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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핵위협이 한반도 핵문제의 본질
북미 핵공방 30년사, 교훈과 과제
기사입력: 2018/05/31 [09:1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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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이 마치 북한(조선)의 핵무기를 제거하고 북핵 개발을 막기 위한 협상처럼 호도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 핵전쟁 위험이 발생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핵위협에 기인한다.


미국의 핵위협은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3차례 핵폭탄 투하를 계획했다. 전쟁 당시 맥아더는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자마자 원자폭탄 사용을 요구했고, 그 후에도 “30여발의 원자탄을 투하하면 10일 안에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공언했다.


맥아더는 회고록에서 “나는 30-50발의 원자탄을 줄줄이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동해에서 서해까지 60년 내지 120년 동안 효력이 유지되는 방사성 코발트를 뿌렸을 것이다. 소련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계획은 완벽했다”고 기록했다. 2004년 12월 브루스 커밍스 교수도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지에 기고한 ‘북조선에서의 전화(戰禍)에 대한 회상’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로 미국의 핵공격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으나 맥아더의 원자탄 공격 발언에 자극을 받은 북한(조선)은 1958년 주한미군이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자 그때부터 핵 방어 계획에 착수했다.


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 미국


미국의 핵개발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는 독일 나치의 핵개발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됐다. 1944년 말, 미국은 히틀러가 이미 (1942년) 핵폭탄 개발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도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다. 핵무기가 세계 지배를 위한 만능의 보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훗날 아인슈타인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핵개발을 청원한 것을 크게 후회한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폭탄을 개발했으며, 이를 실제로 사용한 유일한 국가이고, 지금까지도 핵무기를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다.


미국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 북한(조선)은 핵공방 30년 역사에서 이 사실을 한 순간도 간과하지 않았다.


NPT와 CTBT 그리고 미국의 핵위협


북한(조선)은 1985년 12월 ‘핵보유국은 핵위협하지 않고, 비보유국은 핵개발하지 않겠다’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지만, 가입 18개월 이내에 체결해야 하는 ‘핵안전조치협정’의 의무 이행을 지연하면서 핵무기 개발 의혹을 샀다. 핵안전조치협정 체결을 지연한 이유에 대해 당시 북 외무성은 “우리가 조약에 가입한 후에도 미국이 우리에 대한 핵위협을 계속 증대시킨 것으로 하여 우리는 조약에 따르는 담보협정을 체결하려야 할 수 없는 엄중한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고 논평했다.


북한(조선)은 영변 핵시설 문제가 불거진 1990년 2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 이사회에서 핵안전조치협정 체결과 사찰 수락 용의를 표명했다. 이와 동시에 전제조건으로 남한에 배치한 주한미군의 전술 핵무기를 거론하면서 이의 철수와 미국의 핵위협 제거, 법적인 안전담보 공약, 동시 핵사찰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한반도 비핵화를 관철해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노린 ‘모략’이라며 거부했다.


북미 핵공방이 한창이던 1996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은 모든 핵실험을 금지해 새로운 핵무기 개발과 기존 핵무기의 성능 개선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약은 ‘발전용 또는 실험용 원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 지목된 44개국 모두가 비준해야 발효되는데 미국은 지금까지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흔히 북한(조선)이 핵실험을 하면 ‘도발’이라고 UN이 제재를 가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실험을 하는 미국이 하면 ‘실험’이라고 용인되는데, CTBT가 발효되지 않은 조건에서 모든 나라의 핵실험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게 국제적 관례라고 하겠다.


미국의 일방적인 북핵 동결과 핵사찰 강요로 촉발된 지난 30년간의 북미핵공방은 NPT 체제 아래서 가해진 미국의 핵위협과 CTBT 비준을 거부한 미국의 핵 도발 역사라 볼 수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미국의 핵위협


한미합동군사훈련 팀스피리트(1976년~1993년),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 RSOI(1994년~2007년), 키리졸브(2008년~현재)가 해마다 한반도에서 펼쳐진다. 이 훈련들은 북한(조선)을 겨냥한 핵공격 및 상륙작전 훈련으로 미국과 동맹국의 합동군사훈련 가운데 최대, 최상급이며 실제 전쟁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핵 합동군사훈련이다.


훈련엔 미국의 ‘칼 빈슨호’와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한 핵항공모함, 장거리 전략폭격기 B-52,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랜서를 등 핵폭격기 편대, 평균 20만명 이상의 한미 지상 병력이 참여한다. 게다가 훈련기간이 길게는 90일이나 된다.


훈련이 시작되는 순간, 북한(조선)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모든 기관이 국토방위태세에 들어간다. 매년 2~3개월간 북한(조선)은 전시체제에 돌입해야 하는 것. 결국 북한(조선)은 지난 40년간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따른 미국의 핵위협을 겪어왔다.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해 리영희 선생은 “지구상의 어느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미국이 감행하지 않은, 오로지 북한(조선)에 대해서만 계속해온 핵공격 협박”이라며, “이러한 핵위협을 받고도 핵개발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지도자는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000년 당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에서 클린턴 미 대통령을 만났다. 2018년 폼페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날지 주목된다. 지금까진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것까지 2000년과 똑같다. 2018년 북미정상회담에서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뛰어넘어 한반도에서 모든 핵위협을 제거하는 합의가 도출될지 주목된다. 핵위협을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에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민플러스=강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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