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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몰러 나간다
[김승자 칼럼] 부패공화국의 막장
기사입력: 2013/07/12 [08:5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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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의 기량과 어우러진 구성진 가락이 슬픈 장면에도 웃음을 자아낸다. 해학이 빛을 발한다. 게다가 휘모리장단은 관객들을 한 장면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함께 울고 웃는 마당극의 재미가 정서적인 합일에도 있겠지만 가슴앓이의 세월이 질펀하다. 공감의 마당에서 감정의 이입이 거침없다. 봉건시대 을들에겐 위안이자 힐링용 토크 콘서트인 셈이다.
 
그러나 힐링은 순간에 불과하고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진정한 위안은 변화인데. 그래서일까, 개혁과 진보는 긴 세월의 성적표가 야박하기만 하다.
 
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가 새삼스럽다.

'왼쪽의 힘'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종북 좌빨이 아니다”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몸부림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현실에서 생존투쟁이기도 하지만 식민지시대의 친일 부역자들이 미국 군정청에 의해 가뿐하게 주류 주구로 변환된 '기획 분단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기막힌 현실이 분단 이후 정치사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진보세력을 주구세력과 동급으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북한군이 광주 민중항쟁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며 황당한 역공세를 펼치는 종편과 일베충에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재범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다음 차례는 “네가 종북 좌빨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라며 좌빨딱지 놀이를 이어갈테니 말이다.
 
탐욕에 대한 징벌은 오래 전부터 있어 온 얘기다. 권선징악 말이다. 그런데도 징벌 따위는 상관없다. 탐욕의 두께 탓일까. 솜방망이 징벌 탓일까.
 
"불처벌(Impunity), 면책특권(Imunty)을 종식하여 모든 인류를 위한 정의를 실현한다.“ 2002년 7월1일 발효한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설립정신이다.

종식은커녕 불처벌 면책특권을 불법으로 활용하고 오용과 남용을 일삼아 온 현대사에 대한 점검이 요청된다.
 
2007년 1월23일(화)은 박정희가 '사법살인'한 인혁당 사건에 무죄가 선고된 날이다. 바꿔 말하면 박정희가 저지른 사법살인에 유죄선고가 내려진 날이다. 그것도 32년 만에.

박정희의 사법살인이 그것뿐일까. 최백근 사회당 조직부장,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등 사법살인의 희생자들은 넘쳐난다.

군사 쿠데타와 좌익 이력에 대해 면죄부가 필요했던 박정희, 집권을 위해 미국의 지지가 필수적이었던 박정희의 과거사 세탁을 위한 인증샷의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들, 어쩔 것인가.

슬프다. 슬프고 슬프다.
 
혁명이 안단테일 수밖에 없는 건 식민지와 기획 분단 시대의 숙명이지만 막막한 시대 앞에서 틈새를 뚫고 길을 찾는 것 또한 우리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놀부 따라 제비 몰러 다니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더욱 막막하다. 흥부는 왜 놀부를 껴안았을까? 흥부의 똘레랑스는 온당한가.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반성하지도 않는 놀부의 얄팍한 사과는 유통기간도 없나보다.
 
여기저기서 박근혜의 사과를 요청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사과를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사과를 요청한 측에서는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용서와 화해도 헌정할 준비를 마쳤을 터.

놀부에 대한 관용은 전두환의 빤뻔한 행각과 무관한 걸까.
 
개별적 도둑도 아니고 “떼도적”이라고 해야 하나.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는 각종 도둑의 명단이 즐비하다. 뉴스타파의 발표에는 도둑과 장물애비가 골고루 포진해 있다.

겉포장과 스팩 앞에 민얼굴은 가려진다. 그들은 여전히 회장이고 총장이고 하버드대 출신의 저명인사고 예술인이다.

반란군 수괴이며 광주 민중항쟁학살 총책으로 사법처리된 전두환도 여전히 대통령 행세를 하고 있는 것처럼. 육사생도의 사열을 받고 29만원밖에 없다며 시민을 조롱한 그를 국민의 세금으로 지켜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세상은 역주행을 하고 있는데.

한 나라의 행태가 이렇다면 나라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정부 문을 닫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사 청문회에서 1%의 속살이 드러나고 있지만 오불관언이다. 말 그대로 내식대로다. 패자의 쓴소리는 불만에 차서 구시렁거리는 소리일 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 것이라는 정도의 인식이 지배적이다.

국민 행복과 100% 국민 통합, 창조경제에 대한 국정철학 공유를 내세우며 충성 맹세하던 그 입으로 골프 쳐서 경제 살리기에 나서게 해 달라고 읍소를 한다.
 
유치하다. 그들은 그 시간도 참지 못했다. 끔직한 골프 사랑 때문에 윤창중에 의한 미증유의 외교 참사가 강 건너 불로 보이나 보다.

윤창중의 임명에 모처럼 여야가 함께 반대했건만 임명을 강행하고도 유체이탈화법을 쓰는 박 대통령은 단숨에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1960년대로 시계바늘을 돌려놓았다.
 
만사람의 반대를 물리치고 대통령의 불통 고집으로 발탁한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도 그 속을 알 길이 없고 대통령 직속인 국정원의 국기문란 범죄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무엇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가. 무책임이 끔찍하다.

이미 고수의 반열에 오른 박근혜의 “면피 스타일”이 놀랍다. 책임이나 반성이 없는 사회 그런 사회를 도출한 걸출(?)한 지도자로 지목되는 박 부녀(朴父女) 의 디엔에이(DNA)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오래 전부터 새마을 노래 햡창이나 하려 들었던게 아닐까. 스스로 생각해도 모양새나 내용이 애매모호한 '창조경제'를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사전트(Thomas Sargent) 서울대 교수는 헛소리(bullshit)라고 했다. 박 정권의 미래가 보인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역사교과서를 고치겠다고 나선 사람들과 역사 변조와 왜곡의 철학(?)을 공유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면서 최소한의 기대마저 접어야 했다. 최소한의 기대란 '7.4 공동성명' 비슷한 것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절박한 기대였다.
 
민중을 패잔병 정도로 인식하는 무지한 식견이 대접을 받고 있고 1%는 승전고를 울리며 이 좋은 세월이 세세 년년 이어질 것을 믿는다. 그 믿음은 10살 미만의 아이들에게도 거액을 상속하는 불법 재주를 부리게 하고 그들은 가뿐하게  버진 아일랜드에 유령회사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다.
 
출발 지점이 다른 불평등의 세상을 꿈꾸면서 자신들의 갑질에 품격을 갖다 붙인다. 실은 도둑질에도 도(道)가 있다던데. 성 지 용 의 인(聖, 智, 勇, 義, 仁)- 도둑의 5도(五道) 말이다.

요즈음 언론에 오르내리는 그들에게는 도(道)는 보이지 않고 탐욕만 번득인다. 자본을 상전으로 모시고 자신들의 갑질에 감격시대에 몰입하고 있다. 자본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 사법 입법 행정을 포함한  정치도 언론도 자본 앞에 무릎 꿇릴 수 있는 그 재미가 쏠쏠했을 게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비틀어진 걸까.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일베 현상이란 명칭으로 불리는 또 다른 그들의 잔인성에 나는 절망했었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3포세대의 일탈로 보거나 입시에 지친 학생들의 배설구나 놀이터로 볼 뿐 그 사안에 대한 합리적 의문은 어디에고 없다. 그런데 놀이가 왜 그리도 잔인할까. 알극(Unipolar world)에만 갇혀 있는 걸까?
 
그해 광주에 모여든 세계 각국의 기자들은 광주의 5월을 급보로 타전했고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잔혹한 학살 현장은 고스란히 방영되었다. 신통하게도 모든 외신들이 600여명의 북한군을 화면에서 놓친 채로.

어느 날  현장이 사라졌는데 잔혹의 극을 달한 현장이 아이들의 교육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가 그 이유였다.

그런데 2013년 광주의 5월 학살 현장이 돌아왔다. 언론괴물 종편과 몰아주기 용역으로 의심되는 일베에 의해서.
   
그 사이트에 광고로 협찬했다면 거기엔 일베의 배후세력과 광고주의 배후의 연결 고리가 어디인가를 의심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댓글 알바들에게도 일당을 지급한다던데 인터넷에 집을 짓고 문패 달고 사는 그들에게 광고로 주거비를 챙겨주는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심은 합당하다고 본다. 화급하게 광고를 내린 것은 꼬리 자르기의 전형이 아닐까
 
혁명적 상황임에도 세상은 고요하다. “원세훈의 국정원 게이트”로 불리지만  우리 정명(正名)을 쓰자. 원세훈은 비록 불구속이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그렇다면 “이명박 박근혜 불법선거 게이트”가 바른 이름이 아니겠는가. 국가의 기관을 사유화했다는 것은 국기문란 범죄에 해당된다. 민주국가이기를 포기한 그들에게 벌써 관용과 화해의 소리를 헌정하고자 하는 자들도 있다. 친일 부역자들이 주류주구로 변환된 것으로도 모자라는가.
 
미국에서 닉슨이 사임하던 때가 1974년이니까 40년의 시차가 있고 사안의 중대성은 워터게이트 사태를 뛰어넘는다.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대한 도청보다는 은폐와 거짓말이 닉슨 사임의 이유였다.

지금은 묵언 수행중이지만 대선을 사흘 앞둔 2012년 12월16일 당시 박근혜 후보는 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이며 불법 감금 또한 인권 침해라며 민주통합당에 대해 격렬한 공세의 칼날을 세웠다. 성추행범보다 못한 파렴치범으로 몰아붙였다.
 
그런데도 도덕 따라 분노도 함께 실종됐는지 친박 양상군자가 날뛴다. 왜곡과 역정보를 흘리며 도둑이 매를 든다는 얘기다.
 
아프다. 아프고 아프다. 이 한심한 짓거리가 어디쯤에서 멎을까.

메닝 일병과 스노든이 미국의 출구를 열어가고 있듯이 우리에겐  권은희와 표창원이 있다. 그래서 희망이란 불치병은 그 자체가 희망이다.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얼빠진 세상의 고요함을 깨트리고 있다. 대학 교수단, 농민, 고등학교 학생 , 역사학자들, 종단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다시 희망을 본다.
 
그럼에도 부정부패와 연계된 숱한 사건들이 뒤엉켜 난장판을 이루고 있는 지금 휘모리장단이 두렵다. 조금 전의 범죄를 뒤따라 오는 또 다른 범죄로 덮을 것 같아서다. 이미 덮고 있지 않은가.

이명박이 사라지고 윤창중도 김학의도 철도 민영화, 인천 공항 민영화도 슬슬 사라지고 있다. 언론에서 말이다. 하기는 '1만명이 넘는 촛불'도 숨기는 특이한 재간을 가진 그들이 아닌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현실에 안주하며 그것을 정의로 환치시킨 무리들이 떼지어 활보하는 세상 이제 끝장내야 한다.
 
민주주의 평화 통일 역에 도착한다던 기차표는 손에 꼭 쥐고 있는데 우리들은 이제 겨우 “먹고 사니즘” 역에서 박근혜의 지도하에 새마을 노래를 합창하게 되어 있다. 부끄럽다.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듯 길도 찾는 자의 것이다. 아직 멀었는가. 길은 바로 우리 앞에 있는데.
 
<김승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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