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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마음 열고 정 나누는 봄맞이 가자
[봄맞이] 강나루 얼음장 으깨고 화신이 건너온다
기사입력: 2011/04/16 [08:3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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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얼음장 으깨고 화신(花信)이 건너온다. 담장가의 앵두나무에 젖순애기가 돋는다. 맑고 따뜻한 햇살이 대나무밭 죽순 그루터기에 내린다. 이제 막 남국에서 건너온 햇살이다. 저런 일광의 한 올을 뽑아내어 허리를 분지르면 달디 단 자양이 흥건히 적셔질 것 같다.

저 햇살은 손님을 데불고 온다. 마을길 멀리에서 파란 잎새들이 날아온다. 창포 잎 위에 청개구리 앉아 찾아온다. 그 뒤론 노란 종병아리떼가 무밭 장다리꽃잎 물고서 건너온다. 모조리 동면에서 깨어나 곰실곰실 봄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친구야.
오늘 한 나절은 교외로 나가 질펀히 앉아 실눈을 뜨고 남쪽을 보자. 지난겨울, 쓸쓸한 벌판을 헤매던 꽃씨들의 유언을 쓰다듬어 올리는 아지랑이를 보자. 아지랑이 뒤로 아물거리는 남도의 청보리밭이 있다. 보리밭 너머 또 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 하늘 아래 어느 외진 자리에서 네가 착한 짐승처럼 내 곁에 누워 있으면, 나는 겨울 내내 솔아버린 귀청을 열겠다.

그러면 갯벌 위에 매어둔 목선을 풀어내는 강마을 머슴들의 봄타령이 살아올 것이다. 아니면 물오른 버들가지 꺾어 매고 잔등 너머 마을로 내려가는 백정 무리들, 개울가에는 삼동 누더기 다 이고 나와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방망이질 소리.

개울 건너 언덕에는 마을 꼬마들이 마른 잔디를 태우고 있을 것이다. 잔디에 불을 지르며 신명이 난 아이들의 껑충거림, 꽃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번지는 불, 그리고는 또 저 멀리 동냥자루 걸어 매고 떼 지어오는 각설이패, 양아치 무리.

제 멋에 겨워 소곤거리고 사운대면서 번져가는 봄날을 본다. 새로운 푸닥거리를 준비하는 칠순의 무당 할머니처럼 봄날은 얼마나 기특한 미망이냐.
 
친구야.
아지랑이 사이로 웬 남정네 하나 안 보이나. 마을 아이들 더러는 풀잎 따 모아 풀각시 만들고, 더러는 두어 점 꽃덤불처럼 앉아 나물 캐는 아이들을 보며 걸어오는 이 말이다. 시오리 장터까지 걸어가서 상추씨 한 종지, 호미 두 자루, 그리고 미역 한 줄 사들고 온다. 딸만 둘이더니, 올해는 삼신할매가 아들이라 점지했다며 부풀어 있다.

친구야, 너도 생각할 수 있겠지. 저 남정네가 걸어오는 길을 말이다. 옛날 할아범들이 쉬엄쉬엄 넘어가던 보릿고개 말이다. 시래기 국물에 봄 송사리 몇 마리 훌훌 마시고 눈동자 깜장 같은 손주를 몰며 넘던 고갯길이다.

드센 송골매도 겁을 내는 허기진 실구름만 떠가는 고개.
그 고개 중턱에서 우리 할아범들은 왜 통곡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주린 배를 견디면서도 봄이면 다시 씨를 뿌리는 어쩌면 그렇게 착한 백성들이었을까. 할아범들은 그것이 정인지도 모르면서 서로를 그리도 따스하게 부축할 수 있었을까.

친구야.
오늘도 어느 골목에서 서성이다가 종내 날개 처진 새가 되어 돌아오는 친구야. 너와 나의 하늘에 텅 빈 시리고도 허전한 공복, 그 쓸쓸한 땅에 씨앗을 뿌리자. 오늘은 두 무지렁이로 만나 메마르고 가난한 우리들의 봄날을 애기하자. 오늘은 네 문밖에서 가난한 내향(內向)의 얘기를 하겠다. 나 비록 열어주지 않더라도 너는 내 창을 덮은 성에를 닦아다오.

친구야 봄날이 온다. 먼 조상의 웃음소리 같은 봄날이 온다. 함께 일구어 나누어 가지는 신열이 있다. 우리 마음의 응어리를 녹여줄 신열이다. 예복이라면 무명옷 한 벌, 깨끗이 빨아 입고 봄 맞으러 가자.
 

<박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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