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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흔하지만 더 없이 귀한 ‘오이’
[글이삭 건강학] 풍부한 영양소에다 쓸모 많아
기사입력: 2011/07/02 [17:3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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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한여름이면 고향집 뒷밭에는 어른 팔뚝만한 오이가 지천이었다. 대나무를 삼각대처럼 엮은 거푸집을 휘감고 오른 오이는 노랗고 작은 꽃을 마구 피워댔다. 벌과 나비들이 부지런히 교배를 시켜주면 오이는 아이 손가락 만하게 맺혔다.

크는 속도가 눈부셨다. 물만 충분히 주면 하루가 다르게 오이는 컸다. 오죽하면 “한여름 오이 크듯 한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그러면 대나무 거푸집 아래에 주렁주렁 푸른 오이 열매가 매달려 있게 마련이었다.

날오이를 고추장에 찍어먹으면 갈증 '안녕'

여름방학이므로 밖에서 놀다가 집에 오면, 무조건 뒷밭에 가서 한두 개 잘 생긴 오이를 따서 찬물로 씻은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그걸 먹으면 한결 더위가 가시고 갈증이 사라지며 저녁밥 때까지 허기도 들지 않았다. 오이는 참외나 수박처럼 달지는 않아도, 상큼한 향이 있어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우리 집만이 아니었다. 모든 마을집이 다 뒷밭에 오이를 심어서 날로 썰어 먹기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냉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또 오이짠지를 만들기도 하고 늙어서 매우 커진 노각으로는 오이물회를 만들어 별미로 삼기도 했다.

그러므로 오이는 상추나 쑥갓, 고추, 호박처럼 매우 흔한 채소였다. 따 모아 팔 줄도 모르던 순박한 시절이었으므로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뒷밭 오이를 한두 개 따먹는다고 해서 흉이 될 게 없었다. 그만큼 흔했다.

여름이 다 지날 무렵이면 오이는 끝물이라 열매가 크지 않고, 꼬부라진 형태로 자랐다. 오이 잎도 지쳤는지 점차 누렇게 변해 갔다. 그러면 그걸 낫으로 걷어서 한쪽 구석에 모아놓고 나무 거푸집을 해체하면 간단하게 일년 오이농사도 끝이 났다. 오이 덤불에서 열매를 대충 따내 돼지에게 주면 신이 나게 먹어댔다.

오이는 '하찮은 것'이 아니라 ‘귀물’

어느 날 시내 장 구경을 갔다가 돈을 받고 오이, 상추, 풋고추를 파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조그만 땅만 있으면 자기 가족이 먹을 양을 실컷 얻을 수 있는 것을 돈 주고 사다가 먹다니! 봄에 퇴비를 밭에 넉넉히 넣은 다음 씨 뿌리고 틈틈이 물만 주면 잘 자라는 것들이 아닌가. 상추, 풋고추, 호박잎도 돈 받고 팔았다.

쇠고기나 쌀이라면 몰라도 그까짓 푸성귀들을 서로 나눠 먹지 않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무척 인색해 보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한 손아귀 정도의 양은 주인에게 말할 필요도 없이 따가도 아무렇지 않은 채소들이었다.

수박서리, 참외서리, 닭서리 따위는 있어도 오이 서리, 풋고추 서리, 호박잎 서리를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몰래 훔쳐 먹는 서리를 하지 않고도 아무 집 것이나 조금 따먹으면 그만인 하찮은 것이었다. 그렇게 푸성귀나 오이를 나눠 먹는 게 동네 인심이고 정이었다.

그런데 그 ‘하찮은 것’ 가운데 하나이던 오이가 사실은 몹시 쓸모 있고 영양가도 많은 ‘귀물’임을 어른이 된 뒤에야 알았다. 이를 알게 된 뒤부터는 등산 갈 때마다 한두 개 오이를 배낭에 집어넣곤 한다. 피로와 갈증을 가시게 하는데 오이만한 것이 없다.

오이한테는 꽤나 미안한 일이다. 그 값으로 내가 알게 된 오이의 효능을 알리고자 한다. 그러면 수십 년동안 ‘하찮은 것’ 취급을 받으면서도 군말 없이 내 입에서 와삭와삭 씹히기를 마다 않던 오이들에게 약간이나마 하대(下待) 닦음이 되려나 싶다. 오이여, 너의 고마움을 어린 나는 몰랐어도 늙은 나는 잘 안단다.

[오이의 효능]
 
콜라보다 오이를 먹어라

오이는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오이 한개는 비타민 B군(B1, B2, B3, B5, B6), 엽산, 비타민C, 칼슘, 철분, 마그네슘, 인, 아연 등을 포함하고 있다. 가령 오후에 피로를 느낄 때는 카페인이 들어있는 콜라나 탄산수보다는 오이 하나를 먹는 것이 낫다. 오이는 비타민B와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어서 속히 원기를 회복하고 기력을 지탱할 수 있다. 오이 샌드위치도 좋다.

오이로 욕실 거울 김 서림 막아

샤워를 하고 나서 욕실 거울에 뿌연 김이 서리는 것이 싫으면, 오이를 가로 썰어서 거울 표면에 문질러 주면 김이 말끔히 가시고 스파 온천처럼 상쾌한 향기가 풍긴다.

버러지 퇴치 선수

텃밭과 화단에 굼벵이와 달팽이가 창궐하면, 납작하고 빈 알루미늄 깡통 속에 가로로 썬 오이를 몇 쪽씩 넣어두면 여름 한철 밭에서 그런 버러지들을 몰아낼 수 있다. 오이의 화학성분이 깡통 표면의 알루미늄과 반응하여 사람의 코로는 맡을 수 없는 냄새를 발산하는데, 벌레들은 이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밭에서 달아난다.

뾰루찌를 살짝 감추기

외출할 때 얼굴에 돋은 뾰루지 또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을 때 노출되는 뾰루지를 간편하게 감추는 방법으로 사용한다. 오이를 썰어서 한두 쪽을 그 부위에 몇 분 동안 문질러 주면 오이의 식물성 화학성분이 피부의 교원질(膠原質)을 긴장시켜 외피를 팽팽하게 만들고 뾰루지를 감춰준다. 주름살을 일시 감추는 데도 효과가 있다.

숙취나 두통은 싫어

숙취나 두통을 예방하려면 잠들기 전에 오이를 몇 조각 먹고 자면 아침에 일어날 때 투통이 없고 상쾌하다.

사냥꾼의 간식거리
 
출출한 오후나 저녁에 간식을 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싶으면 대신 오이를 먹는다. 유럽에서는 수백 년 동안 사냥꾼, 상인, 탐험대원 등이 야외에서 손쉽게 허기를 채우는 수단으로 오이를 먹었다.

바쁠 때 후다닥 구두 닦기

중요한 회합이나 취직 면접 장소에 서둘러 나가야 하는데 구두 닦을 시간이 없을 때 응급처치를 하기에 좋다. 오이를 가로로 잘라서 구두 표면에 문질러 주면 광택이 오래 유지될 뿐만 아니라 물방울도 스며들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돌쩌귀는 내게 맡겨라

삐걱거리는 돌쩌귀(경첩)를 윤활해주고 싶은데 기름이 떨어졌을 때 오이를 쓰면 된다. 삐걱거리는 마찰 부위에 오이를 문질러서 오이즙을 스며주면 어느새 삐걱거리지 않게 된다.

오이향은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여인이 일과에 지쳐서 얼굴 마사지나 스파를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면 이렇게 해보라. 오이 한 개를 몽땅 썰어 냄비에 담아 물을 부어서 끓이면, 오이의 화학물질과 영양소가 증발해서 편안하고 그윽한 향기를 발산하는데 그것은 산모나 시험을 치르는 여대생들의 신체적 스트레스를 경감해 주는 효과가 있다.

아무래도 입 냄새는 싫어

직무상 고객들과 오찬을 나눈 후 입 냄새가 걱정되는데 껌이나 박하사탕이 없다면 이렇게 커버하라. 오이를 가로로 썬 얇은 조각 하나를 혓바닥에 올려 입천장에 밀어붙이고 30초 동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오이의 식물성 화학물질이 입 냄새를 발생하는 박테리아를 죽여서 입 냄새를 제거한다.

친환경 광택 내기의 강자

수도꼭지, 싱크 또는 스테인레스 용기 등을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닦고 싶은가? 닦고 싶은 용기 표면에 오이 조각을 문지르면, 여러 해 묵은 때를 벗겨내서 광택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얼룩도 남기지 않고, 닦는 동안 손가락과 손톱에 해를 입지 않는다.
 
 
<박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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