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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와 한국 경제
두 가지 미신과 결별할 기회를 얻었다
기사입력: 2016/11/10 [20:2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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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역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는 결코 한 시대를 고분고분 마무리한 적이 없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론을 기치로 100여 년 동안 이어졌던 고전학파의 시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혹독한 경제 대공황을 겪은 뒤에야 마무리됐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경제학을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의 대번영을 이끌었던 ‘복지의 시대’ 또한 1970년대 석유파동에 이은 자원전쟁, 즉 베트남 전쟁과 걸프전 등을 거치며 신자유주의에 바통을 넘겨줬다.

그리고 이제 세계 경제는 약 30여 년을 지속해온 신자유주의의 시대와의 결별을 앞두고 있다. 시장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자유무역이 모든 국가와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속았던 민중들은 신자유주의에 ‘빅 엿’을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줬듯이 자본주의는 결코 한 시대를 고분고분 마무리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는 영국에서 엉뚱하게도 브렉시트로 나타났고, 미국에서는 트럼프 당선으로 현실화됐다. 자유주의가 싫어 뛰쳐나간 민중들은 중세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를 선택한 것이다.

흔히 중상주의 시대로 불리는 중세 보호무역주의는 강력한 왕권과 막강한 군대, 그리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는 호전적 경향을 특징으로 한다. 19세기의 지배자 영국과 20세기의 지배자 미국은 모두 이 중세 봉건시대로의 회기를 선택했다.

앞으로 닥쳐올 혼돈은 어쩔 수 없다. 열강들은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릴 것이고, 무력을 바탕으로 약소국가의 등을 쳐서라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몰락이 세계 경제 질서에 새로운 혼돈을 가져올 가능성을 높인 셈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등장이 반드시 ‘지옥문의 개방’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한국 경제만큼은 더더욱 그렇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몰락을 채 겪기도 전부터 미국과 영국이 겪고 있는 혼란을 9년이나 미리 겪었다. 트럼프가 아무리 ‘또라이’라 한들, 무당정권 4년을 겪은 한국만큼이야 했겠는가?

한국은 이 격변의 시기에 새로운 변화를 마주할 준비를 마쳤다. 이미 중세 무당정권을 경험한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중세 봉건사회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라는 점이 한국 경제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럽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한국은 50년 넘게 경제를 옭아맸던 두 개의 무거운 미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복지국가를 설계할 계기를 맞이한 것이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미신

트럼프의 당선으로 세계 경제가 ‘퍼펙트 스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넘쳐난다. 원래 기후학 용어인 퍼펙트 스톰은 개별적으로는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재해와 동시에 발생할 때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지닌 초대형 악재가 되는 현상을 뜻한다.

경제학에서는 다양한 악재들이 동시에 겹쳐 대공황 같은 초대형 악재가 터지는 상태를 퍼펙트 스톰이라고 부른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보호무역과 군비경쟁 강화로 이어져 세계경제를 큰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바로 퍼펙트 스톰에 대한 걱정의 본질이다.

박정희가 집권한 이후 한국 경제는 50년 가까이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미신에 사로잡혔다. 이 미신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덕에 그 어떤 반론도 용납하지 않았다. 수출 주도 경제 시스템이 내수 위주 경제 시스템보다 낫다는 어떤 논리적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도 한국 국민들은 그저 50년 동안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주술을 암기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으로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미신은 산산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앞으로 무역의 바다라는 곳에서는 누구도 쉽게 감당하기 힘들 ‘퍼펙트 스톰’이 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EU같은 주요 경제 블록들은 모두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일 것이다. 이 와중에 한국만이 “수출만이 살 길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자살행위다. 퍼펙트 스톰 한 방에 경제라는 배는 침몰할 것이다. 이미 트럼프는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45%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또 달러 약세를 주도해 미국 제품의 수출을 늘리겠다고 공언을 했다.

이 상태에서 한국이 무슨 수로 수출주도 경제로 살아남는다는 말인가? 수출에 목매는 순간 퍼펙트 스톰에서 허우적대다 침몰하는 길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이 바로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미신을 깨고 내수 중심의 자립경제 기반을 닦을 적기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 상식적인 이야기가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터전이 마련됐다.

미국이 버리면 한국 경제가 죽는다는 미신

60년 넘게 한국 경제를 지배했던 두 번째 미신은 “미국이 버리면 한국 경제는 죽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수치만 살펴봐도 사실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는 허황된 이야기다. 한국 무역에서 미국으로의 수출 비중은 11%에 불과하다. 반면 대(對) 중국 수출 비중은 25%, 홍콩을 포함하면 대 중화권 수출 비중은 31%에 이른다. 미국 수출의 3배나 된다. 무역만을 생각한다면 트럼프 당선보다 더 걱정해야 할 것은 사드 배치로 중국과 교역이 악화되는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앞으로 한국을 향해 다양한 ‘지랄’들을 해댈 것이다.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싶으면 돈을 더 내라”고 윽박지를 것이고, “사드도 너희들 돈 내고 사라”고 협박할지도 모른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놓고 한국으로부터 삥을 뜯으려 할 것이다. 그게 바로 트럼프의 공약이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 판에 한국의 지도자들이 친미사대주의에 머물러 있다면 한국 경제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친미가 한국 경제를 살린다는 미신은 깨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마련된다는 이야기다.

상상을 해보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무성 한국 대통령의 조합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당 대표 시절 주한미군사령관을 업고 다니던 사대주의자가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한국은 트럼프가 “돈 내놔” 할 때마다 달러를 갖다 바치는 현금자동지급기가 될 것이다. 사드 배치가 자신의 철학이라던 유승민-트럼프 조합도, 오랫동안 친미외교의 한길을 걸었던 반기문-트럼프 조합도 마찬가지다.

친미를 버리고 반미(反美)의 길을 걷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은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 서 있는 중요한 외교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그 외교 대상이 스스로 깡패 보호주의를 택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아있을 뿐이다. 깡패가 팰 때마다 돈을 갖다 바치거나, 아니면 동북아 평화를 기반으로 깡패에게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맞서는 배짱을 갖거나 둘 중 하나다.

혼돈의 시대가 분명하지만, 만약 한국이 이 기회에 두 가지 미신과 단절할 수 있다면 한국 경제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중세로 회귀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를 우리는 미국이나 영국보다 훨씬 먼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 무(無)의 상태에서 새로운 복지 경제 시스템을 설계할 훌륭한 선장을 뽑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균형외교를 할 수 있는 배짱 있는 정부, 수출주도가 아니라 소득주도 내수 경제를 구축할만한 지혜로운 정부, 그를 위해 재벌과 과감히 맞설 용맹스러운 정부가 필요하다.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무당정권을 권좌에서 내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민중의소리=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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