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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사망사건, 드러난 ‘기레기’ 본색
말레이시아 경찰, ‘암살단 특정국 공작원 아니다’ 발표
기사입력: 2017/02/17 [22: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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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한 방송, 신문의 보도는 국정원과 자칭 대북 전문가들이 내놓은 ‘카더라’ 정보를 액면 그대로 받아쓰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실관계와 담을 쌓은 이런 모습은 이게 과연 언론인가 할 만큼 개탄스럽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사건 보도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이나 고민도 없이 작문 수준의 기사를 쏟아놓는 식이다. 그런 추측성 보도와는 방향이 다른 말레이시아 정부 당국의 발표는 외면 또는 깔아뭉개는 식의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한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앞 다퉈 폭로성 기사를 쏟아내면서 민주주의 후퇴와 헌법 파괴를 규탄하던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종편 등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사건 발생 후 ‘기레기 언론’으로 지탄받던 구태가 반복되면서 최소한의 양식조차 안 보이는 참혹한 언론 권력의 모습을 드러냈다. 언론 정상화를 위해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는 것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서 발생한 이 사건 직후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이 관련 내용에 대해 함구하면서 국정원과 TV조선 등이 내놓은 ‘북한이 암살했다’는 정보, 보도가 세계 주요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인용되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 직원들에게도 목격담 등을 발설하지 말라는 함구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한국에서 쏟아진 관련 기사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정보기관과 언론, 자칭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북한이 암살단을 파견해 자행한 끔찍한 범행이라며 독침 등이 사용되었을 가능성과 함께 과거 북한의 소행이라고 알려진 사건들을 들춰내면서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외국 언론은 말레이시아가 아닌 한국의 언론과 국정원을 인용하기 바빴다. 하지만 중국 환구시보는 ‘한국 언론은 대북 보도가 가끔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며 신중한 태도를 주문했다.

 

이번 사건은 그러나 북한이 오랫동안 기획했던 암살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허술한 점들이 있었지만 국정원이나 한국 언론은 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전문 암살단이 하필이면 CCTV가 설치된 국제공항을 범행 장소로 삼았는지, 범행 후 택시를 타고 도주하는 허술한 짓을 했을까 등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서 이를 문제 삼은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자칭 진보 언론이라는 신문조차 15일자에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그러다가 피의자 2 명이 체포되고 국적이 북한이 아니라는 것과 나머지 관련자가 4명도 범행 현장 부근에서 CCTV에 찍힌 것으로 밝혀지는 등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국정원과 한국 언론이 단정적으로 내보낸 정보들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 이때부터 외신들은 한국 언론을 인용하는 작업을 멈췄다. 기레기 언론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꼴이 된 것이다. 해외 언론이 한국 정보기관과 언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격에 상처가 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북한 암살단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에서 국제 청부 살인단의 소행이라는 쪽으로 슬그머니 방향을 트는 식으로 오보에 대해 뻔뻔한 모습을 지속했다.

 

사건 발생 3일째인 16일 말레이시아 정부가 사건의 핵심 사항에 대한 공식 발표를 내놓았다. 부총리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사건 배후라는 것은 추정에 불과하다’라면서 ‘향후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이번 사건으로 두 나라 관계에 아무 영향이 없을 것이다’라고 밝힌 것이다. 한국 쪽에서 단정지은 북한 소행 설에 대해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그런데 국내 언론은 그 부총리의 기자회견에 대한 보도에서 ‘북한이 배후라는 것은 단순한 추정’이라는 부분을 즉각 보도하지 않았다. 현지에 특파원 다수가 취재하고 있고 말레이 부총리가 영어로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보였지만 국내 대부분 언론은 그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연합뉴스가 수시간 뒤 ‘북한이 배후라는 것은 단순한 추정’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기사를 추가로 내보냈다.

 

말레이시아 부총리의 이 발언과 말레이시아 경찰이 발표한 ‘암살단 특정국 공작원 아니다’라는 내용을 종합할 경우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한 한국 측의 입장이 궁색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17일 오후 13시 현재 일부 종편 등은 여전히 북한이 만행을 저지른 것이 확실하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처벌해야 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 당국의 발표와는 거리가 먼 내용의 보도다.

 

이번 사건의 경우 말레이시아 경찰이 초기부터 관련 사실을 거의 발표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은 침묵하고 한국 국정원과 언론이 한껏 목소리를 높인 특징이 있다. 무릇 사건 사고가 그렇듯이 의외성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사실관계를 주목하면서 신중하게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자세다. 국정원이야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언론을 수단삼아 북한에 타격을 가하면 한 건 올린 것으로 자위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정원이 소속 국가의 위신이 망가질 정도로 심리전을 치른다는 것은 심각한 과오다.

 

말레이 부총리와 경찰이 밝힌 수사 내용으로 보아 앞으로 어떤 식의 결론이 날지 애매한 상황이지만 17일 현재 종편 TV, KBS, YTN, 연합뉴스TV 등은 여전히 북한 소행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암살단 배후가 북한일 것이라는 쪽으로 기사를 몰아가고 있다. 이런 모습은 국정원의 나팔수라는 비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언론 보도가 최소한도의 사실관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어린아이도 비웃을 정도의 판단력, 추리력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기사를 양산하면서 대선에서 북풍이 거세질지 모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언론이 정상에서 벗어나면 대북 비판이나 적대감이 증폭되는 일이 벌어져 표심에 영향을 과도하게 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방부는 대북 방송에 김정남 피살 사건도 내보낼 것이라고 전해졌다. 만약 북한 소행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자칫 남북간 긴장 고조나 충돌로 비화되는 새로운 북풍 사건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두렵다. 언론이 제 정신을 차리고 북풍의 불쏘시개가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언론은 제 4부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론이 확실한 환경 감시 역할을 하면서 사회의 소금이 되어야 민주주의 회복이나 평화통일이 가능하다.

 

<고승우 민언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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