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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사랑과 그리움의 여인, 매창
조선 3대 여류시인 이매창이 잠든 전북 부안읍 ‘매창공원’에서
기사입력: 2011/03/14 [07: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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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창의 묘.     ©박상기
 
이화우(梨花雨) 흩날릴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조선 3대 여류시인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의 유일한 한글 시조 <이화우>이다. 이별한 님의 소식을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이 애달프게 그려져 있다. 하얀 배꽃잎이 흩뿌려지듯이 날리는 풍경을 '이화우'라고 표현한 것이 환상적이다. 꽃비가 내리는 날 그 화려한 낙화를 뒤로 하고 님은 떠났다. 배꽃은 봄에 피고, 추풍낙엽은 가을이니 봄에 떠난 님이 가을이 다 가도록 소식이 없다.

봄이 가고 여름 가고 늦가을에 이르도록 님 소식 없는 시간의 거리가 아주 멀다. 여인의 기다림이 절절한데 하염없이 계절은 간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시간적 거리는 다시 '천리'라는 공간적 거리로 이어진다. 아득히 '천리'나 떨어져 있으니 찾아갈 수도 없고 오로지 꿈길에서만 오락가락 할 뿐이다.

전북 부안현의 관기이던 매창이 이 시조에서 님이라 부른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을 만난 것은 열여덟 살 무렵이다. 매창은 1573년 부안읍의 아전이던 이양종(李陽從)의 서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향금(香今)이고 호는 매창이며 계랑으로도 불리웠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웠고 한시, 가야금 연주, 가무에 다재다능했다. 훗날 사람들은 개성의 황진이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양대 명기(名妓)로 손꼽는다.

매창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매창이 자라서 기생이 된 걸 보면 어머니도 기생이 아니었나 싶다. 서얼 출신이나 시문에 능했던 유희경은 나이 마흔여섯에 부안현을 찾아가 그보다 스물여덟 살이나 어린 매창을 만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1년 무렵이다. 비록 나이는 크게 차이지고 처자가 있는 촌은(村隱) 유희경이지만, 두 사람은 시를 주고 받은 첫 만남에서부터 얼을 놓는다.

<처음 만난 계랑에게>

남국의 계랑 이름 일찍이 알려져서
글 재주 노래 솜씨 서울까지 울렸네.
오늘에사 참 모습을 대하고 보니
선녀가 떨쳐입고 내려온 듯하여라.


여인을 꼬드기는 품새가 은근짜하기 짝이 없다. "네가 글과 노래에 출중하다는 소문이 천리 떨어진 한양까지 떠르르하여 너를 찾아왔더니, 과연 선녀나 다름없구나. 시와 음률을 나누며 이 밤을 함께함이 어떠한가"하고 묻는다. 유희경이 피리를 불자 이에 맞추어 매창은 거문고를 연주한다. 매창이 화답한다.

내게는 옛날의 거문고가 있어서
한 번 타면 온갖 정감이 다투어 생긴다오
세상 사람 이 노래를 아는 이 없으니
님의 피리소리에 음율을 맞춰본다오


"비록 내가 시골 작은 읍 미천한 기생이나 거문고와 시문에 품격을 지니고 삽니다. 세상 사람은 이를 알지 못하나 오늘 님을 만나 님의 피리에 음율를 더불어 하니 드디어 내 거문고가 임자를 만난 듯하오"라는 내용이다. 당돌하면서도 어렴풋이 유희경의 내방을 반기는 매창의 마음이 실려 있다. 서얼의 사슬에 묶여 재주를 썩혀야 했던 천민 신분의 유희경과 기생 신분인 이매창은 동병상련이련가 마른 숲에 불이 일듯이 열애에 든다. 음률과 시문에 출중한 재능이 서로를 끌어당겨 둘은 불이 되고 꿀이 된다. 환하게 배꽃더미가 물결치듯이 2년 동안 사랑이 녹아내린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그 사랑을 가만 놔두겠는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고, 유희경은 분연히 의병에 나서기 위해 한양으로 떠난다. 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한양에 처자식이 있는 유희경으로서는 부안현에 더는 머물 수가 없었으리라. 유희경은 유성룡 휘하에서 관군을 도와 항왜투쟁을 벌이게 되고 그 공을 인정받아 천민 신분을 벗어나게 된다.

울며 잡은 소맷자락을 무정히 떨치지 마오
그대는 대장부라 올라가면 또 사랑이 있겠지오마는
소첩은 아녀자라 당신 그리는 마음뿐이라오


매창은 눈물을 흘리며 애절하게 이별가를 부른다. 이별한 님은 전란의 와중에 휩쓸려 계절이 여러 번 바뀌어도 소식이 없다. 끝내 그들은 생전에 재회하지 못하고 만다. 매창의 기다림은 점점 더해지고, 전전반측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늘어난다. 겨울밤 기러기가 울며 구만리 하늘을 날아갈 때면 기러기 편으로라도 님께 소식을 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솟는다.

기러기 산 채로 잡아 정들이고 길들여서
님의 집 가는 길을 역력(歷歷)히 가르쳐 주고
한밤중 님 생각날 제면 소식 전케 하리라


매창은 그리움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괴롭고 벅차다. 웃을 일이 없고 흥이 날 리 없다. 그러나 신분이 기생인지라 크고 작은 연회에 나가 춤을 추고 노래를 해야 하며 뭇사내의 술시중을 들어야만 한다. 하기 싫은 짓이지만, 어쩔 수 없다. 매창의 미모와 가무에 반한 남정네들은 그녀를 유혹하려 한다. 이른바 하룻밤 길버들 꺾기다. 그러나 매창은 점잖게 물리친다.

취한 손님이 명주저고리 소매를 잡아끄니,
손길 따라 명주저고리 소리를 내며 찢어졌군요
명주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 게 없지만
임이 주신 은정까지도 찢어질까 두려워요


<취한 손님께>라는 한시(漢詩)다. 남자가 얼마나 사납게 잡아끌었으면 옷이 부욱 찢어졌을까. 매창은 찢어진 옷소매를 여미고 이렇게 시를 지어 잠자리 수청만은 들 수 없음을 넌지시 이른다. "당신은 기생인 내게 손님으로서 은정을 주었고 나는 그 은정을 소중히 여기겠으니, 더는 거칠게 유혹하지는 말라"는 간곡한 거절의 뜻이 담겨 있다. <취한 손님께>는 이렇게 이어진다.

기생과 양갓집 규수 사이에
묻노니 그 마음 다를 게 무언가요
슬프다 송백같이 굳은 절개로
두마음 안 먹고자 맹세합니다


제법 거드름을 피는 향반이었음에 틀림없을 그 손님은 술 깨나 마시고 미색을 탐하는 데는 유별났을지 모르나 매창이 일편단심 유희경만을 사모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주책스럽게 여인의 옷을 찢은 데다 이런 거절의 시를 받고서도 탐심을 거두지 않는다면 양반은커녕 채신머리없는 불상놈이 되고 만다. 아마도 취기가 싹 가시며 수치감이 일었을 것이다.
 
남정네들의 치근덕거림에 시달릴수록 매창은 유희경이 더 그립다. 밤마다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로 지새우기 일쑤다. 사랑이 죄련가 그리움이 업이련가. 창밖에 보슬비 뿌리는 날이면 더욱 그의 모습이 떠오르고 임없는 밤은 캄캄한 감옥이나 다름없다.

이별이 하 서러워 문 닫고 누웠어도
홀로 누운 잠자리는 한 없이 외로운데
하염없는 눈물이 옷자락을 적시오
소리없는 보슬비에 님 없는 밤 또 저무네


애태우는 매창의 심정이 어찌어찌하여 유희경에게 전달된 모양이다. 몇 계절이 지난 어느 날 그로부터 한 통의 서신이 온다.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는 간단한 내용과 함께 한 편의 시가 담겨 있었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한양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니
오동잎에 비 뿌릴제 애가 탄다오


유희경 또한 매창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매창의 배꽃비 즉 <이화우>와 견주는 '오동우(梧桐雨)'인 셈이다. 하얀 꽃잎이 화사하게 흩뿌려지는 이화우가 여성적이라면, 넓은 오동잎에 두두둑 떨어지는 빗물은 남성적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오동잎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천리 밖 부안현에 있는 매창을 그리워하지만 선뜻 찾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안타깝다. 고운 매창의 자태가 빗물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유희경의 그리움이 매창의 그리움만 하였으랴. 유희경의 마음고생을 매창에 견주랴. 해가 바뀌고 전쟁이 끝났어도 님은 오지 않는다. 매창은 애오라지 가슴 저미는 그리움에 시달려 병을 얻게 된다. 그리움의 병은 상사가 되어 육신마저 무너뜨린다. 마침내 매창은 1610년 절명시(絶命詩) 한 수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부안현 양지바른 동산에 평생 시름을 달래던 거문고와 함께 묻힌다. 서른일곱이다.

말은 못하였어도 너무나 그리워
하룻밤 맘고생에 귀밑머리 희었어요
소첩의 맘고생 알고 싶으시다면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구려


너무 쇠약해져 유희경이 정표로 준 금가락지조차 헐거워 손가락을 빠져나온다. 긴긴 밤 그리움에 시달려 귀밑에 서리가 내리고 몸은 수척해서 마른 풀잎 같다. 눈 감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님을 보았으면 소원이 없을 텐데 그마저도 헛된 꿈이다. 그토록 잔인하게 그리움에 시달릴 줄 알았다면 사랑을 시작하지도 않았으련만. 님을 못만나는 사랑은 형벌이고 인두로 지지는 불고문이다.

남녀가 사랑한들 어디 똑 같은 비중이랴. 더 사랑하는 한 쪽이 더 목말라 하고 더 그리워하고 더 애닳아 한다. 사랑이 남과 녀의 겨룸이라면 더 사랑하는 이는 패배하기 마련이다. 사랑할수록 패배하니, 패배가 곧 사랑이다. 패배한 사랑은 밥맛을 잃고 시름시름 앓아눕고 죽을병에 든다.

뒤늦게 매창의 죽음을 전해들은 유희경은 그녀의 넋을 향해 시 한 수를 짓는다. 죽도록 자기만을 사랑했던 여인에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다. 저도 나처럼 세월로 그리움을 씻었거니 여기고 십년이 지나도록 부안 행장을 미적거린 것이 한스럽다. 죽고 나서야 그리움이 독이 되어 그녀를 절명케 했음을 통감한다.

자탄하고 후회한들 외로운 넋으로 저승 간 매창이 돌아올 리 없다. 서얼의 한을 안고 떠돌던 자신을 품어주던 매창의 맵고 순수한 청춘에 비하면, 그리고 그녀의 외롭고 긴 기다림에 비하면, 자신의 사랑은 얼마나 삿되고 모질었던가. 달려가 무덤이라도 껴안고 통곡하고 싶건만 습속에 매인 몸을 빼낼 수 없다.

맑은 눈, 하얀 이, 푸른 눈썹 계랑아
홀연히 뜬구름 따라 간 곳이 아득하구나
꽃다운 넋은 죽어서 저승으로 갔는가
그 누구가 너의 옥골을 고향에 묻어주랴


매창의 시는 수백편에 이른다. 편편이 연모요 그리움이다. 그녀의 시는 입으로 입으로 전해오가다 사후 60년이 지난 다음 <매창집>이라는 시집으로 빛을 본다. 구전되어온 시 58수를 부안현의 아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개암사라는 절에서 목판본으로 출간하였다. 사랑으로 살다가 그리움으로 간 여인은 년년세세 고을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부안 사람들은 매창을 잊지 못해 그녀가 살던 동네를 '매창뜸'이라고 불렀다.

그녀가 죽은 지 4백년이 넘었다. 세월이 흘러도 매창의 시는 애송되고 부안을 찾은 시인묵객들이 매창의 애달픈 순애보에 감동하여 넋을 기리는 시를 짓곤 하였다. 허균이 그랬고, 가람 이병기가 그랬고, 소설가 정비석도 그랬다.

매창의 묘를 둘러싼 매창공원에는 많은 매화나무가 심겨 있다. 산악회 등반으로 고창 선운산에 올랐다가 일행이 허위허위 부안으로 달려가 그녀의 무덤을 찾은 날, 초봄의 매화나무 가지에는 동글동글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며칠이면 완연히 벙그러질 모양이었다. 매창묘역을 서성이며 졸시나마 나 또한 그리움의 화신 같은 여인에게 헌사한다.

매창묘 둘레에 매화나무 망울졌네
천리 한양길 님은 어디 오시는가
매화야 님 닿을 때까지 꽃잎 열지 말아다오.

 
 
<박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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