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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모래의 슬픈 이야기
댐과 보를 세워 나를 막지 마세요, 낙동강을 되살릴 수 없잖아요
기사입력: 2013/09/28 [11:0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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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은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1000여개 지천 중 으뜸가는 1급수 하천이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고운 모래톱의 자정(自淨)작용 덕이다. 낙동강 상류 모래의 절반을 공급하는 내성천의 모래는 4대강 사업으로 오염된 낙동강이 자연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내성천에 머지않아 영주댐이 들어서고 하류 하천정비사업으로 보(洑·하천에 둑을 쌓아 만든 저수시설)가 여러 개 생기면 모랫길은 끊어질 수밖에 없다. 내성천과 낙동강을 오랜 세월 묵묵히 지켜온 것은 모래다. 모래의 시선에서 내성천 이야기를 전한다.

▲ 내성천의 자정 역할 하는 나는
4대강 사업에 낙동강이 파헤쳐져도
유기물 잘게 부숴 강물을 맑게 했어요

 
그런데 내년이면 영주댐마저 들어서
나는 물속에 잠겨 꼼짝 못할 거예요
더는 강을 고쳐주지 못할까 겁나요

 
지금이라도 보와 댐 없앤다면
나를 마음껏 흐르게 놔둔다면
강을 살리는 데 날 기꺼이 바칠 텐데

 
20억년 전 지금 소백산 자리에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나는 1000년 묵은 주목 뿌리에 붙었다가 산여우의 입안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고, 비에 쓸리고 바람에 얹혀 굽이진 산길, 들길을 지났습니다. 강바닥에 자리 잡은 뒤로 숱한 생명이 내 안에서 쉬어 갔습니다. 나는 ‘내성천 모래’입니다. 내성천 모래의 숙명대로 나 또한 언젠가는 낙동강으로, 푸른 바다로 물이 밀어주는 대로 따르게 될 것이라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2010년 집을 잃고 내성천으로 올라온 수달이 “낙동강에 변고가 생겼다”는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사람들이 강바닥을 깊이 파내고 강줄기를 막는 보를 세우기 시작하자 낙동강물이 멈춰 섰다”고 했습니다. 물고기들은 진흙에 숨이 막혀 죽었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기회였습니다. 나는 4대강 주 사업지와는 제법 떨어진 낙동강 상류 지천에 살고 있는 모래입니다. 우리의 새 살을 내성천 물길 따라 낙동강 바닥에 실어다 채워줄 생각입니다. 나와 모래 친구들이 병들고 아픈 낙동강을 고쳐줄 수 있다는 희망에 자랑스러웠습니다.
 
낙동강이 파헤쳐지는 동안에도 우리는 내성천 106㎞ 물길을 따라, 상류의 넓은 물길 아래에 자리 잡았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깊게 파인 ‘삼강(내성천과 금천, 안동천이 함께 모여 낙동강 줄기로 흘러드는 곳)’ 길목부터 낙동강 보까지, 앞서 간 모래 친구들이 쌓였습니다. 물과 엉켜 구르면서 진흙과 유기물을 잘게 부숴, 강물을 맑게 했습니다. 먼저 떠난 모래 친구들이 쌓이고 쌓여, 물 위로 배(모래톱)를 드러내 희게 빛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낙동강의 검푸러진 물을 정화해왔습니다.
 
그러던 2012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내성천 강가에 섰던 왕버들나무 군락과 산자락 나무들이 베여 나갔습니다. 삵과 고라니가 떠난 산에는 사람들이 쇳덩이와 콘크리트를 올려 길을 닦았습니다. 강을 거슬러 온 은어와 물떼새가 “내성천 허리에 놓인 영주댐이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내년에 영주댐이 완성되면 내성천 앞산 꼭대기만큼 물이 가득 찰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나를 밟고 건너던 수달과 노루는 더 이상 강을 건널 수 없게 됩니다. 강 옆에서 수백년간 농사를 지어 온 사람들의 마을도 물에 잠깁니다. 서너 해 뒤 나는 댐이 가둔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꼼짝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픈 낙동강을 더 이상 고쳐줄 수 없을까 무서웠습니다.
 
영주댐을 짓는 건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영주댐이 없어도 우리는 언제나 몸 틈새마다 물을 저장해 비가 모자란 시기에도 내성천 주변에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목마르지 않게 했습니다. 겉보기에 내성천은 사람 무릎까지 차는 얕은 강이지만, 강바닥을 받친 우리 안에는 지하 6m까지 구석구석 물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근래 사람들이 우리 살을 마구잡이로 떼어 가던 게 댐 때문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사람 삽에 친구들이 들려가고, 파인 강바닥에서 내성천 물줄기는 자주 멈췄습니다. 친구들이 보듬고 있던 검은 흙이 수면으로 올라오고, 고인 물과 뒤섞여 물고기들은 갈 곳이 줄었습니다. 흰수마자(잉어과 민물고기)처럼 내성천 흰 모래 아니면 살기 힘든 녀석은 내가 지켜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해서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웅덩이를 메워야 하는 우리의 살이 모자랍니다. 내성천 허리를 끊고 선 영주댐이 제 모습을 갖출수록, 보가 높아질수록 나와 모래 친구들을 낙동강까지 실어나를 물길도 좁아집니다.
 
모였다 흩어지는 건 원래 우리 모래들의 순리인데 영주댐이 생겨난 뒤, 나는 헤어진다는 말뜻을 처음 알아챘습니다. 영주댐 위편에 사는 나와 친구들이 아래로 흘러가는 시간은 길어졌는데, 댐 너머 모래들은 빠르게 낙동강으로 떠나갑니다. 댐 너머 친구들이 쓸려 내려간 자리를 우리가 채우지 못해서 내성천 중류는 굵고 둔한 자갈밭이 되어가고 있답니다. 댐에서 7㎞ 떨어진 무섬은 물론 낙동강 본류에 가까운 회룡포에서도 모래 친구들의 키는 자꾸 작아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변 마을에서도 지하수위가 낮아져 사람들이 마실 물도, 농사를 지을 물도 부족해졌습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애초에 우리 길을 막고 마을 물을 말린 게 댐과 보인데도, 사람들은 우리가 귀해졌으니 더 갖겠다면서 물길을 또 막아 달라고 한답니다. 영주댐 아래 회룡포와 삼강에 또 사람들이 보를 세우겠다고 나섰답니다. 우리는 정말 움직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은 그저 물이 아닙니다. 강바닥의 우리들과 흙, 강가 산과 나무, 여기 사는 생물들 모두가 어우러져야 강입니다. 댐이 높아지고 우리의 길이 끊기면 사람들이 물을 아무리 흘려보내도 강은 끊어집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쉼없이 구르고 깨지며, 약해진 물길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강 밖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에게 곧잘 시한부 선고를 내립니다. 댐 때문에 내성천에서 사라진 친구들, 앞으로 죽어갈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슬퍼하기보다는 우리의 몸과 내성천을 가까이서 잘 지켜봐 주면 좋겠습니다. 친구가 뜯겨 갔던 자리는 상처난 대로 오니를 흘리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검푸른 물속으로 내가 뛰어들었고 먼 고향에서도 끊임없이 새 친구들이 내려왔습니다. 물속에서 진흙과 엉겨 얼마나 굴렀을까, 컴컴했던 주위에 점점 흰 모래 친구들이 늘었습니다. 햇빛에 다시 몸을 말릴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모여 쌓이고 있습니다. 강이 흉하다며 피신했던 수달 가족도 무사히 돌아왔고 새로 돋은 몸에서는 모래무지 새끼가 다시 자랍니다.
 
넉넉한 우리의 ‘어머니’ 소백산은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앞으로도 제 살을 쪼개 친구들을 보내줄 것입니다. 모래와 나무 친구들이 다치는 걸 처음 봐 조급했던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파였던 우리 살도 다시 돋는 걸 보니 댐만 없다면 낙동강도 내가 채워줄 수 있겠구나 싶어 더 자신이 붙습니다. 낙동강으로 향하는 어느 물길보다도, 내성천 모래인 우리가 특별하다는 것도 이제 알았습니다.

강가에 새로 온 손님도 계속 맞아줄 겁니다. 1년에 한두 마리만 온다는 먹황새(천연기념물)가 2011년 내성천에 와서 내 몸 위에 처음 내려앉았을 때 바스라지게 설렜습니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떠나면서 원앙 무리는 10배가 늘었고 잡초라고 불렸던 풀들이 빈 논에서 자유롭게 자라면서 새와 나비의 보금자리가 넓어졌습니다. 인적은 드물어졌지만 꼬리명주나비와 큰주홍부전나비가 달맞이꽃에 내려앉고 반딧불이 내성천의 밤을 빛냅니다. 물총새가 종종거리며 내 몸을 스쳐 갑니다.
 
60년 전 내성천변 동호마을에 시집와 내 살결에 감탄했던 소녀는 이제 할머니가 돼, 이웃들이 떠난 마을을 지키며 여전히 “댐 안 짓게 할 수 있는가” 묻고 있습니다. 나는 내성천을 두 동강 내는 영주댐이 완성되지 않기를, 낙동강과 가까워가는 내성천 하류에 다른 보도 더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성천에 벽을 세우기 위해 수백년 된 왕버들나무를 뽑아내고 수천년 이어온 강을 말리고 산을 부수는 것에 비하면, 만든 지 얼마 안된 벽을 없애는 건 간단해 보입니다. 복잡한 사람들의 계산도 나와 같으면 좋겠습니다. 댐을 없애고 우리가 마음껏 낙동강까지 흘러가도록 놔둔다면 사람들의 실수로 병든 낙동강을 되살리는 데 나를 기껍게 바치고 싶습니다.
 
<경향신문=김여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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