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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진실
역사기술의 제1원칙은 ‘과유불급’
기사입력: 2017/03/20 [10:2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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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진실 논란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사는 정확할수록 좋다. 역사 기술에도 과유불급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부당한 폄훼나 부당한 미화는 똑같이 나쁘다는 것이다. 이에 부응하여 3.1운동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진실을 밝힌다.


1919년 이른바 민족대표 33인은 주로 계몽주의 지식인과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내세운 명분은 ‘비폭력 평화주의’였다. 그런데 과연 그들의 말대로 조선 민중은 피를 흘리지 않았는가? 정녕 누구를 위한 비폭력이었으며 무엇을 위한 질서 존중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을 ‘민족대표’라고 상찬하여 부를 수 있는 것인지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민족대표 33인’이 조선총독부의 무단정치가 빚은 공포 분위기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선언서를 작성, 배포한 것은 선구적인 구국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선구적인 활동이 전국 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순수했는지, 이를 테면 그들의 행동에 혹여 매명 욕구나 소영웅주의는 개입되어 있지 않았는지의 문제도 함께 논의되는 것이 온당하다.

 

그들은 운동 벽두부터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약속한 시간과 장소인 ‘오전 10시’와 ‘탑골공원’을 일방적으로 바꿔 버렸다. 사후 그들의 말로는 ‘폭동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제국주의 법정의 변론에서 그들에게 유효하게 작용되었다. 그들은 오전 10시가 아닌 오후 3시에야 탑골공원이 아닌 요릿집 태화관에 꾸역꾸역 모였다.

 

그들은 민중의 동향이 예상보다 거칠어지자 스스로 운동의 주도권을 놓아 버렸다. 그들 중의 다수는 국제정세를 읽는 실력이 부족했다. 그런 나머지 적국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정도에 그쳤고, 미국의 도움을 과신하는 타협적이고 사대의존적인 자세를 보였다.

 

특히 33인의 대표 격으로 장소를 태화관으로 임의 변경하는 것을 주도한 손병희는 이미 러일전쟁 때 ‘일본이 패망하면 동양이 파멸한다’고 하면서 일본에 군비 1만 원을 헌납한 전력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운동의 주체인 민중에 대한 이해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민중은 자기들처럼 무슨 일을 흉내나 내고 그만 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실제로 그들은 태화관에 모여 선언서를 낭독하지도 않은 채, 한용운의 간단한 취지 설명으로 대신하고 곧장 요리를 들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포승에 줄줄이 달려가는 모습을 민중이 본다면 얼마나 감격할 것인지를 헤아리는 두뇌도 없었다. 그들이 자진신고하여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인력거 대신 자동차를 요구하자 일본 헌병의 일부는 혀를 찼고 나머지는 모두 비웃었다고 한다.

 

법정에서 그들은 “사의 천박한 학생과 군중이 모였으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손병희)”, “무식한 자들이 불온한 일을 할 것 같아서(박희도)” 장소를 변경했다고 둘러댔다. 이 같은 점으로 볼 때 그들 33인을 ‘민족대표’라고 존칭하는 것은 또 하나의 역사 왜곡이 된다.

 

그러므로 33인을 가리켜 더 이상 ‘민족대표’라고 호칭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아마 그들 자신도 이런 과분한 칭호를 바라지는 않았을 터이다. 나는 그들에게는 ‘국내 종교계 대표’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기실 3·1운동의 주체는 국내 종교계 대표 33인이 아닌 상해와 간도의 독립항쟁가들과 삼천리 방방곡곡의 초동급부들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비폭력 타협주의의 한계를 깨고 순수한 무장항쟁을 실천했다. 그들은 제국주의의 폭압적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3·1운동’이란 용어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조선 백성은 3월 1일뿐 아닌 3,4월 두 달에 걸쳐 200만 명이 시위에 가담하여 무려 7,500명 이상이 생명을 바쳤다. 7,500명씩이나 학살당한 대참사를 기껏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또 하나의 학살이다.

 

제국주의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것은 정작 이것이었다. 조선 백성은 자발적으로 뭉쳤고, 뭉친 사람들 중에서 또 지도자가 나왔다. 33인은 6개월에서 가장 길어야 3년의 옥고를 치렀지만 학생과 농민들은 15년씩이나 되는 무거운 형량을 받았다. 3·1운동은 ‘기미독립항쟁’ 정도로 개명되어야 마땅하다.

 

<김갑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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