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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 든든한 언덕 임재복 선생을 추모하며
범민련 통일운동과 6.15 10.4선언 이행 투쟁에 적극 나서
기사입력: 2017/08/31 [13:0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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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임재복 선생 영정     © 사람일보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사에 있어 큰 일을 많이 해왔으며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과 노동해방을 위해 열과 성을 다 바쳐온 임재복 선생이 간암 투병 끝에 29일 새벽 3시, 81세를 일기로 끝내 영면의 길에 들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광주전남공동의장, 범민련광주전남의장,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광주전남의장 등 거의 모든 광주전남지역연합조직의 의장을 도맡다시피 해왔는데 어느 것 하나도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한 것은 없고 시대와 주변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맡아온 의장이었다. 그래서 광주전남지역에서 임재복 선생은 '영원한 의장님'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청년학생들을 더 없이 사랑하여 그들이 살풍경한 공안탄압을 받을 때면 온 몸으로 나서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장으로는 지금 청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례위원회 사무를 책임지고 있는 유종은 민권연대 광주전남 공동대표는 "임재복 의장님은 정의의 화신입니다. 불의를 보면 절대 지나치는 법이 없었으며 단호히 맞서 싸웠습니다. 그 기질은 항일운동을 하다 일제 경찰에게 희생된 증조부, 항미 항전을 하다 희생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라며 얼마나 정의감이 투철했는지 알 수 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95년 김영삼 정권이 온갖 폭력으로 통일운동을 탄압하던 시절 범민련 통일운동 관계로 구속되었던 임재복 선생은 단호하게 형사들 앞에서 묵비권을 행사하였다. 그래서 형사들은 상스런 욕설에 폭력까지 휘두르며 임재복 의장에 대해 강압수사를 시도하였다.

'너 이놈의 새끼, 누가 시키드냐.

경찰국장이 시키드냐 경찰 서장이 시키드냐.

나는 정의양심세력 국민운동본부 전남지역 의장님이시다.

그런데 일개 형사가 폭행을 휘둘러?

응, 이것은 정당방위여!

맞을 짓거리 한놈은 맞어야돼야.

긴 세월 동안 우리 학생들이나 민주인사들한테

얼마나 이런 악행을 저질렀느냐.

내가 임재복이다. 바로 맛 좀 봐라!'

이러면서 떼로 달려드는 형사들을 그 자리에서 모조리 때려눕혀버렸다. 임재복 어린 시절부터 가장이 되어 지게질 농사일로 몸이 차돌보다 단단했고 날쌔기가 비호같은데다 불의를 보면 가빠지는 호흡을 거잡지 못하는 정의의 화신이라 얕보고 덤비던 형사들의 코가 여지없이 납짝 깨졌던 것이다."

 

임재복 의장은 초등학교도 중퇴했지만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독학으로 노동법을 독파하여 노동상담소를 운영, 노동자들이 사회 역사의 주인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80-90년대 구사대의 폭력이 난무했지만 굴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의 투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권익을 지켜 싸웠다. 한번은 회사에서 조직폭력배 건달을 동원하여 임재복 선생에게 폭행을 가했는데 그 조폭 두목과 혈투를 벌려 결국 제압하여 후에 그 건달 두목이 임재복 선생을 형님으로 모시기까지 했다고 한다.

 

임재복 의장은 통일운동가 김양무 선생을 만나 이 땅 모든 악의 근원은 미제국주의라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으며 오직 분단을 극복해야만 민중이 주인되는 참세상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면서도 범민련 통일운동,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광주전남 의장으로서 6.15, 10.4선언 이행 투쟁에도 적극 나섰다.

 

특히 한총련의 연대항쟁 이후 살풍경한 공안탄압 속에서도 통일운동의 깃발을 남총련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들고 나갔으며 청년학생들의 바람막이가 되고 기댈 언덕이 되어 구속도 마다않고 호랑이처럼 앞장에 서서 싸웠다. 많은 청년학생들은 불의에 맞서 목숨걸고 당당히 싸워온 임재복 의장의 삶에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다.

 

그럼에도 임재복 의장은 자신을 조금도 자랑할 줄 몰랐으며 겸손하게 모든 공을 청년학생들에게 넘기고 자신은 학생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서 투쟁했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임재복 선생은 통일을 눈앞에 두고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나 갔지만 그의 투철한 정의감과 민족사랑, 민중사랑의 정신은 투쟁하는 청년들의 뜨거운 가슴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임재복 의장 약력]

 

1937년 음력 10월 23일 부 임경술, 모 이온옆님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 838번지에서 출생.

 

1976년 8월 울산현대건설 근무 중 노동운동 시작. 근로조건 개선 투쟁으로 작업 중단 주도.

 

1977년~1987년 광주 대창시내버스 운전원으로 입사. 어용노조 축출 운동 등 강경노선투쟁으로 87년 1월 해고. 이 기간 동안 삼척교육대 예비 검속 대상으로 7일간 구속 후 석방.

 

1987년 5월 전남해고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 회장

 

1987년 6월 민주쟁취노동자공동위원회 전남지역 의장, 노동문제상담소 소장,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광주전남 공동의장(노동자대표)

 

1987년 8월 광주시내버스 노동자권익운동회 조직, 총동맹파업 주도, 어용조합장들 대거 축출하고 대폭 임금인상과 기본급 부활, 안기부에 납치 감금당함.

 

1987년 12월 13대 대선과 1988년 4월 26일 13대 총선, 전남지역 공정선거 감시 부단장

 

1989년 광주 노동문제연구원 상임의장, 광주전남 민주연합 공동의장,

1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중앙위원, 삼양시내버스노조 총무부장으로 활동 중 투옥.

 

1990년 폭력정권 폭력경찰 탄압 저지 최루탄부상자회 전국연합회 회장.

 

1991년 분신정국 대책위 광주지역 공동대표(2개월 투옥)

 

1995년 11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광주전남연합 감사 임무수행중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통일운동 사건으로 투옥(29명)

 

2000년 1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광주전남연합 상임의장

 

2000년 8월~2012년 남북공동선언광주전남실천연대 상임의장, 한국진보연대 광주전남 공동대표, 통일애국열사김양무정신계승사업회 회장.

 

2007년~ 연방제통일추진회의 광주전남 의장(현)

 

2009년~ 통일세대를 위한 교육기관 6.15학교 공동대표(현)

 

2012년~ 시민주권행동 상임고문(현)
 
<이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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