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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범죄 단죄하고 인권 살리는 정의의 심판을 요청한다"
아람회사건 재심 결심...“청와대까지 개입해 반국가단체 조작”
기사입력: 2009/04/01 [19:23]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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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 후유증으로 요절한 아람회사건 피해자 이재권의 묘소.     ©취재부
 
[데일리서프라이즈=하승주 기자] “아람회사건 재심 재판부가 5공의 반인권적 국가범죄를 단죄하고 피해자들의 인권을 살리는 정의의 심판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아람회사건 재심청구인들은 3월 31일 오후 4시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5공은 1980년 5.18민중항쟁의 진실을 밝히고 전두환 내란반란정권의 심판을 촉구한 경찰과 검찰 직원, 현역 육군대위, 교사 등 국가공무원들을 전두환 내란반란정권의 집권 유지를 위해 대공분실 지하실에서 반국가단체로 고문 조작해 말살하려고 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박해전 재심청구인은 최후진술을 통해 이 사건 조작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과 관련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아람회사건에 경찰, 검찰, 군보안사, 중앙정보부(안기부), 청와대 등 권력기관이 모두 개입해 의도적으로 반국가단체로 고문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 사건 담당수사관은 ‘아람회사건은 공무원, 군인, 교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까 내무부, 청와대 등에서 관심을 가지고 저희 경찰서에 격려전화를 하면서 사건이 확대되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군 제507보안부대장이 1981년 8월20일자로 보안사령관에게 보낸 피고인 김난수 대위에 대한 수사결과 보고서와 공소장에는 이 사건 피의자들을 ‘함석헌, 백낙청, 고은, 김대중 등 용공 및 반체제 인사와 접촉하고, 80년 2월 김대중과 접선해 용공혁신 정권수립에 적극 참여 추종하다가 5.17사태로 구심점을 상실케 되자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암약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전두환 정권이 자신들의 집권 기반 조성을 위해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고문 용공 조작한 데 이어, 광주학살의 은폐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81년 ‘아람회사건’을 고문 용공 조작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심청구인들은 특히 이 사건 기소의 부당성과 관련해, “수사관 들이 증언한 바와 같이 검찰은 이 사건 첩보 입수단계부터 경찰의 보고를 받았으며, 대공분실 지하실의 불법감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수사 지휘를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불법 수사를 지휘한 5공 검찰의 이 사건 기소는 도덕성과 정당성을 결여한 불법적인 것이며, 원인무효”라고 강조했다.
 
5공 사법부의 판결과 관련해, 재심청구인들은 “5공 사법부 또한 인권의 보루로서 자기 책임을 저버렸다”며 “법원은 이 사건 피해자들이 공판에서 장기간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한 것이며, 결코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거나 북한을 찬양고무한 사실이 없다고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음에도 임의성 없는 자백에 의존하여 증거재판주의에 위반하여 유죄판결을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더욱이 서울고법은 반국가단체 구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의 판결을 파기하고, 환송받은 서울고법이 피해자들에게 최고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 등의 중형을 선고하도록 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사법부의 책무를 저버린 처사”라며 “결국 5공의 사법부는 정의와 진실을 외면한 판결을 다섯 번이나 되풀이하며 피해자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재심청구인들은 프랑스 과거사 청산의 사례인 드레퓌스 대위 간첩조작사건 재심을 거론하며 “김난수 대위가 묶인 아람회사건 재심이 프랑스 드레퓌스 대위 사건 재심처럼 우리 사회의 과거사 청산의 본보기가 되고, 인권의 역사를 전진시키는 교두보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은 끝으로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가담한 권력기관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사죄 권고에 따라 피해자들의 고통을 해결할 적절한 조치를 하루빨리 이행하기 바란다”며 “우리 사회가 반인권적 과거사를 청산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국민주권시대로 전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7월 3일 아람회사건 진실규명 결정에서 “국가는 경찰 수사과정에서의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 임의성 없는 자백에 의존한 기소 및 유죄판결 등에 대하여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에게 총체적으로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아람회사건 재심 선고 공판은 5월21일 오전 10시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다음은 박해전 재심청구인의 최후진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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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5공의 반인권적 국가범죄인 ‘아람회사건’은 2007년 7월 3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으로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결정에 힘입어 이 사건의 재심이 진행되었고, 오늘 재심청구인은 사건 발생 28년 만에 재심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으로 ‘아람회사건’ 햇빛
 
과거사청산법에 의거해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규명 결정문을 통해 아람회사건이 1980년 5.18민중항쟁의 진실을 밝히고 전두환 내란반란정권의 심판을 촉구한 경찰과 검찰 직원, 현역 육군대위, 교사 등 국가공무원들을 대공분실 지하실에서 반국가단체로 고문 조작한 5공의 대표적인 인권침해사건임을 밝혔습니다.
 
중앙정보부와 청와대가 개입해 의도적으로 반국가단체로 고문 조작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 경찰과 검찰 직원, 육군대위, 교사 등 국가공무원들이 피해자가 된 아람회사건에 경찰, 검찰, 군보안사, 중앙정보부(안기부), 청와대 등 권력기관이 모두 개입해 의도적으로 반국가단체로 고문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당시 대전경찰서 정보2과 2계장) 김성일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검찰과 치안본부의 개입과 관련해 “아람회사건 수사에 착수할 때 처음부터 검사의 지휘를 받았고, 치안본부의 공작 승인이 나와 공작금을 받아 대공분실에서 한 달 정도 퇴근하지 않고 상주하며 이 사건을 수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아람회사건의 검찰 송치 전에 치안본부에서 관계자 한 분이 내려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특히 영장청구 전 검찰의 충남도경 대공분실 지하실 수사 지휘와 관련해 “아람회사건 피의자들을 구속영장 없이 대공분실에 구금해 수사한 것은 대공수사를 오래 했던 오두영 반장이 사상범 사건의 경우 영장 청구하기 전에 안가에서 장기간 조사하여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하며 그렇게 조사해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관행이라고 생각하였고, 윗선에 보고를 하고 검사 지휘를 받았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재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사건 피의자의 머리를 몽둥이로 때렸다고 시인한 수사관 김기생은 중앙정보부(안기부)의 개입과 관련해 “통상 공안사건의 첩보를 입수하면, 첩보를 기록하여 바로 치안본부, 중앙정보부, 검사에게 동시에 통보하고 검사의 지휘를 곧바로 받는다. 검사의 지휘는 이병섭 순경이 직접 받았다. 사건과 관련하여 중간 중간 보고도 하고 그랬다”며 “피의자신문조서를 중앙정보부 조정관이 보고는 조서를 다시 받으라고 해서 조서를 다시 작성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수사관 육근택은 청와대의 개입과 사건 확대와 관련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아람회사건은 공무원, 군인, 교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까 내무부, 청와대 등에서 관심을 가지고 저희 경찰서에 격려전화를 하면서 사건이 확대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아람회사건의 의도적인 조작성과 관련해, 수사관 김성일은 “이런 정도를 갖고 이적단체죄를 적용하나 하고, 아람회사건 수사가 무리하고 확대되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수사관 전복동도 아람회사건의 조작과 관련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수사지휘부에서는 아람회라는 이적단체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즉 사건의 실체를 알면서도 이적단체사건으로 조작하였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수사관을 했던 입장에서 조작이라는 말을 쓰기는 좀 거북하지만, 그렇게 볼 수 있다. 수사지휘부에서도 아람회가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이적단체가 아님을 알고서도 의도적으로 아람회사건 피의자들에 대해 이적단체를 구성했다고 그 방향으로 수사를 추진했다고 본다. 이 사건은 실체를 왜곡, 과장한 수사였다”라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아람회사건의 실체를 왜곡 과장한 이유에 대해 “경찰서 대공과 내부적으로 보면 1년에 몇 건 이상 해서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데 찬양고무발언 사건으로 끝내면 사건이 작아지기 때문이고, 또한 사건을 크게 해야 참여 수사관 가운데 승진자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사관 김기생은 재심 법정에서 이와 관련해 “당시 아람회사건 수사를 맡았던 수사관들 가운데 이병섭은 녹조훈장을 받고 1계급 특진을 했으며, 오두영 반장은 대통령 표창을, 나머지 사람들은 대전경찰서장 표창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아람회사건의 시대적 배경
 
전두환 신군부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유신독재가 종말을 고한 뒤 1980년 5월 17일 국민들의 민주화의 봄 열망을 짓밟으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해 김대중 등 민주인사 26명을 연행 구속했습니다. 자신들의 집권 기반 조성을 위해 최대정적인 김대중을 구속한 전두환 신군부는 같은 달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선포했습니다.
 
신군부는 같은 해 5월 22일 이 사건 관련자들을 체포한 지 5일 만에 김대중이 국민을 선동해 민중봉기와 정부 전복을 획책했다는 내용의 중간 수사결과를 서둘러 발표했습니다. 이는 계엄 해제와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는 5.18 민중항쟁이 격화하고 있던 광주에서 무력 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전두환 내란반란정권은 민주화를 외치는 광주시민들을 간첩의 사주를 받은 폭도로 매도하며 무차별 학살하고 체육관 통대 선거를 거쳐 1981년 3월 취임했습니다. 무자비한 언론 통제로 광주학살을 은폐하고 출범한 전두환 내란반란정권의 아킬레스건은 당연히 5.18의 진실과 광주학살의 심판이었습니다.
 
전두환 내란반란정권 유지 위해 광주학살 규탄한 국가공무원 처단
 
아람회사건 피해자들인 재심 청구인들은 전두환 정권 출범 초기인 1981년 7월 중순 대공분실 지하실로 끌려가 민중봉기와 폭력혁명으로 정부 전복을 획책하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것으로 고문 조작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재심 청구인들이 당시 전두환의 범죄를 고발하는 ‘전두환 광주살륙작전’ 유인물을 등사 배포하고 전두환 심판을 촉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5공은 전두환의 집권 유지를 위해 역사의 진실을 밝힌 국가공무원들을 반국가단체로 고문 조작해 말살하려 한 것입니다.
 
아람회사건의 수사 초기 5공은 고문 후유증으로 병고에 시달리다 별세한 피고인 이재권으로부터 ‘전두환 광주살육작전’ 유인물을 압수하고 이 사건 피해자들을 김대중 추종세력으로 몰아 ‘제2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한 것입니다. 수사당국은 이 사건 피고인 정해숙과 박해전이 1980년 2월 서울 동교동 김대중 자택을 방문해 연금중인 그를 만나 민주화에 대해 환담한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국군 제507보안부대장이 1981년 8월20일자로 보안사령관에게 보낸 피고인 김난수 대위에 대한 수사결과 보고서와 공소장에는 이 사건 피의자들을 “함석헌, 백낙청, 고은, 김대중 등 용공 및 반체제 인사와 접촉하고, 80년 2월 김대중과 접선해 용공혁신 정권수립에 적극 참여 추종하다가 5.17사태로 구심점을 상실케 되자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암약한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두환 정권이 자신들의 집권 기반 조성을 위해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고문 용공 조작한 데 이어, 광주학살의 은폐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81년 ‘아람회사건’을 고문 용공 조작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사건 수사 중간에 현역 군인인 김난수 대위가 전두환의 광주학살에 분노하고 그를 응징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5공은 중앙정보부(안기부)와 청와대 주도하에 아람회사건을 마침내 반국가단체로 조작하고야 말았습니다.
 
몽둥이로 머리 때리고 물고문...강제로 유서 작성
 
재심 청구인이 1981년 7월 19일 영장 없이 한밤중에 두 눈을 검은 헝겊으로 가리운 채 대전 보문산 대공분실 지하실로 끌려가 한달 여 동안 불법 감금된 채 겪은 고문과 폭행, 가혹행위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 수사관 김성일이 밝힌 치안본부의 공작승인은 사실상 아람회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살인면허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공작명은 ‘도미다리’입니다. 5공 하수인들은 조직체계도를 그려 놓고 조직 명칭과 목적은 무엇이며 총책과 부책은 누구이며, 조직원들의 임무는 어떠한지 대라고 하는가 하면, 북한에 몇 번 다녀왔고, 밀봉교육은 어디서 받았으며, 누구와 접선했는지, 배후는 누구인지 자백하라며 수사관 김기생이 재심 법정에서 시인한 것처럼 물푸레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재심 청구인의 머리 등을 사정 없이 무수히 구타했습니다.
 
그들은 처음 며칠 동안 재심청구인을 의자에 앉힌 채 잠 안 재우기 고문을 가했습니다. 24시간 주야 교대로 감시원을 붙여 조는 기색이 보이면 송곳으로 몸을 찌르곤 했습니다. 재심청구인은 비몽사몽 상태에서 매타작을 당하며 그들이 각본에 따라 요구하는 대로 자술서를 거듭 써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의식이 몽롱해진 재심청구인의 머리를 비롯해 온몸을 몽둥이로 시도때도 없이 구타했으며, 옷을 벗기고 몽둥이를 무릎 사이에 끼우고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힌 채 양쪽에서 몽둥이를 밟아 누르고, 얼굴 턱을 잡아 뽑을 듯이 눌러 당기고, 머리털을 움켜잡아 뽑기도 했습니다.
 
고문조장의 지휘 아래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집단 폭행을 하기도 했고, 재심청구인의 옷을 벗긴 뒤 공중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얼굴에 수건을 덮고 주전자로 물을 부어대는 물고문을 수시로 자행했습니다. 물고문이 시작되면 재심청구인이 혼절할 때까지 계속했으며, 재심청구인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햇빛 한줄기 들지 않는 지하실은 한 달이 넘는 동안 하루하루 어김없이 매 타작과 물고문으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비규환의 생지옥에서 그들의 각본대로 모든 것이 고문 조작돼 ‘아람회사건’이라는 한편의 ‘반국가단체’ 소설이 쓰여진 것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재심청구인에게 강제로 유서까지 쓰게 하고 “너 같은 놈 죽으면 거적에 싸서 뒷산에 묻으면 그만이다”고 협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심청구인은 할 수 없이 존재하지도 않은 조직 이름을 ‘민중교육회’라고 꾸며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한동안 조직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재심청구인은 1980년 당시 공주교대 동창들의 모임을 ‘민중교육청년협의회’로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이 명칭을 변용해 ‘민중교육회’라고 한 것입니다.
 
재심청구인은 결코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사실이 없습니다. ‘아람회’라는 말도 대공분실 지하실에서 수사관의 입을 통해 처음 들었습니다. 공소사실은 모두 지하실에 고문 조작된 것이며, 사실이 아닙니다.
 
고문수사관들은 1981년 8월 20일 피고인이 구속영장이 발부돼 대전경찰서 유치장으로 넘어온 뒤에는 9월 7일 검찰 송치시까지 충남도경 대공분실 지하실에서 고문을 통해 얻은 허위 진술서를 토대로 일람표와 도표를 그려놓고 그 내용을 반복하여 암기하도록 하고 그것을 수차례 녹음하여 그대로 진술할 수 있도록 계속 연습을 시켰습니다.
 
검찰 조서도 고문수사관들이 감시하는 가운데 조작
 
재심청구인은 1981년 9월 7일 밤 11시에 고문수사관들에 의해 검찰에 송치되었습니다. 이들 고문수사관이 검사실에 입회해 감시하는 가운데 밤을 새워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가 작성되었습니다. 검찰 조서 역시 대공분실 지하실에서 고문 조작된 내용대로 조작되었습니다.

수사관 김기생은 재심 법정에서 이와 관련해 “박해전이 검찰에 송치되던 날 정용식 검사실에 김성일 계장과 오두영 반장, 이병섭 순경과 함께 4명이 박해전을 검찰청에 데리고 갔다. 당시 조사가 밤늦게 시작하여 새벽 4~5시경 끝났는데, 조사하는 동안 저하고 수사관들은 검사실 한쪽에 앉아 있었다. ‘담배도 피우지 말라’고 해서 오랫동안 자리에 않아 있는 것도 곤욕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수사관들이 검사실에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 사건이 일어난 1981년경 무렵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든가 소매치기 등 부인할 가능성이 많은 사건은 검사실에 경찰관이 같이 있으면서 부인하게 되면 자백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검찰로 송치하는 도중에 고문수사관들은 재심청구인에게 “경찰에서 진술한 대로 검찰에서도 화끈하게 하라”, “다시 와서 병신되어 가지 말고 잘 얘기하라”고 협박했고, 검찰 조사 도중에도 재심청구인이 화장실에 갈 때 고문수사관들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검사는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재심청구인의 따귀를 치며 ‘아주 나쁜 놈’이라고 욕설을 했습니다. 재심청구인은 검사도 고문수사관들과 한통속이라고 생각했으며, 다시 지하실로 끌려간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한 공포 분위기에서 고문수사관들이 작성한 의견서대로 검사가 자문 자답하는 식으로 꾸며진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에 고문수사관들은 무조건 서명날인 할 것을 강요했으며, 재심청구인은 검찰 조서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대전교도소에 수감된 후 재심청구인은 1981년 9월 19일경 대전지방검찰청에 1회 나가 검사의 요구로 진술서 1통을 쓰게 되었을 때도 고문수사관 김기생이 임석하여 다른 사람의 진술서를 보여주며 4번이나 고쳐 쓰도록 강요하였습니다.
 
검찰측 증인의 법정진술도 각본대로 조작
 
5공은 검찰측 증인들도 법원의 영장 없이 불법 연행해 불법 구금했으며, 법정 증언 내용을 각본대로 일률적으로 조작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고문수사관들은 조작된 내용의 쪽지를 증인들에게 주어 그 내용대로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고 그것을 암기해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이 사건 검찰측 법정 증인이었던 최재열 박광규 김충호 등은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 “영장 없이 끌려가 여관에 여러 날 감금된 채 수사관들의 요구대로 허위 진술서를 작성했고, 그들이 법정에서 감시하는 가운데 조작된 진술서 내용을 암기해 법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또 “이 사건 피고인들이 당시 전두환을 비판한 민주인사들이었으며, 용공 언행을 하지 않았었다”고 진술했습니다.
 
1심 법정에서 진술한 검찰측 증인 대부분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경찰 진술서와 법정 증언이 고문수사관들의 강압에 의해 사실과 다르게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1심 법정에서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해 경찰과 검찰의 강압을 거부하고 공소사실을 부인한 남근우가 당한 고통을 보면 5공의 증인 조작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증인 남근우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경찰 진술서, 경찰 진술조서, ‘주임검사’라는 글자가 찍혀 있는 자술서는 당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사항을 경찰이 아람회사건 피해자인 박해전 정해숙의 진술서를 보여주며 “별것 아니니까 이대로 진술하라”고 협박해 경찰이 원하는 대로 작성된 것으로서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아람회사건 담당검사는 자신이 대전지법에서 검찰측 증인으로 진술하기 전에 자신을 불러 박해전 등을 빨갱이 취급을 하며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대로 법정 증언할 것을 위압적으로 요구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검사의 요구도 있었고, 당시 시대적 분위기 탓으로 공포감을 많이 느낀 상태였지만, 법정에서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사실대로 진술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증언을 하자,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담당검사는 그를 검사실로 따로 불러서 그에게 화를 내며 따귀를 때렸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당시 담당검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경찰관에게 ‘이 새끼 혼 좀 내라’고 명령해서 그는 유치장에 하룻밤인지 이틀인지 불법 구금되었고, 서울에서 그의 어머니가 내려와서 검사, 경찰들에게 빌어서 풀려났다”고 말했습니다.
 
아람의 백일잔치를 반국가단체 ‘아람회’로 조작
 
5공은 재심청구인들이 1981년 5월 17일 대전시 김난수 대위의 집에서 그의 딸 아람 백일잔치 때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 ‘아람회’를 결성한 것으로 고문 조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소 사실은 증인 강인수의 법정 진술로 허구임이 밝혀졌다.
 
그는 “백일잔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했는데, 이 자리에서 반국가단체 ‘아람회’ 결성은 없었으며, ‘아람회’라는 말은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을 때 그 수사관의 입에서 나와서 처음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반공도서 ‘김일성열전’을 용공조작의 도구로 사용
 
검찰의 공소장과 1심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이명영저 <김일성열전>을 탐독하고 북 김일성을 찬양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소장이 불온도서로 명시한 <김일성열전>은 실상 박정희 유신독재시대인 1974년 저자 이명영이 중앙일보사 이병철 회장과 홍진기 사장의 격려와 성원으로 출판한 대표적인 반공도서입니다.
 
성균관대 법정대 교수였던 저자 이명영은 <김일성열전>에서 “분명히 실재했던 일제시대 ‘항일무장투사’로서 ‘김일성장군’은 의병장 출신 김창희와 일본 육사 출신의 김광서 둘뿐이고 북한의 김일성은 가짜 김일성”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5공은 무지막지하게도 이런 반공서적을 아람회사건의 용공조작의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재심청구인은 5공 검찰의 아람회사건 공소사실이 대공분실 지하실의 고문조작을 그대로 옮겨놓은 허구임을 앞에서 밝혔습니다. 5공의 공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수사관 김성일과 김기생이 증언한 바와 같이 검찰은 이 사건 첩보 입수단계부터 경찰의 보고를 받았으며, 대공분실 지하실에서의 불법감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수사 지휘를 한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검찰 직원이었던 아람회사건 피해자 김현칠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술을 통해서도 이 사건을 기소한 검사가 대공분실 지하실의 불법감금 고문조작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재심청구인 김현칠은 2007년 2월16일 오후 2시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실에서 진행된 이 사건 담당검사와의 대질 확인 조사에서 “1981년 7월22일 불법 체포돼 대공분실 지하실로 끌려가기에 앞서 하루 전날인 7월21일 오후 대전지검 정용식 검사실에서 이 사건 피해자들과 관련한 정 검사의 신문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불법 수사를 지휘한 5공 검찰의 이 사건 기소는 도덕성과 정당성을 결여한 불법적인 것이며, 원인무효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5공의 사법부 또한 인권의 보루로서 자기 책임을 저버렸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피해자들이 공판에서 장기간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한 것이며, 결코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거나 북한을 찬양고무한 사실이 없다고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음에도 임의성 없는 자백에 의존하여 증거재판주의에 위반하여 유죄판결을 했습니다.
 
더욱이 서울고법은 반국가단체 구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의 판결을 파기하고, 환송받은 서울고법이 피해자들에게 최고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 등의 중형을 선고하도록 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사법부의 책무를 저버린 처사입니다. 결국 5공의 사법부는 정의와 진실을 외면한 판결을 다섯 번이나 되풀이하며 피해자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26일 오전 서초동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사법 60돌’ 행사 기념사에서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하여 죄송하다.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해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며 사법부의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이 대법원장은 또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새 출발을 하려면 먼저 과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용기와 자기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과거의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는 가장 원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재심절차를 거치는 것이며, 앞으로도 재심절차가 적법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은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그동안 검토해온 과거 군사독재정권시기 ‘굴절된 판결’들이 올바로 펴질 때 사법부의 신뢰가 회복될 것입니다.
 
아람회사건과 프랑스 드레퓌스 대위 간첩조작사건
 
드레퓌스 대위 간첩조작사건의 해결은 프랑스 과거사 청산의 본보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에밀 졸라를 비롯한 프랑스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죽음을 무릅쓴 용기와 진실을 밝히는 행동이 간첩으로 조작돼 고도에 갇혀 있던 드레퓌스 대위의 재심의 길을 열었습니다. 프랑스 지성인들은 결국 드레퓌스의 무죄를 이끌어냄으로써 20세기를 정의와 양심, 이성이 승리하는 사회로 나아갈 희망을 안겨줬습니다. 사건 발생 12년 만에 드레퓌스는 완전한 복권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람회사건의 김난수 대위는 5.18항쟁의 진실을 알리고 광주학살의 책임자 심판을 촉구하다 5공의 불의한 세력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고문 조작돼 고통을 겪어 왔습니다. 이제 아람회사건은 국민들의 민주화투쟁과 과거사 청산운동이 원동력이 되어 사건 발생 28년 만에 재심을 마치게 됩니다. 김난수 대위가 묶인 아람회사건 재심이 프랑스 드레퓌스 대위 사건 재심처럼 우리 사회의 과거사 청산의 본보기가 되고, 인권의 역사를 전진시키는 교두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그동안 고문의 후유증과 반국가단체 굴레를 쓰고 감내하기 힘든 길을 걸었습니다.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은 완전히 섬멸해야 할 주적의 딱지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고 이 사건 피해자들은 학연과 지연 등 모든 사회적 관계가 파괴된 채 극심한 심신의 장애를 겪으며 ‘무덤 없는 주검’으로 지내왔습니다.
 
피고인 이재권은 고문 후유증으로 병고에 시달리다 요절하고 말았으며, 재심청구인 가족 중에서도 이 사건의 충격으로 일찍이 별세한 사람이 여럿입니다.
 
재심청구인도 사회생활에서 소외된 채 만성적인 두통과 무기력증, 공포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려 왔습니다. 고문 조작 공포로 지금껏 일기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사죄 권고 이행해야
 
진실화해위원회는 아람회사건 진실규명 결정에서 “국가는 경찰 수사과정에서의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 임의성 없는 자백에 의존한 기소 및 유죄판결 등에 대하여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에게 총체적으로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습니다.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가담한 권력기관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사죄 권고와 피해자들의 고통을 해결할 적절한 조치를 하루빨리 이행하기 바랍니다.
 
끝으로 아람회사건 재심 재판부가 5공의 반인권적 국가범죄를 단죄하고 피해자들의 인권을 살리는 정의의 심판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우리 사회가 반인권적 과거사를 청산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국민주권시대로 전진하기를 희망합니다.
 
2009년 3월 31일
재심청구인 박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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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로 09/04/07 [19:42] 수정 삭제
  5월21일 오전 10시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
좋은 소식되길 바라면서
웬만하면 아람회사건 재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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