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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석의 <철학산책>
실증주의와 예술
[강대석 철학자의 철학산책] 실증주의철학 비판 35
기사입력: 2020/04/07 [01:3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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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실증주의와 예술

 

▲ 강대석 저서 <미학의 기초와 그 이론의 변천> 표지     © 사람일보

예술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역사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사회의 구성요소가 무엇인가 등을 파악하게 도와준다. 그것이 예술의 중요한 과제에 속하는 인식기능이다. 물론 논리적 귀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의 묘사를 통해서다.

현대 실증주의를 대표하는 분석철학자들은 예술적 명제들이 인식의 기능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예술적인 표현들은 사실적인 진술이 아니라 상상적인 묘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이념은 전체적으로 현실과 부딪치고 있으며 예술가는 현실로부터 예술의 진리기능을 도출해 낸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에 관한 역사적인 관점을 추구해 가는 기능을 포함한다. 올바른 예술은 항상 사회로 눈을 돌린다. 물론 모든 진술이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이 나무는 푸르다.”와 “이 나무는 아름답다.” 사이에는 구분이 나타난다. 전자는 사실판단에 속하고 후자는 가치판단에 속한다.

그러나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사이에 절대적인 구분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 현실 상태를 직접 진술하느냐 그 연관성을 진술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나무는 아름답다.”에서는 객관적 연관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

도덕과 예술의 개념이나 범주는 주관과 객관의 밀접한 상호연관성에 의해서 특징지워 진다. 주관적인 요소와 객관적인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가 절대화될 때 예술과 도덕의 인식기능이 왜곡된다. 객관적 가치를 절대적인 본질로 내세우는 경우 플라톤적인 관념론에 빠지고 주관적인 요소만을 절대시하는 경우 립스(Lipps)나 크로체(Croce)에서처럼 ‘감정이입설’이나 ‘직관주의’에 빠진다. 관념론적인 사고방식은 항상 이 가운데의 하나를 절대화시킨다.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방법 면에서 예술과 과학을 상반적으로 대치시킨다. 이러한 절대적 구분은 인식론상으로 옳지 못하다. 예술이나 과학은 다 같이 현실을 기반으로 하며 현실을 인식해 가는 기능을 갖는다. 현실을 벗어난 과학이 참된 학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현실을 벗어나 환상 속에서 맴도는 예술도 참된 예술이 아니다.

‘사실’과 ‘가치’를 절대적으로 대치시키려는 것은 관념론에서 나오는 오류가 아니면 사회적 모순을 은폐하거나 그곳으로부터 눈을 돌려버리려는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의도적인 사고방식이다. 과학의 ‘몰가치성’을 주장하는 베버(Weber)의 경우에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다. 가치문제를 언어문제로 환원시키려는 실증주의는 ‘사실’과 ‘가치’를 은밀하게 대립시키면서 가치문제를 회피하려 한다.

 

인식기능을 포기하는 예술은 낭만주의에서처럼 환상의 세계를 방황하거나 자연주의에서처럼 지엽적인 현상의 기술에 만족하거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처럼 지본주의사회의 광고를 도와주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실증주의와 연관되는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극단이나 왜곡으로부터 발생한다.

생활의 진실을 예술적으로 창조할 수 없는 자연주의 작가들은 생활의 현상에 매달려 생활의 본질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작품을 쓴다. 이들은 현실에 충실한다는 기치 아래 주어지는 현상들만 자세하게 묘사한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역동적인 삶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는 정적인 삶을 사진 찍듯이 묘사한다.

▲ 염상섭     © 사람일보

인간의 삶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모순과 갈등으로 이루어지며 변증법적인 발전을 통해서 이러한 모순이 해결되어 간다는 사실을 자연주의는 외면한다. 프랑스 작가 졸라의 초기소설이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에서 나타나는 자연주의적 경향은 작가의 허구를 반대하며 문학과 예술에서도 실험이나 해부의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 과학적인 창작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졸라는 “소설가는 상상으로써 쓰는 것이 아니라 실험으로써 가설을 실증해야 한다. 그러므로 소설은 과학이다.”라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자주적이고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이들은 인간사회를 자연계와 똑같이 간주하고 인간을 동물과 일치시킨다.

예컨대 자연주의적인 풍경화에는 아름다운 경치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것을 사랑하고 보존하려는 인민들의 애국적인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 자연주의적인 예술경향은 결국 염세주의, 허무주의, 퇴폐주의로 나아가며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어떤 항변도 못하고 이용될 뿐이다.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사람일보

국통일을 염원하는 강대석 유물론철학자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하여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독일사를 공부했고,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미학을 연구했다.


광주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독일어과 및 대구 효성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제헤겔학회 회원, 국제포이어바흐학회 창립회원이다.

 

주요 저서로는 『미학의 기초와 그 이론의 변천』(1984)을 비롯하여 『서양근세철학』(1985), 『그리스철학의 이해』(1987), 『현대철학의 이해』(1991), 『김남주 평전』(2004), 『왜 철학인가』(2011), 『왜 인간인가?』(2012), 『왜 유물론인가?』(2012), 『니체의 고독』(2014), 『무신론자를 위한 철학』(2015),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vs. 불꽃을 품은 철학자 포이어바흐』(2016), 『루소와 볼테르』(2017),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꿈꾼 유토피아』(2018), 『카뮈와 사르트르』(2019)  등이 있다. 역서로는 포이어바흐의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2006)와 『기독교의 본질』(2008),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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