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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용역 정권의 적선 자본주의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권, 1%만의 탐욕으로 망할 것
기사입력: 2012/03/09 [11:0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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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에 경도돼 있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세계 3대 미항은 빈말이 아니었다. 잘 정돈된 넓은 거리, 아름다운 조경, 남미 특유의 열정과 낭만이 어우러진 풍광 속에 혁명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런데 거기엔 아픔이 철철 묻어나는 5월 광장이 있었다. 더러운 전쟁(dirty war) 때 살해되었거나 실종된 가족들의 이름을 새긴 스카프를 두른 어머니들이 있었다. 아름다움과 함께하는 비극의 역설을 그냥 넘기는 일이 힘들기는 언제나 마찬가지다. 그것뿐일까. 아름답고 화려한 거리를 조금 벗어나면 바로 빈민가가 나온다. 가난과 풍요가 그 거리에서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안내를 해주었던  후안에게 왜 하필 빈민가냐고  물었다. 아르헨티나 법과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그의 대답은 웃음이었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그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혁명은 추억으로 남아 자본의 아이콘이 되어 있었지만.

아르헨티나는 대학 등록금이 없다. 자본권력의 용역들이 피터지게 사학법을 개정할 필요도 없으려니와 정치권력이 사학재벌과 동업자가 될 필요도 없다. 교육 팔아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자들의 용역은 원천 봉쇄되지 않겠는가.

양극화와 불평등의 현실에서 아직도 퇴각하지 않은 신자유주의가 너울거리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학습되고 순치된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는 얘기다.

거리에는 열정이 묻어났다. 거리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들, 축구 기념관 앞거리에는 유명한 축구 선수들의 발자국(foot print)이 즐비했고 관광객들은  그것을 카메라에 담기에 마냥 바쁘다.

-아무것도 남기지 마라 그저 발자국만을,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추억만을 간직하라- 지금은 영국 영토인 포클랜드 해안에 쓴 팻말의 글귀다.

제주도가 세계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면서 겪은 사기소동을 생각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강정마을은 또 어쩔 것인가?

수준이나 품격은 이런데서 민얼굴을 들어내는 게 아닐까? 알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명박이 말끝마다 품격을 들먹거리는 이유를. 범죄로 추정되는 행위에도 품격의 고깔모자를 씌우면 통치행위로 둔갑할 수 있을까.
 
범죄 심리학은 사기를 당한 자나 사기를 행한 자가 범죄의 경중은 있지만 범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지난 4년 동안 한반도 주민의 다수가 의사 공범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더라도 문화”의 창궐을 경계하기에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부패하더라도, 청렴하지 않더라도, 불법이나 탈법을 저지르더라도 돈만 벌면 된다. 능력만 있으면 된단다.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가슴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도덕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너덜너덜 찢어졌는데.

1%의 언저리에서 기득권 사수의 용병들은 김재철이 했듯이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 법인카드로 명품을 구입하고, 특급 호텔에서 숙박하고 근무시간에 마사지를 받는다. 하기는 월가의 그들이 법인카드로 성매매를 했다는 마담뚜의 증언은 지금도 회자된다. 미국 따라하기가 극에 달했다는 얘기다. 광신도가 따로 있겠는가.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의 교차충복이 된 금융모피아들, 철 밥통 공직자, 허기에 차서 한없이 퍼먹어 대는 재벌 3세들의 내역서다.

자영업자가 넘쳐나는 거리에서 그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왕성한 탐욕과 잔인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아이스크림에서 순대까지, 진기하고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서 푸아그라까지 퍼먹어대는 그들은 왜 그리도 허기져 할까.
 
거기에 용역이 합세한다. 용역은 탐욕의 도구다. 탐욕의 하수인으로 동원된 도구란 말이다. 하기는 용역에 매료되어 대통령의 연설문까지 외주를 주는 얼빠진 나라다. 미국 국회연설에서 기립 박수를 여러 차례 받았다는 그 연설문 말이다.

남미를 입맛대로 조리하기 위한 제국주의 패권세력의 비호와 사주를 받아 칠레의 합법적 사회주의 정권의 아옌데를 죽음으로 축출한 칠레의 피노체트, 아르헨티나의 군부세력들, 멕시코의 하수인들, ‘더러운 전쟁’의 용역들은 넘쳐 난다.

저 빛나는 한반도의 4월을 군홧발로 짓이긴 건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걸까? 광주의 5월을 피로 물들인 하수인들은 누구의 비호를 받은 걸까?
 
비정규직도 1%의 배를 꾹꾹 눌려 채우기 위한 제도임을 단언한다. 1%는 서로 꽁꽁 묶여 있다. 1%가 뒤탈 없이 퍼 먹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꾼 자들에 대한 답례는 기본이다. 그들은 그렇게 얽혀 있다. 그들은 동업자란 얘기다.

용산 참사의 눈물은 아직도 철철 흐르고 있는데, 용역들이 했으므로 그들은 책임도 사과할 필요도 없다. 이게 민주화와 근대화를 짧은 기간에 이뤘다고 자화자찬에 정신없는 오늘의 자화상이다.

선택권이나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박탈당한 이 상황이 바로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선동과 1%의 가없는 허기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의 선동은 집요하다.

99%가 ‘하더라도 문화’에 빠지게 된 게 선동의 학습효과일까. 아니면 이명박의 성공신화(?)와 로또 증후군의 합작품일까. 게다가 적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당신들을 먹이고 살릴 것이라고 근엄하게 훈시한다. 뼛속까지 친미 친일인자들의 경제 원칙 1조다.

경제에서는 도덕을 빼버려야 한다니까. 이게 정답이라니까. 그들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들춰 보기나 했을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들먹거리며 시장 만능주의에 몰입했지만 정작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무덤에 “여기 도덕 감정론의 저자 잠들다”로 씌어지기를 소망했다.

사기가 따로 없다. 선택적 망각과 편의에 따른 기억의 혼재 속에 자신들의 다단계 사기가 영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게 그 세계의 불문율이라던데. 이 더러운 판의 한복판에서 길은 어디에 있는가.

모욕적이다. 자신들의 흘러넘쳐 주체할 수 없는 부는 정당하다고 우기면서 도덕이 밥 먹여 주나라는 거다. 적선은 하겠다는 거다. 적선에 감동되어 주눅 들게 만들겠다는 게 적하효과의 기본 줄기다.

노동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서 숨이라도 쉬고 있는가. 국가는 파업이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 주눅 든 사람들은 관리하기 편하니까 경제용어로 말하면 얼마나 실용적이고 효율적인가.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이 전쟁 더럽다. 그렇다고 달리 피할 길도 없다. 용역의 운명이라고 접어야 할까? 노엄 촘스키가 진단한 ‘쇠퇴하는 미국’(Decline American)에 동승하려는 걸까?

신자유주의의 충복이 된 용역 정권, 그들의 적선 자본주의는 허구임이 드러났다. 일자리 창출도 경제성장도 헛소리였을 뿐이다.

출구 찾기에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출구의 한 축인 선거가 바로 앞에 있다. 그런데도 길 찾기가 아득하기만 하다. 또 다른 기득권의 헛발질이 정점으로 내 닫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멀었는가. 길은 저기에 저렇게 있는데.
 
 
<김승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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