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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시민 폭력행위’ 신군부의 왜곡 조작”
전남경찰청조사 결과 발표...북한군 개입설, 당시 기록엔 없는 내용
기사입력: 2017/10/11 [21:1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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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근거인 ‘자위권 발동’ 왜곡·조작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시민들이 경찰관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한 기록 등은 이후 전두환 신군부가 왜곡·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두환 신군부는 ‘자위권에 따른 발포’라는 정당성을 얻기 위해 시민들이 주요 경찰관서를 습격 무기를 탈취한 시간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 37년을 끊임없이 5·18을 매도해온 ‘북한군 개입설’ 또한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전남지방경찰청(청장 강성복, 경찰)은 11일 오전 청사 5층 오룡마루에서 ‘5·18민주화운동 과정 전남 경찰의 역할 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경찰관 증언과 자료를 중심으로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수집 및 활동조사 TF’(TF)에서 작성했다.


경찰은 먼저 시민들이 총기를 탈취해 무장하고 발포해 자위권 차원의 군 발포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에 대해 “최초 무기실탄 피탈은 5월21일 13시30분경 나주서 남평지서에서 발생했고, 이후 나주, 화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피탈돼 시민들의 무장이 이루어진 것”이라면서 “군의 도청 앞 집단 발포가 이뤄진 5월21일 13시 전까지는 시민군의 총기발사는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군의 발포는 5월20일 야간 광주역 부근에서 이미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시민들의 발포로 군의 자위권적인 발포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북한군 수백 명이 광주에 잠입해 시위를 주도하고 사라졌다는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서는 “5·18당시에는 언급된 적이 없으며, 당시 작성된 군과 정보기관 작성 서류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라면서 “당시 광주에는 약 130여명의 정보 보안 형사들이 활동하고 시내주요지점 23개소에 정보센터를 촘촘하게 운영했는데, 이런 형사들의 눈을 피해 광주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활동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식 밖의 주장이라는 한결같은 증언이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은 “금번 조사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당시 관계기관에서 작성된 상황일지 등 문서와 기록의 왜곡, 편향 기재 등 신빙성의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계엄정국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계엄군의 과오나 잘못을 기록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으며 시위대와 시민의 부정적인 면은 과장, 부각되거나 왜곡되어 기록됐다”고 밝혔다.


또한 ‘광주시민은 폭도’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 지속적인 교도소 공격에 대해서는 “시민군의 교도소 지속 공격은 오인, 과장됐거나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공수부대의 초기 과격진압과 시민들의 무차별적 폭력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한 점 △기록과 자료를 정리·보관하고 참여 경찰관들의 생생한 증언 등을 통해 5·18에 대한 경찰 자체 진상조사의 의지와 노력이 없었던 점 등을 당시 업무수행 과정에서 잘못한 점으로 꼽고 반성했다.


끝으로 “이번 조사과정에서 확보된 객관적인 증언과 수집된 자료, 보고서는 국가기관인 경찰이 주요 당사자 입장에서 스스로 직접 작성한 5·18관련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 “역사적으로 5 18과 관련된 진실을 알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확신하며 계속적으로 자료를 찾아내고 증언 등을 확보하여 미흡한 점을 보완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이번 경찰 보고서는 ‘전두환 회고록’이 발간된 지난 4월부터 TF를 꾸려 9월까지 5개월간의 활동기간을 거쳤다. 이는 그 배경에 ‘전두환 회고록’이 있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회고록에 “광주사태 초기 경찰력이 무력화되고 계엄군이 시위진압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전남경찰국장의 중대한 과실 때문이었다”라고 안병하 당시 전남 도경국장과 경찰 책임론을 주장했다.


이에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은 “경찰활동에 대한 진상조사는 물론 자료와 기록이 없는 우리 경찰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더 늦기 전에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자료를 수집해서 역사왜곡을 바로 잡고 진실규명에 도움이 되도록 5·18에 대한 경찰의 주체적 보고서 한 권은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5·18관련 기록을 남기게 됐다”고 밝혔다.


경찰의 이번 조사 활동에는 5·18기념재단을 비롯한 5월단체도 수시로 도움을 줬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경찰이 스스로 5·18 진실규명에 나선 노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면서 “군이나 다른 기관들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게 좋겠다. 그래야 기관들 스스로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불신을 벗을 수 있고, 5·18 진실을 밝히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편, 경찰은 안병하(경무관) 전 도경국장과 관련한 조사 결과 “안 국장은 5·18을 맞이해 단 한 번의 근무지 이탈 없이 최선을 다해 수습을 위해 노력했고, 상부의 강경진압을 거부하고 시민의 안전을 강조하는 소신을 유지했으며 초기에 광주시내 무기를 소산시켜 탈취방지 뿐만 아니라 경찰무장으로 인한 더 큰 비극을 막았다”고 치하하면서 “사후 그 공적이 평가돼 순직과 5·18 유공자로 처리됐으며 ‘올해 경찰영웅’으로 선정돼 흉상 제막을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안 전 국장은 신군부로부터 광주 시민에 대한 발포 명령을 받았지만 끝내 거부했다가 5·18 뒤 계엄사령부 소속 보안사 요원들에게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 고문 후유증으로 8년 동안 투병하다가 지난 1988년 사망했지만 15년이 지난 그 공적이 인정돼 2033년 ‘5·18 유공자’가 됐고, 2006년에는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민중의소리=김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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