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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통일교육교사의 불꽃 같은 삶
6.15공동선언 전문 암송, 남과 북 학생들 편지교류 지도
기사입력: 2015/10/02 [14:0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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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전교조 참교육 운동을 해온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윤한탁 명예의장은 고 김형근 선생에 대해 가장 열심히 통일교육을 실천한 교사라고 말했다.
 
“김형근 교사만큼 통일교육을 열심히 진행한 교사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직접 학생들에게 6.15남북공동선언의 내용과 의의를 깨우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 처지와 조건에서 그 공동선언을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학생들과 함께 적극 모색하였습니다.”
 
김형근 교사가 지도했던 관촌중학교 학생들은 6.15공동선언 전문 외우기 운동, 북녘의 학생들에게 수천통의 편지를 써서 인터넷 상에 공개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등 남북동질성 회복 남북 동포애 고양 교육에서 큰 성과를 일구어 내었다. 이런 공로를 정부에서도 인정하여 표창까지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분단에 파열구를 내고 통일을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통일교육을 실시하자 조선일보 등 수구세력들이 이를 문제삼기 시작했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빨치산 찬양교사로 매도하면서 이후 끊임없는 재판에 시달려야 했으며 투병 중에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계속 받아야 했고 영면의 길에 들어선 지금도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피고인도 없는 재판을 계속 진행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김형근 교사는 이런 탄압에 굴하지 않고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가보안법과 끝까지 싸울 것이며 기어이 살아 조국의 통일을 꼭 안아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여러 언론 대담에서 똑똑히 밝혀왔다.

전주 ‘평화와 통일을 여는사람들’ 이재호 사무국장은 김형근 통일교육교사의 생을 한 마디로 “불꽃같은 삶”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삶을 남김없이 조국과 통일을 위해 바쳤습니다. 청춘시절에서부터 감옥에 끌려가 모진 고문도 이겨냈으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바쳐 오직 통일을 위해 살다 갔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형근 통일교육교사는 '김형근아카데미아 논술학원'을 아주 잘 운영하여 많은 학원생들을 서울대도 보내는 등 명성도 얻었고 돈도 많이 벌었었기에 개인적인 안락한 삶에만 안주하려 했다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었는데 참교육을 하겠다고 늦깎이 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뜻을 안고 서게 된 교단이었기에 김형근 교사는 아이들과 관계도 특별했다. 개별 가정방문을 하여 학생들의 구체적인 형편도 깊숙이 파악하고 늦게까지 남아서 돌보고 가르쳤으며 방학 때도 학교에 나가서 학생들을 돌보았다. 한 여름에 학생들이 더위에 공부하기 힘들어 하면 대야에다 물 떠서 발도 씻겨주는 등 온갖 사랑을 다 주었다.
 
특히 김형근 통일교육교사는 지식이나 신념을 집어넣어주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이라며 아이들의 자주성을 존중해주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6.15공동선언 전문 암송, 남과 북 학생들 편지교류도 모두 그렇게 학생들 스스로 뜻을 세우고 실천에 나서게 유도했었던 것들이다.
 
김형근 교사를 아끼는 지인들은 그러다보니 보수세력들로부터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악독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런 싸움 과정에서 병이 생기고 깊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더욱 분하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로 근무하고 있는 외아들도 아버지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아버지의 뜻을 이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늘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감옥에 잡혀가신 아빠를 보러 엄마랑 면회를 다녔던 기억이 많습니다. 어쩔 때는 경찰들이 아빠를 만나지도 못하게 해서 엄마가 막 싸워서 경찰서에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워낙 일상적인 일이어서 초등학생이었지만 아빠가 잡혀갔다고 해서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빠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청소년 시기엔 아빠랑 갈등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통일을 위해 일을 하시느라 그런 것이기에 이젠 이해를 합니다. 아빠가 지리산 산골에 거처를 마련하고 투병 중일 때 여자 친구와 함께 찾아갔는데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아빠에게 작은 기쁨이나마 드릴 수 있어서...”
 
김형근 교사는 이렇게 떠났지만 그의 제자들과 아들의 가슴 속에서는 조국통일의 의지가 계속 자라나고 있다. 많은 제자들이 빈소를 찾아와 고 김형근 통일교육교사의 추모 동영상을 만드는 등 추모제 준비를 하는 모습만 봐도 그의 삶이 얼마나 값 높은 삶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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