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편집  2018.06.20 [02:03] 시작페이지로
사람·여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사람일보소개
광고/제휴 안내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HOME > 사람·여론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사람·여론
‘친일파’와 ‘친미파’ 무엇이 다른가
우리 민족과 한반도의 아픈 역사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야
기사입력: 2018/05/08 [10:58] 최종편집: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지금은 미국에 지배당하는 시대이다. 친일파 못지 않게 친미파들 역시 우리의 비토 대상이다.”


내가 한국에 나갈 때마다 지인들과 사람들을 만나면 강조하는 말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친일파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말을 외치며 살았다. 그것으로 전부인가. 아니다 ‘골수 친미파’들 역시 친일파 못지 않게 우리 민족과 겨레의 미래를 갉아먹을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남쪽에서 온 사람이고, 이는 물론 조국 땅 남쪽에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북에서는 미국을 상대해서 강력하고도 철저하게 자기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남쪽의 마음가짐이다.


‘골수 친미파’들을 솎아내고 그들을 민중들로부터 유리시켜야 하는 것은 남쪽 사람들의 몫이다. 그래야지 남북통일도 되고 사람이 사람답게 어깨 펴고 사는 세상이 열리질 않겠는가. 그런데 이게 뭔가. 남쪽 땅의 현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미국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고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그들이 만든 논리에 짓눌린 채 말도 제대로 못한다. 이는 사회지도층일수록 더하다. 일부 강경한 성향의 반미단체들도 ‘미군철수’만 소리높여 외치지 정작 미국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안내견 노릇에 충실한 작자들에게는 말 한마디 않는다.


미국화가 사회적 성공의 기준이 된 우리 사회


왜 이럴까. 왜 미국의 안내견들은 나라를 순전히 미국의 기호와 이익에 맞도록 개조해 놓았으면서도 제대로 목소리 한 번 내질 못하는 것일까?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도 좋은가?


‘골수 친미파’들이나 안내견들은 미국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몸값을 불려왔다. 그것이 정상이고 경쟁력인 양 가치의 최상위에 올려 놓았던 결과다. 그래서 온 나라가 마치 미국화에 경쟁이 붙어 영어 몇 마디 못하면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는 분위기가 바로 오늘의 현실이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가 커리큐럼에 빠진다고 부모들이 집단시위를 하질 않나 영어 못하면 진학은 물론 취업이고 뭐고 사람대접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영어는 곧 지위요 사회적 잣대이니 누구나 의식 속에 미국에 대한 경외심이 드는 것이고 미국만 떠 올리면 주눅이 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어 못하면 출세할 수 없는 세상, 미국에 유학이라도 다녀와야 출세할 수 있고, 젊은이들이 최소한 어학연수라도 다녀와야 이력서라도 한 번 내밀 수 있는 해괴한 미국지상주의 별천지가 되어 있는데 이게 정상인가? 아무리 일제시대가 팍팍했었다 해도 이 정도였을까 싶다.


더욱 가관인 것은 ‘친미판 창씨개명’이 진행중이란 얘기다. 악덕재벌 대한항공 가문의 딸인 ‘에이미 조’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내에 들어갔을 때 5~60대의 부모들이 아예 영어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대학시절에 운동권으로 분류됐던 한 친구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우연히 그와 함께 만난 일행들이 자신을 돌아가며 소개하는데 차례대로 나오는 이름이 ‘오드리’, ‘필립’, ‘토마스’였다. 참으로 기막히는 노릇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있다. 우리 세대가 이럴진대 아이들 세대는 더 말해 무엇하랴.


미국화와 미국식 사고방식이 만연한 미국식 세상을 만나야 하는 것은 이 땅을 방문할 때마다 느껴야 하는 서글픔이 되고 말았다. 우리 겨레의 절반이 미국의 아류세계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말 못할 조바심과 위기감으로 목을 조여오고 있다.


‘골수 친미’로 몸을 불려온 세력들


세상이 이 모양이니 친미파들의 득세는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그들은 미국식 영어를 팔고, 미국제 무기를 들여오기 위해 안달이고, 미국의 문화를 팔기 위해 올인한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 된 지 이매 오래다. 그래서 소위 ‘친미파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되었다.


한때 친미파 집권당 대표였던 김무성이란 자는 이곳 미국을 방문했을 때 지금은 구순 노인이 된 한국전 참전 미군병사들을 찾아가 그들을 등에 업고 다니며 자신의 극진한 ‘미국사랑’을 표현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참전한 미군장성이 묻혀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가 비석을 손수건으로 지극정성을 다해 닦아낸 후 일행들과 두 번 큰절을 올렸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는 이 시대가 미국의 시대, 미국이 마치 그에겐 ‘천황’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뼈에 새긴 기회주의적 정치인이기 때문이리라.


이런 제 2, 제 3의 김무성은 지금 조국 땅에 수도 없이 널려 있다. 미국 대사관에는 민족의 이익을 팔기 위한 정보를 미국 대사에게 바치지 못해 환장인 정치인들이 줄을 선다고 위키리크스는 폭로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미국의 애완견임에 자부심을 가지는 사대주의 얼간이 오물들이다.


그들은 오히려 ‘왜 반미하느냐’고 큰소리친다. 친일파들이 반일한다고 큰소리치는 격이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반북.반공.매북이다. 미국엔 하염없이 관대하고 너그럽고 이해적이면서도, 같은 민족인 북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몰상식적이고 몰염치하다.


그들은 ‘일제시대’와 지금의 ‘친미시대’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 본질이 뭐가 다른데… 미국이 이 나라를 도와준다고? 미국이 북의 공격으로부터 남쪽을 보호한다고? 그 구차한 논리조차 일제에 대한 시각과 전혀 다르지 않다.


밀려오는 외세로부터 국권을 제대로 수호할 역량이 없으니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한시적이나마 넘겨야 한다는 ‘을사보호조약’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의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해 경성에 주재한다는 3항은 <오로지 한국군 작전통수권이라는 군권에 관한 사항>을 내세운 미국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하긴 다른 점이 있긴하다. 일제는 외세로부터 조선을 보호한다고 했지만 미국은 동족으로부터 그 누구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펼친 것이 달랐을 뿐이다.


2차 대전의 결과로 ‘침략국가이자 전범국가인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졌었다. 그런데 같은 ‘침략국가이자 전범국가인 일본’은 왜 동.서로 갈라지지 않고, 그들에게 짓밟혀야 했던 우리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져야만 했는가 말이다. 그래서 전화에 휩싸인 동족상잔의 비극과 오랜 세월의 반목과 대립은 일본의 무궁한 경제발전의 핵심동력이 되었지 않나.


우리 대한민국 깨어나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지금이라도 미국귀신 손아귀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어렴풋이 알기 시작한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수준으로는 태부족이다. 민중들의 깊은 자각과 각성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친미파'들에 대한 인식과 정의(定議)와 규명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 땅에서 미군은 어떤 의미이고 친미파의 존재 의미를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골수암’이었고 민족 불행의 화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골수 친미’의 그늘, 친미의 공기와 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보고 싶어도 알고 싶어도 그리 될 수가 없다. 식민지의 민중들은 교묘하게 안 보이는 새 장에 갇힌 새들처럼, 그들이 날라다주는 일용할 양식을 소비하며 그날그날 보내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느껴야 할 것은 단 하나. 그들과 분리시켜야 할 것도 단 하나, 그들이 경계해야 할 정신적인 적도 단 하나.. 바로 민족과 민중의 피를 빨아 자신의 배를 불리고 부를 창출하며 권력과 권위를 누리는 친미.숭미.종미의 사회학개론에 푹 젖어 있고 그것을 전파하며 몸소 실천하는 ‘골수 친미파’ 부류들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민족과 한반도의 아픈 역사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 준 적이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올바르게 해야 한다. 누군가는 해주어야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밝은 미래의 길이고 무엇이 어둠의 길인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 민족과 겨레를 위해 자랑스러운 길이고 무엇이 부끄러운 길인지 차분하게 얘기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 앞에 놓여진 커다란 과제요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소명인 것이다.


깨어난 우리는 분명 오염된 세상을 정화할 것이고 더럽혀지고 일그러진 세상을 딛고 평화와 화평의 세상을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다.


슬기로운 우리 한민족 아닌가!


<박명철 재미동포>

박명철 박명철 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사람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친미파] ‘친일파’와 ‘친미파’ 무엇이 다른가 박명철 2018/05/08/
오늘의사진
6.15 10.4 자주통일평화번영결의대회
많이 기사
  개인정보취급방침사람일보소개광고/제휴 안내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광고 대전 동구 동부로 55-58 603동 306호(판암동) ㅣ 전화 : (02)747-6150 ㅣ 전자우편:saram@saramilbo.com
등록번호 : 대전, 아00255 제호:사람일보ㅣ창간일: 2003년 6월 15일ㅣ발행·편집인 박해전ㅣ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해전
후원 : 하나은행 555-810120-77607 박해전
Copyright ⓒ 2003~2018 saramilbo.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 saram@saram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