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편집  2020.06.01 [22:04] 시작페이지로
강대석의 <철학산책>
개인정보취급방침
사람일보소개
광고/제휴 안내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HOME > 강대석의 <철학산책> >
HOME > 강대석의 <철학산책>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강대석의 <철학산책>
빈 학파
[강대석 철학자의 철학산책] 실증주의철학 비판 26
기사입력: 2020/03/06 [00:30] 최종편집: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26. 빈 학파

 

▲ 슐리크     © 사람일보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분석을 통해서 신실증주의에 영향을 미쳤다면 ‘빈 학파’(Der Wiener Kreis)는 논리분석을 통하여 영향을 미친다. 빈 학파의 창시자는 슐리크(Schlick, 1882-1936)였다. 그는 1922년에 마흐의 후계자로서 빈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의 주변에는 철학에 관심이 있는 자연과학자들, 특히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사람이 바이스만(Waismann), 노이라트(Neurath), 파이글(Feigl), 카우프만(Kaufmann), 카르납( Carnap) 등이었다. 한(Hahn)을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다른 수학자들도 이 학파의 이념형성에 기여하였다.

베를린에서는 라이헨바흐(Reichenbach)가 중심이 된 신실증주의자들이 빈 학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프라그에서는 카르납의 주도 아래 뒤늦게(1931년경) 신실증주의 연구가 활발해졌다. 영국의 철학자 에이어(Ayer)도 빈 학파에서 잠시 활동하였으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가 빈 학파의 이념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물질이나 정신은 존재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결합된 개별적인 ‘감각소여’만이 존재하여 현실을 구성한다는 러셀의 이념도 여기에 작용한다.

 

빈 학파의 실증주의자들은 수리논리의 체계적인 응용을 통해서 도달될 수 있는 ‘엄밀한 과학적’ 태도를 철학에서 요구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식과정을 논리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수학과 논리학이 현실에 관하여 어떤 진술도 하지 않는,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내용이 없는 학문이라고 주장하며, 수학과 논리학은 단순히 명제를 변형시키는 방법으로서 타당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구체적 현실을 논리, 사유, 의식 속으로 전이시킨다.

콩트와 같은 실증주의자들은 논리 자체가 후천적이며 관찰된 개별 사실의 보편화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한 반면 칸트는 논리가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선험적인 법칙을 표현한다고 주장하였다. 신실증주의자들은 논리법칙이 선험적이지만 아무런 진술도 할 수 없는 단순한 문법적 규칙이며 감각체험에 주어지는 것들을 더 용이하게 조작하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논리문제와 관련하여 신실증주의자들은 경험론과 합리론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며 그러나 모든 경우에 논리를 객관적 사물의 법칙으로 간주하는 유물론과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신실증주의자들은 수리논리의 영역을 벗어나는 모든 문제를 무의미한 ‘사이비문제’로 간주하고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명제들에만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견해는 철학과 개별과학 사이뿐만 아니라 경험과 현실 사이를 기계론적으로 분리시킨다.

 

신실증주의자들은 어떤 명제가 논리법칙과 일치하는가를 확인하는 ‘논리적 검증’, 경험과 일치하는가를 확인하는 ‘경험적 검증’을 내세우며 이 두 검증을 벗어나는 모든 명제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흄의 주관적 관념론을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몇 발자국 나아가지 못한다.

▲ 강대석 저서 <왜 유물론인가?> 표지     ©사람일보

왜냐하면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경험적인 것은 객관적 물질세계의 반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철학은 “이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답될 수 없다.”는 흄의 명제를 “이 문제는 의미가 없다.”는 명제로 뒤바꾼 것에 불과하다. 두 경우에는 모두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불가지론이 밑받침되어 있다. 예컨대 “이 장미는 하얗고 동시에 빨갛다.”는 명제와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원칙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는 명제가 나타날 때 신실증주의자들은 앞의 것은 논리적 규칙(논리적 검증)에 어긋나기 때문에, 뒤의 것은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무의미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두 명제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오류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한 장미가 동시에 하얗고 빨간색일 수 없으며 세계가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점차 증명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제의 의미와 무의미 대신에 그 진위를 과학적인 인식과 사회적 실천을 통하여 밝혀가는 것이 참된 과학적인 철학의 과제다. 이러한 과제를 신실증주의는 회피해 간다.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사람일보

국통일을 염원하는 강대석 유물론철학자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하여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독일사를 공부했고,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미학을 연구했다.


광주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독일어과 및 대구 효성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제헤겔학회 회원, 국제포이어바흐학회 창립회원이다.

 

주요 저서로는 『미학의 기초와 그 이론의 변천』(1984)을 비롯하여 『서양근세철학』(1985), 『그리스철학의 이해』(1987), 『현대철학의 이해』(1991), 『김남주 평전』(2004), 『왜 철학인가』(2011), 『왜 인간인가?』(2012), 『왜 유물론인가?』(2012), 『니체의 고독』(2014), 『무신론자를 위한 철학』(2015),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vs. 불꽃을 품은 철학자 포이어바흐』(2016), 『루소와 볼테르』(2017),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꿈꾼 유토피아』(2018), 『카뮈와 사르트르』(2019)  등이 있다. 역서로는 포이어바흐의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2006)와 『기독교의 본질』(2008),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11) 등이 있다.

강대석 강대석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사람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강대석 / 실증주의비판 / 슐리크 / 카르납] 빈 학파 강대석 2020/03/06/
연재소개 전체목록
관념론철학의 발생
신화와 철학
철학적 의미의 유물론
할머님과 어머님의 소박한 유물론
서양철학의 비판적 수용
과학철학
실증주의와 구조주의
실증주의와 현상학
실증주의와 종교
실증주의와 예술
실증주의와 도덕
진리의 문제
의미론
분석철학
포퍼의 한계
비판적 합리주의
물리주의
카르납의 ‘프로토콜 명제’
빈 학파
또 하나의 신비주의
오늘의사진
6.15 10.4 자주통일평화번영결의대회
많이 기사
  개인정보취급방침사람일보소개광고/제휴 안내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광고 대전 동구 동부로 55-58 603동 306호(판암동) ㅣ 전화 : (02)747-6150 ㅣ 전자우편:saram@saramilbo.com
등록번호 : 대전, 아00255 제호:사람일보ㅣ창간일: 2003년 6월 15일ㅣ발행·편집인 박해전ㅣ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해전
후원 : 하나은행 555-810120-77607 박해전
Copyright ⓒ 2003~2020 saramilbo.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 saram@saram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