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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밥보야, 이제는 배곯지 않니?”
수국꽃 설화
기사입력: 2012/08/05 [20:5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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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수국꽃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사발만하게 크고 풍성한 꽃 뭉치며, 그 뭉치 꽃송이가 모여서 한 아름의 꽃덤불을 이룬 모습은 참으로 후덕해 보인다. 화려하거나 진하지 않은 색깔에 둥그스럼한 꽃무더기는 오랜 벗처럼 편하게 느껴진다. 세상을 모질고 강파르게 살지 말고 너그럽고 따뜻하게 사는 게 훨씬 낫지 않느냐고 말하는 거 같다.

화단의 중심부가 아니라 담장 밑이거나 어느 귀퉁이에 심어지기 마련인 수국은 다소곳이 제 팔자에 순응하면서 아들 딸 많이 낳아 잘 기르며 집안 살림도 잘 꾸려가는 중년 아줌마 같다.

살면서 이런저런 아픔이며 슬픔이며 애타는 사연들이 오죽 했을까. 그런 것조차 다 삭혀서 꽃잎 하나 우그러뜨리지 않고 피워내는 심성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절에 가면 연꽃 다음으로 자주 보게 되는 이유도 다 그런 수국의 심성 때문이 아닐까.

인정 많은 수국 아줌마가 큰 주걱으로 듬뿍 퍼준 더운 밥, 그 밥에 풋나물을 넣고 비벼 먹으면 삼복더위에도 지치지 않으리라.

저 아니면 천하가 망하고, 저 아니면 역사가 뒤틀리고, 저 아니면 백성의 밥그릇이 다 날아간다며 애민충정 우국지사들의 언설이 억머구리 끓듯 한다. 더위에 지친 몸이 핏대 세운 언설에 더 지친다. 몇 달 후면 대선이 있으니, 구렁이 독사 방울뱀이 춤추고 호랑이 독수리 살쾡이가 발톱을 다듬는다.

그나마 속 끓이지 않으려면 고개를 그 쪽으로 돌리지 않는 게 낫다. 그 판에 얼쩡거리다가 귀뺨을 맞거나 쇠고랑 차는 이들이 한 둘인가. 그보다는 수국이 활짝 핀 담장가를 바라보며 순한 초식동물로 사는 연습을 하자. 수국 아줌마의 푸근한 밥 보시에 보답하는 셈 치고 수국 설화 한 편을 짓는다.

[수국 설화]

아주 먼 옛날은 아니고, 전라도 어느 마을에 무지 밥을 많이 먹는 밥보 총각이 살았어요. 보통 사람의 서너 배를 먹어도 양이 차지 않아서 하루 종일 껄떡대는 밥보는 늘 함지박만한 밥그릇에 가득 흰 쌀밥을 담아 먹는 게 소원이었지요.

그렇지만 가난한 살림에 어디 그런 밥상이 가당키나 하겠어요. 늘 배가 고파 쩔쩔매다가 명절이나 누구 집 잔칫날이 오면 동네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먹어댔지요. 그렇게 많이 먹어도 전혀 배탈이 나거나 체하지 않으니 신통했구요.

밥이 곧 힘이라고 하잖아요. 덩치도 큰 밥보는 힘이 장사였어요. 장정 네 사람이 겨우 드는 노둣돌을 혼자서 불끈 들어 올려 마을 어른들을 놀라게 했어요. 먹성 좋은 밥보를 잘 먹인다면 아마도 맨손으로 황소 뿔을 뽑는 천하장사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심성 좋은 밥보는 길 내기, 바위 치우기 등 마을 울력에 몸을 사리지 않았고 소 대신 쟁기를 끌어 남의 밭을 갈아주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 욕심 많고 심술궂은 고을원님이 순행이랍시고 이 마을에 들러 밥보를 잡아놓고 호통을 쳤습니다.

"이 돼지 같은 놈아! 네 놈이 보통 사람의 다섯 배나 처먹는다니 이 고을 곡식이 남아나겠느냐? 네 놈의 볼기를 쳐서 밥통에 든 걸신을 내쫓아야겠다!"

백성의 곡식이며 금붙이를 수탈해가는 데 이골이 난 원님이 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닦달하였습니다. 사실 원님은 다른 이유로 화가 나 있었습니다. 더위를 참아가며 연 사흘째 고을을 누볐는데 관아(官衙) 증축 기금으로 모은 게 고작 쌀 일백 섬에 무명 50필에 불과했거든요.

궁벽한 시골의 관아를 증축해야 할 까닭이 없었지만 청사가 초라해 지방관장의 체통이 서지 않는다면서 억지 추렴에 나선 거지요. 한양에서 쌀 오백 섬을 바쳐 원님 자리를 샀는데 물색없이 한미한 고을로 내려온 탓에 일년이 다 가도록 본전을 챙기지 못했으니까요.

원님 앞에 무릎 꿇은 밥보는 떠꺼머리를 극적거리며 대꾸했습니다.

"지가 죽일 놈이구만요. 그런디 나보다 백배 천배 더 많이 처먹는 놈이 있으니 그 놈을 먼저 패죽여야 고을이 살 것이구만요."

"아니, 이 고을에 그런 엄청난 도둑놈이 있단 말이냐? 그놈을 가만 두면 세상이 망하겠구나. 그 놈이 어디 있느냐?"

"사또님, 소인이 그 도둑놈을 패대기 처서 잡아올깝쇼?"

"옳거니! 그리 한다면 네 놈의 죄는 용서해주겠다."

원님이 흐흠! 기침을 하며 이렇게 하명하자, 밥보는 벌떡 일어나 사또 멱살을 틀어잡고 땅바닥에 패대기쳐버렸답니다. 창졸간이라 원님 곁에 늘어서 있던 이방이나 나졸들이 막을 새도 없었습니다. 넉장구리로 나가떨어진 원님이 엉금엉금 기어 일어나면서 "이 놈이! 이 놈이!"하고 눈을 부릅뜨자 밥보는 마을사람들에게 왜장을 쳤습니다.

"어르신들, 저야 많이 먹어봤자 가마솥으로 하나지만, 사또는 하루에도 수십 가마나 남의 쌀을 빼앗아 잡수지 않습디까? 누가 더 곡식을 축내는 도둑입니까?“

말이야 틀린 말이 아니지만 어느 안전이라고 밥보 역성을 들겠어요. 마을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 주춤주춤 물러섰지요.

밥보는 잡혀가 관장 능멸죄에다 폭행죄, 유언비어 유포죄, 군중선동죄까지 겹쳐 피곤죽이 되었지요. 너무 두들겨서 찢어진 북이나 다름없이 곤장을 맞고 옥살이를 하다가 한 달이 안 돼 그만 굶어 죽었대요.

다음해 여름,
밥보가 살던 집 담 밑에 사발만한 밥꽃이 무더기무더기 큰 가마솥에 가득 차고도 남을 만큼 피었답니다. 색깔도 하얀 쌀밥, 자주빛 찰밥, 푸르스름한 풋콩밥과 똑 닮았어요.

꽃송이 하나마다 고봉으로 담은 상머슴의 밥그릇 같았습니다. 그 꽃이 정말 밥이었다면, 보리개떡이나 풀죽으로 여름을 나는 온 마을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 먹어도 너끈했을 겁니다.

꽃이 핀 다음부터 그 여름 내내 아무도 살지 않는 밥보네 집에서는 한밤중에 들으면 수걱수걱 숟가락으로 가마솥을 긁어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꽃을 수국(水菊)이라 이름 지어 부르며 “밥보가 누룽지를 긁고 있나벼”하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박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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