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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률 <두만강 따라 천릿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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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률 <두만강 따라 천릿길>
오랑캐령 올라서니 삼합벌이 안겨 와
[장경률의 두만강 따라 천릿길(11)] 친선의 도시 조선 회령과 마주하고
기사입력: 2012/12/13 [15:1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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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국가급 위생모범소도시 삼합진은 천부지산을 지척에 두고 있어 일명 '송이의 고향'이라고도 불리운다.     © 김승산 기자

두만강이 흘러흘러 룡정시 경내의 백금을 지나면 곧 바로 삼합이다. 두만강이 여기서부터는 먼길 가는 나그네가 느끗한 심태로 주변의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즐기면서 유유히 노닐며 가듯이 천년의 전설이 깃들어 유서깊은 한왕산성을 지나고 험준한 협곡을 벗어나 오랑캐령을 저 멀리 바라보면서 동북방향으로 늬연하게 흘러간다.
 
우리 두만강천리탐방팀이 삼합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진당위 서기 김호, 진장 손송암이 직접 차를 몰고 우리들을 안내하였다. 그제날 오봉산을 톺으며 굽이굽이 아흔아홉 굽이를 감돌아오르던 오랑캐령, 삼합통상구, 사과의 고향 대소, 송이버섯의 고향 명동, 조선의 회령이 지척에 보이는 망향각, 청조 초대황제 누르하치의 조상들이 쌓았다는 한왕산성 등지를 돌아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감개무량하였다.

허후리구계사처 삼합
 
삼합은 원래 조선의 회령으로부터 화룡욕을 지나 룡정으로 드나드는 길목으로서 두만강나루터가 여기 있었다. 1883년에 “길림조선상민지방장정”이 체결된 후 청나라정부는 화룡욕에 통상구를 설치하고 조선의 회령, 종성 등지와 지방무역을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조선북부의 주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이곳을 통하여 연변지역으로 대거 이주하였다.
 
지난 세기 20년대 초 이 고장은 여전히 산간벽지였다. 화룡욕이나 룡정과는 거리가 먼데다가 중간에 험준한 오랑캐령, 오봉산이 거대한 룡처럼 가로누워있어 교통이 더없이 불편하였다.

이 울며 넘던 오랑캐령, 저명한 조선족소설가 림원춘 작가는 그의 장편소설 <<오랑캐령>>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오르며 20리 내리며 20리, 40리 길을 동강내며 한숨과 한탄으로 부풀어 오른 오랑캐령, 헐벗고 굶주린 겨레들의 굽 빠진 초신짝과 동강난 나막신으로 높아만 지는 오랑캐령, 오랑캐같은 리별의 고개, 원한의 고개, 한숨의 고개였다.
<<윙_윙_>>
하늬바람에 수림이 울고 나무들이 태질하면서 눈기둥을 하늘공중에 말아 올린다. 그러면 깎아지른 벼랑들이 갈범같은 소리를 지르며 머리우에 썼던 눈더미를 털어 버린다.
<<쾅, 쏴아__>>
아아한 낭떠러지에서 쏟아지는 눈사태는 천길폭포마냥 하얀 꼬리를 끌면서 눈뿌리 아찔한 골자기에 머리를 박는다.
바위도 얼어 튀고 솔뿌리도 얼어터진다는 북간도의 엄한이다. 이런 날씨에는 산짐승도 자취를 감추건만 굽이굽이 아흔아홉굽이를 자으며 오랑캐령을 톱아 오른다. 소리도 귀뺨을 친다는 오랑캐령 수림속에 흰띠를 늘인듯한 오솔길로 괴나리보짐에 넝마로 감발을 하고 지팽이에 몸을 실으면서 터벅터벅 힘겨웁게 톱고 있다.
<<잘 있거라 고향땅아, 다시 만나자 고향친구들아!>>
령중턱에 오르자 숨을 돌리며 지팽이에 몸을 싣고 돌아 선 순간, 두만강건너 여울목이 어렴풋이 보이고 강가에서 쑥 내민 코숭이바위가 눈에 뜨인다. 소시적에 산비둘기알을 둘추고 비둘기새끼를 잡느라고 하루에도 몇번이고 오르내리던 손발에 익은 바위다. 야리와 이면수를 잡느라고 저녁이면 줄낚시를 놓고 새벽이면 펄펄 뛰는 야리를 다래끼에 넣던 발땀에 전 모래톱이다.
정든 고향땅을 등지고 낯설고 물선 이역땅 등허리를 오르자니 맥이 풀리고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걷자니 한숨이요 오르자니 시름뿐이다.
 

오랑캐령의 맞은켠 회령도 두만강반의 유구한 력사가 숨쉬는 변경도시이다. 하지만 그젯날에는 오랜 세월동안 거칠고 가난하고 황량한 부락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말부터 중국 청나라의 봉금정책이 풀리면서 조선에서 수많은 기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와 삼합지역에 자리잡으면서 이 지역과 조선과의 무역이 활발해졌다. 1924년에는 천도철도가 개통되였다. 그러자 여기는 점차 룡정과 조선의 상품무역중심지로 서서히 부상하였다. 그러면서 상인과 이주민들이 점차 많아지고 두만강나루터도 설치되였다.
 
1930년 10월 10일, 민국정부는 원래 오랑캐령에 설치하였다가 후에 삼합의 북흥으로 옮겼던 계사처를 지금의 해관터에 다시 옮겨왔다. 당시 계사처를 허후리구계사처라고 불렀다. 당시 해관검사소가 중간지대에 있었으나 국경선과 거리가 멀어서 불법상인과 밀수군들이 산길로 넘나들었던 것이다.
 
삼합, 이름 그대로 3개의 마을을 합친 것이란 말이다. 당시 여기에는 주로 3개 부락이 있었는데 무덕툰(북흥), 사백사(대소), 사대사(계사처)  이 3개 마을을 하나로 무어 전문관리하는 경찰주재소를 설치하였다. 1936년, 일제는 룡정과 회령간의 륙로무역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에서 지금의 대교를 부설하고 해관도 대교옆에 옮겨왔던 것이다.
 
친선의 다리, 공생의 통상구
 
삼합의 맞은켠은 곧바로 조선의 유명한 변경도시 회령이다. 오늘날 회령은 그 면적이 1753평방킬로메터로서 총인구는 13만명, 그중 도시구역 인구는 3만명 남짓하다. 회령, 전설도 많고 풍요로운 고장으로서 중국 조선족들에게는 더구나 유구한 사연을 말해주는 땅이다.
 
▲ 두만강 건너 조선의 이름난 변강도시 회령, 그 도시전경과 드넓은 회령벌이 한 눈에 안겨 와 아주 인상적이다.     ©김승산 기자
회령은 조선리조시기 북방 6진의 하나, 알목하 또는 도음회라고도 불렀다. 1434년, 조선명장 김종서가 녀진을 물리치고 6진을 설치할 때 성보를 쌓고 녕북진절제사가 관할하였다. 지리상에 먼거리에 위치한데서 알목하에 진을 따라 설치한 것이다. 그후 그 주변의 풍산, 원산, 세곡, 유동 등지를 경계로 삼고 회령진으로 칭하여 첨절제사를 두었다. 얼마후 도호부로 승격하고 판관, 토관을 두었으며 1895년에 회령군으로 되였다.
 
회령은 재래로 연변지역과 통상무역을 하는 중요한 거점이였다. 1638년, 청조때 회령은 무역을 전개하면서 회령개시라고 불렀다. 1645년, 경원개시가 격년으로 열리면서 회령에서만 열리던 개시를 단개시라 하고 두곳에서 열리던 개시를 쌍개시라 칭하였다. 북관개시 혹은 북도개시라 한 이 쌍개시는 청나라와 조선 량국의 관방무역이였는바 오늘날 중국측과 조선측에서 공동추진 중에 있는 상호무역, 호시무역과 같다고 한다.
 
회령은 이미 작고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자인 김일성 주석의 원 부인, 지난해 세상을 뜬 조선로동당 총서기 국방위원회 위원장 김정일의 모친, 국모인 김정숙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조선의 저명한 항일녀영웅 김정숙은 1949년에 사망, 1972년 조선에서는 김정숙을 위하여 국장을 치르고 그의 혁명업적을 기리여 1969년 9월 22일 회령에 <<김정숙동지의 동상>>을 세우고 <<김정숙혁명사적관>>을 꾸렸다. 사적관 주변은 백살구나무림으로 특히 인상적이다.

백살구는 회령의 특산물, 시적으로 1200헥타르에 달하는 백살구과원이 있다. 해마다 봄빛이 무르녹는 계절이면 백살구꽃이 만발하여 온 시가지는 백살구향연에 폭 잠긴다. 들에도 산에도 거리에도 강역에도 온통 백살구꽃이라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방불케 한다. 그리하여 백살구나무는 이 지역의 상서로운 나무, 대표적인 수목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백살구로는 백살구통조림, 백살구사탕, 백살구술 등 백살구계렬제품을 생산하여 조선지역에서는 물론이고 동북아지역에서 그 명망이 높다. 백살구나무로는 온갖 귀중한 골동품을 만들고 백살구나무뿌리는 장식품을 만들고 백살구씨 또한 진귀한 약재이다. 그래서 백살구는 온몸이 보배덩이라 정말 <<효자수>>라 함은 일점도 손색이 없다하겠다.
 
▲삼합의 앞산에 위치한 망강각에 올라 서면 조선의 변강도시 회령이 전경이 한눈에 안겨 온다.      © 김승산 기자
회령시가지의 두만강변에는 혁명기념지가 하나 있다. 바로 김정숙이 그젯날 나루배로 회-삼합구 간을 오가면서 왜놈과 싸운 혁명사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설한 것이다. 김정숙은 어릴 때부터 여기서 왜놈들과 피어린 투쟁을 벌리면서 항일구국의 뜻을 펼쳐갔던 것이다. 오늘날 이 사적지는 <<김정숙혁명사적관>>과 더불어 후대양성의 혁명교양기지, 세인이 즐겨찾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오늘날 삼합통상구는 중조 두 나라 인민들간에 특히 룡정과 회령 사이에 무역을 펼치는 경제진흥의 다리, 인간애를 증진하는 친선의 다리로 되고 있다. 룡정시상무국 통상판공실에 따르면 2012년 6월말까지 이 통상구를 통과한 출입경인원은 1만여명을 초과하여 왕년보다 57% 증가하고 출입경차량은 연대수로 5000여대에 달하여 왕년 동기보다 11% 증가하고 수출입화물량은 5만여톤에 달하여 왕년보다 300% 증가하였다.
 
삼합지역은 천부지산을 뒤로 하고 오봉산이 병풍처럼 북방을 막아선 풍경이 수려하고 산천경개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연변지역에서 항상 한 절기가 앞서는 고장이라 무상기도 길다. 천연적으로 연변의 강남으로 불리우는 고장이여서 력사적으로 전설도 많다. 한많은 오랑캐령, 산새도 쉬여간다는 을미대, 물바가지처럼 생겼다고 함박동, 1년 사계절 맑은 샘이 나온다고 천수포, 석탄이 나온다고 석탄리 등 력사유적지, 혁명전적지가 많아 향토애교양기지, 애국주의교양기지로도 명성이 높다.
 
세인이 알아주는 국가급 위생소도시
 
쾌적한 초여름에 찾은 삼합진은 신록이 푸르렀다. 두만강반의 한적한 분위기에 어울리며 폐부 속 깊숙이 들이 마시는 시원한 공기는 관광객들의 기분이 한껏 들뜨고 한다. 그에 따라 정서 또한 그지없이 상쾌하여 대자연이 하사한다.
 
길가에 가쯘하게 다듬어진 연두색빛이 감도는 키 작은 애솔, 군데군데 소담하게 핀 들꽃송이들, 깨끗이 청소된 마을길,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농가집뜨락… 이 자그마한 마을 그 어디에 눈길을 주어도 기분에 거슬림은 없이 어디메나 한없이 다정스럽기만하다.
 
몇해 사이 이 작지만 아담한 고장은 선후로 “국가급위생진”, “성급생태향진” 등 영예를 받아안았다. 이제 삼합진은 “국가급생태향진”을 목표로 일련의 사업을 보다 힘있게 추진하고있다.
 
삼합진은 생활오수처리, 쓰레기처리, 도로건설, 록화건설, 미화건설 등 면에도 공을 들여 마을주민들에게 쾌적한 생활환경을 만들어주기에 애썼다. 현재까지 삼합진에서는 소형공원을 건설하고 중심가 도로 량켠의 주민들에게 1500메터에 달하는 울타리와 철란간 1100메터를 둘러주었다. 도로 량켠은 풀과 꽃, 나무들로 4000평방메터에 달하는 록화대를 꾸몄으며 도로 량켠 2킬로메터에 달하는 화단을 새롭게 꾸며 마을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전문가소조는 령도조직기구 및 진구역환경기획집행정황, 생태진건설선전, 환경질, 환경오염방지, 생태 보호와 건설, 환경보호기초시설건설 등 면에서 충분한 긍정을 표시, 삼합진은 “국가급생태향진”과 또 한발자국 다가섰다.
 
국가급생태향진을 건설하는것은 자손만대를 복되게 하는 민심공정이다. 올해 삼합진에서는 환경오염방지사업과 함께 향진공공록지건설을 틀어쥐여 량호한 생태환경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또한 공공위생과 환경보호사업을 틀어쥐고 군중들에게 쾌적한 생산, 생활환경을 마련해줄 계획이다.
 
▲ 해마다 한번씩 거행되는 송이축제에서 1등 송이를 관람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김승산 기자

▲ 삼합에서는 경상적으로 시민들을 조직하여 여러 가지 문화오락행사를 펼치고 있다. 어르신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 김승산 기자

 
 
<연길 = 글 : 장경률/ 사진 : 김승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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