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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화문의 약속과 금남로의 약속
도청 사수한 분들은 간데없고…
기사입력: 2017/05/17 [13:5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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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이 내리면 바로 다음 날 08시 광화문에서 다시 만난다.’ 이것은 우리들 모두가 동의한 언약이었다. 1980년 5월 18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화 끈을 묶었다. 집에서 광화문까지는 버스로 20분 거리, 나는 버스가 그곳까지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약속대로 2,3십만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 터인데, 그러면 도로가 막힐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껏해야 종로 3,4가쯤까지나 버스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날 나는 운동화와 어울리지 않게 양복을 꺼내 입었다. 혹시 검문을 받게 되면 학생이 아니라는 나의 주장을 그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상과 달리 버스는 종로 시가지를 질주하더니 불과 10여 분만에 나를 광화문 바로 옆 종로1가에 내려 주었다. 나는 내 귀와 눈을 의심했다. 주위는 평소보다 조용했으며 넓은 교차로에는 거의 사람의 모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네거리 모퉁이마다 장갑차량과 무장 군인이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 나는 내가 약속을 잘못 알고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었던 시간과 장소에는 전혀 착오가 없었다.

 

나는 종각 뒷골목으로 걸어가 보았다. 힐끔힐끔 주변을 살피는 교련복 차림의 대학생 몇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나는 미국 대사관 쪽으로 앞서 갔다. 아무래도 거기서 시작하는 것이 나을 성싶었다. 또 다른 대학생 두셋이 차도 가까운 곳에 서서 마주 오는 우리를 무연히 보고 있었다.

 

나는 나지막하게 읊조려 보았다. “도옥재.” 그러자 교련복 몇이서 화답해 왔다. “타아도” 나는 약간 소리를 높여 불러 보았다. “도옥재” ~ “타아도” 순식간에 우리는 열 명 가까운 인원으로 불어났다. “독재타도, 독재타도” 우리는 공포감을 이기기 위해 구호 복창의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는 차도로 나서 이순신 동상을 향해 발맞추어 뛰었다.

 

맞은 편 세종문화회관 골목에서, 그 위쪽의 녹지 나무 사이로, 아래쪽의 신문 가판대에서, 서너 명씩의 학생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어느새 우리는 독재와 타도를 나눠서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이순신 동상을 구호에 맞춰 몇 바퀴 돌았다. 뛰면서 나는 눈어림으로 인원을 헤아렸다. 30명 정도였다.

 

그때였다.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새로 지어진 광화문 쪽에서 족히 수천 명은 됨직한 무장 군인이 우리를 포위하기 위해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각자 도망치자!” 나는 고함을 지르면서 시청 방향으로 튀었다.

 

무장 군인 대여섯 명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나는 군인들의 다리와 다리 사이로 다이빙하듯이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일어나 다시 달렸다. 순식간에 군인들을 따돌린 나는 광막한 시청 앞 광장을 내질러 달렸다. 아무래도 호텔이 안전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청 앞에 있는 프라자 호텔의 로비로 들어갔다. 두 손으로 양복 깃을 추스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커피숍은 광장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2층에 있었다. 의외로 광장은 평온하고 한가해 보였다. 모두가 잡혔을 것이었다. 체포되지 않은 건 나뿐인 것 같았다. 프레쉬 오렌지 쥬스, 살아남은 자의 안도였을까? 나는 다소 가격이 높은 음료수를 주문했다.

 

그 날 집에 돌아온 나는 아주 간단한 메모 하나를 남긴 것으로 기억한다. - 만분의 일 - 그것은 광화문의 약속을 지킨 우리의 비율이었다. ‘풀은 바람보다 빨리 눕는다.’ 그러나 나는 광화문의 풀과는 달리 금남로의 풀은 바람보다 빨리 일어났음을 다음 날 알게 되었다. 이후 내가 광주 현장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적는 것은 구차한 일이라서 생략하련다. 어쨌든 나는 광주 현장에 가지 않았다.

 

아주 드물어지기는 했지만 요즘도 나는 악몽을 꿀 때가 있다. 그것은 시위 현장에서 나만 도망치는 꿈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대단히 자기합리화적인 말이다. 심지어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이상한 말장난도 있다. 이런 말은 의도를 불문하고 그 해 5월 광주에서 죽어간, 특히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했던 분들의 숭고한 선택을 경멸하는 것이다.

 

<김갑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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