고, 고상하고, 우아하다. 박사장 남매는 구김살 없이 착하게 커간다. 부자가 되기 위해 누군가를 착취하고, 비열하게 탄압하는 악의 얼굴을 박 사장에게선 찾을 수 없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부자다. 부도덕한 부자여서 욕이나 실컷 해주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게 도덕과 예의와 착함도 부자들의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반면, 기택이네 가족은 화목하다고 말하기엔 뭔가 어색하다. 예의 바르지 못하고, 때론 추악해 보이기도 한다. 기택이네 남매는 악다구니를 배우고, 견디며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배고픔과 잘 곳 없는 공포 앞에 그런 도덕이며, 예의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사는 것일까? 인간이 처한 환경은 그렇게 인간을 비참한 지경으로 내몰며 인간을 파괴한다. 때문에, 빈곤은 폭력이다.


이 영화엔 확실해 보이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충분히 악해 보이고, 충분히 비극적이고, 충분히 폭력적이다. 흔히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간조차 분리된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삶은 공존하기 힘들다. 공존이 힘들면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누가 누구에게 기생하는 것인지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생각할 수밖에 없다. 태어날 때부터 착하고, 구김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자신들만이 행복한 세계를 유지하고, 그로 인해 바닥으로 내려가야 하는 삶에 눈감는 그들이 자본주의라는 자신들만을 위한 체제에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조를 바꾸지않으면 모든 비극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봉준호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서로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생 또는 공생’이라는 인간다운 관계가 무너져 내리고, 누군가 누구에게 ‘기생’해야만 하는 서글픈 세상 속에서는 더더욱. 그런 세상 한복판에서 발버둥치는 어느 일가족의, 난리법석 생존투쟁을 지켜보면서 그들에게 ‘기생충’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이런 진지한 질문을 영화 ‘기생충’은 다양한 장르를 섞어 관객들에게 던진다. 재미있게 웃다가도 슬퍼지고, 슬퍼하다가 웃는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은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를 통해 실감 나게 전달된다. 한국적 양극화의 비극을 풍자한 이 영화는 세계 192개국에 판매됐다. 양극화된 세상과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비극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영화 ‘기생충’을 통해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비극적인 자본주의 구조에 영화를 통해 던진 봉준호의 질문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함께 잘 살 수 없는 것일까?
 
<민중의소리=권종술 기자>

권종술 권종술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사람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기생충] “함께 살 수 없나?” 권종술 2019/05/30/
오늘의사진
6.15 10.4 자주통일평화번영결의대회
많이 기사
  개인정보취급방침사람일보소개광고/제휴 안내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광고 대전 동구 동부로 55-58 603동 306호(판암동) ㅣ 전화 : (02)747-6150 ㅣ 전자우편:saram@saramilbo.com
등록번호 : 대전, 아00255 제호:사람일보ㅣ창간일: 2003년 6월 15일ㅣ발행·편집인 박해전ㅣ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해전
후원 : 하나은행 555-810120-77607 박해전
Copyright ⓒ 2003~2019 saramilbo.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 saram@saram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