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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체 게바라 50주기
그의 삶과 정신을 돌아보는 영화와 책
기사입력: 2017/10/09 [12:4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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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9일.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체포된 혁명가 체 게바라가 총살당했다. 볼리비아에서 죽임을 당한 그의 사진은 전 세계에 공개됐다. 체게바라의 웃옷은 벗겨져 있었고, 볼리비아 군인들은 그를 모욕하고 있었다. 그의 사진은 체 게바라를 하찮은 인간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공개됐지만 오히려 그를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영웅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대중들은 그의 죽음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봤다. 체게바라는 ‘남미의 예수’라 불리었다.


피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의 주역이 된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그런 그가아르헨티나도 쿠바도 아닌 볼리비아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볼리비아에서의 그의 죽음은 영원한 혁명가로서 살아온 그의 삶을 상징처럼 보여준다. 죽기 4년 전이던 1965년 4월 그는 새로운 길을 떠났다. 1959년 쿠바 혁명에 성공했지만 6년이 지난 그해 체게바라는 “쿠바에서는 모든 일이 끝났다”며 홀연히 사라졌다. 혁명가로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이다. 길에 나서며 그는 ‘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말을 남겼다. ‘영원한 승리를 향해서’ 또는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말이다. 혁명은 끝이 없고, 영원히 승리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는 굳은 다짐이었다. 길을 나선 그에게 쿠바의 인기 가수 카를로스 푸에블라는 체게바라의 다짐을 인용해 ‘Hasta siempre Commandante’(사령관이여 영원하라)라는 곡을 만들어 체게바라에게 헌정했다. ‘아스타 시엠프레 코만단테’(Hasta siempre Commandante)는 체게바라를 추모하는 노래로 전 세계에서 불리어지고 있다.


지난 1997년 체 게바라 서거 30주기를 맞이해 체게바라의 유골이 볼리비아에서 발굴돼 쿠바로 옮겨져 안장됐다. 세상은 영원한 혁명가에게 열광했다. 그의 얼굴이 담긴 티셔츠가 만들어졌다. 체게바라는 추모를 넘어 마치 대중스타처럼 소비되는 대상이 됐다. 혁명이 사라진 시대. 혁명을 말하는 것이 어색해져버린 시대에 혁명가가 유행하는 건 어딘지 씁쓸하다. 하지만 체게바라 열풍은 그의 삶이 보여주는 깊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올해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주기가 됐다. 영원히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그의 삶은 오늘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체 게바라 서거 50주기를 맞이해 그의 삶과 정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과 영화를 소개한다.


혁명가 체 게바라, 그 정신의 기원을 찾아서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 2004)


혁명가 체 게바라를 알린 영화 가운데 우리나라에선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23살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퓨세)’는 생화학자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남미대륙 횡단을 계획한다. 안데스산맥을 가로질러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을 거쳐 베네수엘라까지 가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여행을 통해 만난 세상은 지금까지 알던 현실과 너무 다르고, ‘퓨세’와 ‘알베르토’는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노한다. 거대한 잉카문명의 유적지에서부터 페루 아마존 깊숙이에 있는 한센병자 수용소까지, 그들은 이 여행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풍부하고 복잡한 인간과 사회 지형도를 목도하게 된다.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두 젊은이. 영화는 젊은 시절 체 게바라가 마음속에 깊이 지니게 된 혁명정신의 기원을 추적한다.


그라나도와 체 게바라가 쓴 두 권의 여행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그들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러면서도 서정적이고, 격렬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두 청년의 고민과 이상을 전하고 있다. 이런 여정을 따라가면 그가 왜 쿠바 혁명에 머물지 않고, 영원한 혁명을 꿈꾸며 볼리비아로 떠난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쿠바혁명과 혁명 그 이후의 체 게바라
 영화 ‘체’(Che, 2008) 1부 - 아르헨티나, 2부 - 게릴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다. 베니치오 델 토로가 제작과 함께 주연으로 체 게바라 역을 맡았다. 지난 2008년 칸 영화제에서 공개되면서 프랑스, 영국,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일본 등 각국에서 판권을 수입하는 등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영화는 1부 ‘아르헨티나’와 2부 ‘게릴라’로 구성돼있다. 두 영화를 모두 합쳐 4시간 29분에 이르는 대작이다. 1부 ‘아르헨티나’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및 다른 혁명가들이 처음으로 카리브 해의 섬에 상륙했을 때부터 시작해 2년 뒤 그들이 바티스타정권을 전복시키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2부 ‘게릴라’는 쿠바 혁명 이후 몇 년간을 묘사하고 있다. ‘게릴라’는 체 게바라가 1964년, 뉴욕 시의 국제 연합 본부를 방문한 때부터, 1967년, 그가 볼리비아의 산지에서 숨을 거두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두 영화 모두 평단의 평가는 엇갈렸지만, 쿠바 혁명의 준비와 과정 그리고 혁명 이후의 체 게바라에 이르기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호평이 많았다. 특색있는 건 미국의 대중영화 감독인 소더버그가 만든 영화임에도 두 영화 모두 단돈 한 푼의 미국 자본의 투입이나 배급 계약 없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몰랐던 체게바라, 그는 시인이었다
 영화 ‘체 게바라- 뉴맨’(Che. Un hombre Nuevo, 2010)


영화 ‘체 게바라- 뉴맨’는 체 게바라의 인간적인 모습,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 놀라운 결단력,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체 게바라가 마지막 체포된 볼리비아의 군사기록보관소에서 발견된 새로운 자료들과 쿠바에 생존하는 가족들이 말하는 그에 대한 증언,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체 게바라의 육성 자료 등이 통해 체 게바라 자신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그는 폭력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현재 우리 삶과 같은 당시 기록을 담으면서, 체 게바라의 주관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글, 녹음 기록, 내레이션 등을 통해 당시 그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체 게바라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책, 영화, 다큐멘터리, 노래, 대를 이어 내려온 이야기 등에서 많이 회자되어왔다. 하지만 바우에르 감독과 제작팀의 끈기 있는 연구로 새로운 문구, 사진, 다른 주제나 이야기, 삶을 묘사했을 수백 미터의 필름이 소실된 영상 조각 등과 같은 새로운 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12년 동안 공개 및 비공개 정보는 물론, 체 게바라를 아는 이, 그에 대해 들은 이의 이야기를 모아, 오랜 역사 속에 수없이 뒤죽박죽 된 기록을 재정렬한 결과물이다. 공개되지 않은 모든 이미지와 녹음 기록 등을 샅샅이 뒤져 모은 자료를 통해, 바우에르 감독은 체 게바라의 투쟁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것이 알려졌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상황에서도 체 게바라에 대한 수없이 많은 새로운 정보와 비밀을 찾아냈다. 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발견은 그의 시적 능력이었다. 그는 평생 끊임없이 글을 남겼다. 가족에게 지속적으로 남긴 짧은 서신은 그의 사상과 유머를 그대로 보여준다. 풍부한 감정이 실린 그의 작품과 시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과 예술가적 자유를 보여주고자 하는 바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 체 게바라 신드롬을 일으키다
 책 ‘체게바라 평전’


실천문학사에서 지난 2000년에 나온 ‘체게바라 평전’은 우리 사회에 체 게바라 열풍이 일게 한 주인공이었다. 책은 출간 두달만에 2만부 넘게 팔리며 비소설 부분 1위를 독차지했다. 외국인물, 그것도 한동안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배척됐던 체게바라가 대중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주목되기 시작한 건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체 게바라에 관한 전문가로 알려진 장 코르미에는 체의 아버지를 비롯해 체가 살아 생전 관계했던 모든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그의 모습을 전하고 있으며, 그가 남겨놓은 편지글이나 잡문들 거의 대부분을 실어 체 게바라 전기의 최종본을 완성했다.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전세계 전장을 뛰어다닌 체 게바라는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었다. 검은 베레모에 아무렇게나 기른 긴 머리칼,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열정적인 눈빛, 굳게 다문 그의 입술은 진보적인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여 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뒤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박차고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 등지에서 게릴라 활동을 계속하다 전장에서 숨진 게바라. 이 열정적 투사에 대해 당시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했다. 쿠바를 해방시킨 뒤 국립은행 총재 등의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하던 게바라의 모습은 가난한 민중들에게 성자로 추앙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체 게바라 열기는 그의 활동영역이 아니었던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식지 않고 있다. '단지 그의 정치적인 입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라는 수많은 회고담 속에서 잘 드러나듯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체 게바라는 언제나 살아 있다. 쿠바의 한 지도급 인사는 '세월이 흐를수록 체와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60년대라는 시대상과 그 시대를 불꽃같이 살다간 게바라와 같은 인물을 다시 기대할 수 없는 이상 게바라는 앞으로도 ‘이상을 꿈꾸는 인간의 대표’로 남을 것이다.


체 게바라 자신이 전하는 생생한 목소리
 책 ‘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자서전’은 체 게바라 연구센터와 오션출판사가 체의 모든 기록들을 모아 전집의 형태로 기획한 15권 책들 중 첫 권이다. 체의 모든 기록들을 모으고, 그것을 묶어낸 이 작업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그의 글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나 그를 온전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체 게바라는 직접 자신의 자서전을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언제, 어느 때라도 자기 몸의 일부처럼 수첩을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그 안에 그의 모든 것을 담았다. ‘게바라 자서전’은 윤문이나 가필이 아니라, 전적으로 체 게바라 자신이 남긴 수많은 육필 기록들로 채워져 있다. 그가 직접 쓴 글과 편지, 인터뷰 기사, 직접 찍은 사진들로 엮인 이 책은 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또한 15장으로 짜여진 본문은 어느 정도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편지에서 편지로, 메모에서 메모로 이어지는 체 게바라의 소명에 대한 추구, 사상과 신념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에 의해 구성된 체 게바라,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그려진 체 게바라가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직접 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깊은 인간성에서 우러나오는 헌신과 배려로 친구들을 사위었던 그를 만날 수 있으며,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발전해나간 한 인간,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았던 인간, 체 게바라를 만날 수 있으며, 그의 혁명에 대한 헌신, 인간에 대한 사랑, 감수성과 다정다감한, 그리고 인간적인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1967년 체포될 당시 체의 배낭엔 두권의 일기가 있었다
 책‘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 (어느 혁명가의 최후)’


1959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뒤, 체 게바라는 33세의 나이로 산업부 장관, 국립은행 총재 등을 맡으며 사회주의 쿠바 건설에 헌신한다. 하지만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와 세계 적화 전략 등을 두고 소련과 (소련의 지원을 기대했던) 카스트로와 미묘한 견해차를 보이게 된다. 체 게바라는 소련이 노멘크라투라(특권 엘리트)의 국가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리하여 자신을 ‘돈키호테’로 부르길 좋아했던 이상주의자 체 게바라는 미련 없이 혁명 정부의 요직을 내던지고 혁명의 가시밭길로 달려갔다. 콩고 내전을 거쳐 1966년에는 그가 ‘남미혁명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부대를 일으킨 것이다.


총 52명의 게릴라 대원(볼리비아인 29명, 쿠바인 16명 및 페루 등 외국인 대원 7명을 포함)이 볼리비아 남동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11개월 동안 벌인 게릴라전은 처절한 실패로 돌아갔다. 1967년 10월 8일, 볼리비아 산악지대 유로 계곡 전투에서 게릴라 대장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고, CIA의 개입으로 다음 날 라 이구에라에서 처형당한다. 볼리비아 정부는 국제 언론에 처형당한 체의 모습을 공개했는데 생포 당시 길게 자란 머리칼과 지저분한 수염은 말끔히 깎인 모습이었다. 당시 볼리비아 내무장관 아르게다스는 체 게바라의 배낭에서 발견된 일기장 사본과 양손을 잘라 쿠바의 카스트로에게 보내는 ‘잔인한 친절’을 보였고 곧바로 체의 시신을 비밀리에 소각했다고 발표했다.


체가 유로 계곡에서 생포당할 때 지녔던 올리브 그린색 배낭에 들어 있던 두 권의 일기와 몇 장의 사진은 카스트로에 의해 1968년 ‘볼리비아 일기’로 발간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체 게바라의 텍스트가 되었다. 일기는 1966년 11월 7일 볼리비아 동남부 냥카우아수에 도착한 날 시작되어 유로 계곡 전투에서 체포되기 전날인 1967년 10월 7일에 끝난다. 체 게바라는 게릴라 부대가 행하는 모든 일, 즉 계획과 결정 사항, 회담 내용, 전투 및 작업 참가자, 대원들의 분위기와 건강 상태를 촘촘하게 기술했고 무장 투쟁에 관한 학습 상황과 라디오 방송의 정치 뉴스를 평가했으며 행군 지역과 거리, 고도 등도 기록했다. 한마디로 '볼리비아 일기'를 통해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이 실패한 이유와 정황도 상당 부분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볼리비아 일기'가 체 게바라 자신의 가장 직접적인 육성으로 게릴라 부대의 생활을 기술하고 전술적 오류와 실패마저도 한 치의 미화 없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남긴 일기가 사본 형태로 편집되어 출간된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일기 원본이 공개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체 게바라의 일기 원본은 1980년 그간 보관해왔던 볼리비아 군 금고실에서 유출되었다가 런던의 한 경매장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이 경매에서 일기 원본을 낙찰 받은 후 볼리비아 중앙은행(BCB)에 보관해왔다. 그리고 체 게바라 탄생 80주년이었던 2008년 7월 볼리비아 정부는 처음으로 일반에 일기 원본을 공개했고, 실물을 재현한 한정판을 출간하기도 했다.

<민중의소리=권종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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