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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양주의’라는 말을 남용한다
하지만 반성은 당신들이 해라
기사입력: 2017/10/01 [12:2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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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한국 유부녀들을 대상으로 조금 이상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설문조사는, “당신이 만약 국제결혼을 한다면 어느 나라 남자와 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 것 같은가? 1위가 프랑스 남자, 2위가 이태리 남자로 나왔다.(ㅋ)


나는 요즘 ‘모양주의(慕洋主義)’라는 말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사용한다. 모양주의는 내가 ‘모화주의(慕華主義)’에 유추하여 만든 말이다. 우리가 알듯이 모화주의는 중화문명에 경도된 조선인을 비난하는 말로 쓰인다. 같은 이치로 모양주의는 서양문명에 경도되어 있는 한국인을 비난하는 말이다.


위 결혼정보회사 조사 결과는 한국인들에게 침투해 있는 모양주의의 단면을 보여 준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 응하는)의 모양주의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식인들의 모양주의다. 지식인들은 보통 사람들을 오염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수 출신 한 진보 지식인이 ‘대영제국의 역사가 토인비’라고 표현하면서, 토인비가 조선을 나쁘게 말할 정도였으니 ‘조선은 나쁜 나라였다’는 식의 논지를 전개하는 것을 보았다. 토인비는 방대한 책 『역사의 연구』 저자다. 이 책에서 토인비는 문명의 추진력은 고차문명의 저차문명에 대한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상호작용에 있다고 주장했다.


서양이라고 하면 미국과 유럽을 가리킨다. 그런데 미국 문화는 천박하지만 유럽 문화는 세련된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지식인이 의외로 많다. 토인비는 만년에 조선의 효와 가족제도를 알고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했다는 일화를 남겼지만 젊어서의 그는 유럽 중심주의자였다. 그는 유럽문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면서 끔찍한 전쟁 선동 책자를 쓰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에는 유럽의 저명한 학자와 예술가라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선망하는 지식인이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유럽의 좋은 것만 알지 나쁜 것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젊어서 가진 역사관 또는 문명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그리고 대체로 소인은 강자를 좋아하는 법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전쟁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에 따라 호전론과 반전론이 대립하고 있다. 나는 제 아무리 저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호전주의자라면 진정한 학자나 예술가는 아니라고 본다. 전쟁은 광기가 아니고서는 옹호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역사적으로 저명한 유럽인들의 사례에서 무수히 목격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영제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전쟁 선동론자였다. 그런데 어디 토인비뿐이랴? 영국의 시인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전쟁 부상자의 심장에서 스며나오는 고름이 그렇게 꿈처럼 달콤할 수가 없다고 썼다. 루퍼트 부룩은 우리에게 전쟁의 시련을 내리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클로델 아폴리네르, 에즈라 파운드, 이사도라 던컨 등은 전쟁에서의 투쟁은 거룩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H. G. 웰스는 베스트셀러가 된 자신의 소설에다 전쟁이 종교의 부활을 가져다주었다고 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말러는 참전가를 작곡했다. 드뷔시, 알란 베르크, 스트라빈스키는 때맞추어 민족을 예찬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가장 희극적인 사람은 프로이트였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국가에 나의 리비도를 다 바치고 싶다”고 부르짖었다. 막스 베버, 뒤르켐 같은 쟁쟁한 학자는 소관 분야에서 전쟁을 옹호해야 할 명분이나 적을 섬멸해야 할 이유를 찾아냈다. 베르그 송 같은 철학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학, 회화, 음악, 철학, 과학, 분야에서 활동한 기라성 같은 유럽의 인물 중 폭언과 허세로 점철된 호전 구호를 내뱉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유럽인이 대일본제국 참전시를 4편 남긴 한국의 서정주보다 그다지 나을 게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인 서정주는 심하게 비난하면서도 유럽인들에게는 하염없이 선망과 동경을 보내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자주정신을 해친다. 내가 왜 모양주의라는 말을 남용하는지 이해해 주기 바란다. 반성은 모양주의자들, 즉 당신들이 해야 한다.

<김갑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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