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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산을 옮기다’ 노무현의 도전과 좌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이상과 현실에서 그가 겪었던 처절한 패배
기사입력: 2015/06/24 [10:3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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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필사’로 알려진 윤태영 전 청와대 비서관이 ‘바보, 산을 옮기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관련 책을 대부분 읽어봤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아군이라 믿었던 이들마저 등을 돌리는 매순간을 버티는 그의 처절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윤태영 전 청와대 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을 가리켜 “그는 낙관주의자였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철학이 있었고, ‘인간과 사회는 공존을 지향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중략) 스스로의 삶에서도 그는 낙관주의자였다. 언제나 불가능에 도전했다. 도전의 이면에는 낙관의 힘이 버티고 있었다”고 서문에서 밝혔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대통령 노무현이 홀로 버틸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의문이 서문을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바보, 산을 옮기다’에서 다른 대통령과는 달랐던 노무현 대통령의 몇 몇 모습을 뽑아 봤습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2003년 10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은 해외순방에서 돌아왔습니다. 10월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예정에 없는 긴급 기자회견을 합니다. 최도술씨가 SK로부터 10억을 받은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원고도 사전에 준비한 메모도 없었습니다.
 
‘책임을 지겠다’,’재신임을 묻겠다’는 말로 압축된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그 자리에 있던 기자는 물론이고 참모진들까지도 당황하게 한 발언이었습니다.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은 왜 측근의 비리를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을까요? 보수언론이 SK로부터 100억원을 받은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은 개인 비리로 만들고, 최도술씨 사건은 ‘노무현의 집사’를 거론하며 편파적인 보도로 물고 늘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윤태영 노무현사료연구센터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을 언론이나 다른 이들은 ‘정치적 승부수’로 해석했지만, ‘도덕적 결벽’에 가까운 노무현 대통령의 성격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부족하거나 결격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측근 비리와 문제점에 대해 국민 앞에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던 대통령은 현재까지 없습니다. 그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정말 ‘대통령직’을 물러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당이 아닌 여당에 양보를 요구한 대통령’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사학법 개정안이 2005년 12월에 통과됐습니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 무효화 장외 투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국회 파행이 장기화하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야 원내대표를 청와대 조찬에 초청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란 논리만으로는, 다수결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참 있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주고받고 하지 않고는 정치가 안 됩니다. 국정운영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여당이 바로 이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니, 오늘은 야당 뜻대로 하고 가십시오’라며 김한길 대표에게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양보 요구에 김한길 대표는 ‘곤혹스러움이 있습니다.’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계속해서 김한길 대표를 설득했습니다. 이날 회동은 결론 없이 끝났습니다.
 
국회가 파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한나라당의 주장이 옳지 않아도 국정이 무너지면 안된다는 의지로 여당의 양보를 요구했던 노무현 대통령, 그의 노력은 여당이나 언론, 양쪽으로부터 무능력한 대통령이라는 비난만 남았습니다.

‘불법은 덮을 방법이 없습니다. 진실을 숨기지 마십시오’
 
2005년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불법 감청 사건이 터졌습니다. 안기부 도청조직 미림팀이 2001년까지 △고위 공무원 84명 △언론인 75명 △경제인 57명 △법조계 27명 △학계 26명 등을 감청한 274개의 테이프가 드러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실은 숨기지 마십시오. 법적으로 면책할 방법 없습니다. 국민과 더불어 결단할 수 없습니다. 차제에 진상을 밝히고 모든 진실을 털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덮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다 밝혀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림팀이 도청했다는 테이프의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무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테이프의 내용에 대해서도 보고를 받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불법적인 일이 드러날 때마다 숨기지 않고 오히려 더 진실을 털어내야 한다고 믿고 행동했던 노무현 대통령, 불법이라도 선거에 득이 된다면 괜찮다는 사람들, 항상 선거는 영악한 사람들이 승리했습니다.

‘대통령보다 지역구도 정치 해결이 더 큰 목표였는데’
 
‘바보, 산을 옮기다’의 곳곳에는 지역감정을 없애고 통합의 정치를 하려던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과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지역구도 정치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이 지역감정의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다만 뭔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지역 갈등이 더 심해진 것은 권력 집중의 구조 때문이다. 절대권력의 구조가 지역감정을 심화시켰다. 수십 년 동안 한 지역의 정권, 그것도 만능의 정권이 부정부패를 하면서도 불법도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지금도 보통 때는 지역감정을 개탄하다가도 선거 때만 지역감정을 부추깁니다. 손쉬운 선거전략인 동시에 가장 편한 권력 유지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지역감정의 해결과 통합만은 이루고 싶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꿈은 끝내 완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바보, 산을 옮기다’는 책 제목은 ‘우공이산’은 고사성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산이 가로막혀 왕래가 불편하자 산을 옮기는 무모한 일을 벌인 우공,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어리석다고 말하자 우공은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고, 그들이 자자손손 대를 이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산은 불어나지 않을 것이니, 대를 이어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산이 깎여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라고 말합니다.
 
‘바보, 산을 옮기다’에는 처절한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담이 나옵니다. 그는 ‘지역감정 해소’,’정치개혁’ ,’국민통합’ 등 위해 노력했지만, 늘 높은 산에 가로막혀 아파하고 고통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원칙을 지키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은 바보였는지 모릅니다.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이 결국 산을 옮긴 우공의 이야기처럼 그도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었다고 항상 믿어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도전과 좌절의 기록을 읽노라면, 이상과 현실에서 그가 겪었던 처절한 패배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남겨준 소중한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당장의 승부보다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임병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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