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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 총각김치 타령
기사입력: 2012/06/17 [13:3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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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 가운데 김치를 잘 담그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마 이발소에 가지 않고 제 머리를 스스로 깎는 이만큼이나 드물 것이다.

요즘은 동네 골목마다 김치를 파는 가게가 있으므로 주부들도 직접 김치를 담는 대신 사다 먹는 추세다. 맞벌이를 하거나 이런저런 일로 바쁜 도시주부들은 까다로운 김치 담그기를 할 여유가 없다. 또 애써 담가보려 해도 제대로 맛이 있을지 몰라 주춤하게 된다.

내가 도전해보기로 했다. 고요한 월덴의 호숫가에 조그만 집을 짓고 홀로 살면서 사려 깊은 글을 남긴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데이빗 소로처럼 ‘신중하게 생활의 본질적인 것과 직면’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내 먹을거리는 내 손으로 장만하기로 맘먹은 까닭이다. 모든 먹을거리를 다 자급할 수는 없지만, 시골에 살면 채소류는 충분히 챙길 수 있다.

채마밭이 죽을 뻔한 유비를 살렸다지

지난봄에 괭이로 텃밭을 일구고 이것저것 심어보았다. 상추, 고추, 시금치, 들깨, 콩, 호박, 가지, 대파, 부추, 고구마를 조금씩 심었고 열무와 총각무의 씨도 뿌렸다. 땅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고 가끔 잡초를 뽑아주다 보니 이것들이 앙증맞게 새싹을 내밀고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신기한 것은 흙을 만지면서 채소밭을 돌보다 보면 지난밤의 숙취로 찌뿌듯한 몸이 서서히 풀리고 어느 새 한 나절이 흘러갔다.

채소를 기르면서 나는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의 유비를 떠올린다. 내 멋대로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는 농사법을 ‘유비농법’이라고 이름 지었다. 싸움에 패한 유비는 조조 진영에 투항해 감시를 받으며 연금생활을 할 때였다. 야심만만한 조조는 황숙의 신분인 유비를 제거해버릴까 말까 고민한다.

그래서 유비를 유심히 살펴보기로 한다. 유비는 전혀 그런 낌새를 모르는 척 채소 기르기에만 몰두한다. 밭을 갈아 씨 뿌리고 풀 뽑으며, 심지어 거름통을 지고 똥, 오줌을 퍼 나른다. 그런 유비의 모습을 보고 조조는 안심한다.

조그만 밭뙈기에 넋을 빼앗긴 저런 소인배가 천하쟁패의 야심을 가졌을 리가 만무하니, 괜스레 칼에 피를 묻혀 민심을 잃을 이유가 없다고. 유비의 기만술에 꾀 많은 조조가 속은 것이다. 나도 유비농법으로 채소를 기른다.

심은 지 달포가 지났을까. 열무와 총각무가 김치 담그기 좋을 만큼 자랐다. 열무는 ‘여린 무’라는 뜻으로 줄기가 뻣뻣하기 전의 어린 무를 말한다. 열무김치는 여름더위를 식혀준다는 의미로 ‘열무(熱無)’ 김치라고도 한다. 한여름에 밥을 비며먹어도 좋고, 물김치로 담가 국수를 말아 먹어도 좋다.

총각무는 다른 말로 알타리무라고 부른다. 잎줄기가 사방으로 뻗쳐 옛날 총각의 더벅머리 비슷하고 무 뿌리는 크지는 않지만 그 모양이 총각의 뿌리 같다고 해서 총각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열무김치에 비해 아삭아삭하다.

더 놔두면 무가 점점 쇠어서 김치를 담가도 억새질 것이 뻔해 일단 뽑기로 했다. 누른 잎 가려내고 잔뿌리를 잘라가며 다듬은 다음에 물로 깨끗이 씻어 놓으니 제법 그럴 듯했다. 왕소금을 설설 뿌려서 한 시간쯤 절여 놓았다가 다시 물로 헹궈 내니 열무김치 총각김치를 담글 주재료가 마련되었다.

파독 광부 청년은 김치로 예쁜 색시를 얻었다는데

여기까지는 별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진짜 솜씨는 지금부터다. 까나리액젓이나 멸치젓에 찹쌀풀을 쑤어 섞고, 여기에 쪽파, 양파, 부추, 마늘, 고춧가루, 홍고추, 생강, 매실청 등등을 적당량 넣어서 잘 휘저어 양념장을 만들어야 된다고 쓰여 있다. 어디에? 인터넷에 ‘열무김치, 총각김치 담그는 법’을 검색했더니 어느 노련한 아줌마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그럴 듯한 사진과 함께 설명해 놓았다.

거참, 준비할 것도 많은 데다 그 배합 비율도 복잡다단하다. 게다가 믹서기로 갈아서 넣을 것, 알맞은 크기로 썰어서 넣을 것, 풋내가 나지 않게 살살 다룰 것 등등 주의 사항이 많기도 하다.

이쯤에서 독거노인은 그만 손 털고 손맛 좋은 동네 아줌마의 손을 빌려야 마땅할 텐데, 내친 김에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문득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한강>의 한 부분이 머리를 스친다. 몇 권쯤에 나오던가, 60년대 독일에 광부로 간 청년 한 명이 그곳에 간호사로 일하러 간 처녀에게 반해 일요일마다 김치를 담가서 간호사 기숙사로 찾아가곤 하는 장면이다.

그 청년은 당시 파독광부 가운데 유일하게 김치를 잘 담그는 재주를 지녔다. 청년의 지성스러운 김치공양에 간호사는 감동하고 둘은 짝을 이루어 나중에 독일 어느 도시에선가 한식당을 크게 운영하는 걸로 매듭지어진다.

이역만리로 나가서 힘든 노동을 하는 조선의 총각 처녀를 김치가 인연 맺어준 셈이다. 김치는 간호사의 독일요리에 질린 ‘입맛의 고독’을 풀어주고 자연스럽게 김치 총각이 찾아오는 일요일을 반기게 해 낯선 땅에 내던져진 ‘기숙사의 고독’도 풀어준 것이다. 백성에게는 밥이 곧 하늘이라고 하는데 조선 민초에게 김치는 하늘 한쪽을 붉게 물들이는 황혼일까.

그 순직하고 똘망한 광부 청년을 생각하며, 자전거를 몰고 읍내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양념거리를 사다 주욱 깔아 놓고, 눈 먼 며느리 밥 비비듯이 더듬더듬 양념장을 만들어보았다. 어느 구름에 비 들은 줄 모르는 법이니 그저 열심히 하다가 보면 없는 맛도 생기겠지.

예로부터 남자의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오고 여자의 권력은 주방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더라. 그런데 박근혜는 김치 담글 줄을 알까 모를까. 생초보가 레시피에 몰입해도 될까 말까 할 텐데, 갓 머리 깎은 애송이 스님처럼 잡념이 두서없다.

양념장이 그럴싸하게 되긴 되었다. 절인 열무와 총각무에 양념장을 쏟아 붓고 두 팔로 힘지게 버무렸다. 가닥을 하나 집어 간을 보니 얼추 그럴 듯하다. 아무렴, 맛은 모자라도 괜찮으니 망신만은 시키지 말아다오. 열무와 총각무를 따로따로 큰 그릇에 담았다.

김치 냉장고에 우겨 넣고 나서 손을 씻었다. 너무 양이 많다. 맛이 좋으면 모를까 저걸 남 줄 수도 없고 혼자서 언제 다 먹나 싶다. 시간을 보니 한 나절이 훌쩍 지났다. 어쩐지 배가 고프더라니! 텃밭의 상추나 뜯어다가 쌈장에 싸 먹는 것으로 늦은 점심을 치러야 할 참이다.
 
 
<박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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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12/08/18 [11:38] 수정 삭제  
  김치 맛이 잘 들었을텐데 다 드셨는지요?
글만 봐도 감칠맛이 솔솔 돌아 입에 침이 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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