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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석의 <철학산책>
또 하나의 신비주의
[강대석 철학자의 철학산책] 실증주의철학 비판 25
기사입력: 2020/03/03 [00:3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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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또 하나의 신비주의

 

▲ 비트겐슈타인     ©사람일보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 필연성이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한 신중한 해답을 회피한다. 그것을 신중하게 묻는 경우 결국 자연과 사회의 필연적인 법칙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가설은 사실에 기초할 때만 참된 이론이 된다. 사실로부터 법칙으로 나아가는 귀납적인 방법이 거부될 때 모든 노력이 관념론적이고 비과학적인 사변에 빠진다는 사실을 스콜라 철학이 잘 보여주었다.

사실과 현상에 얽매여 보편적인 원리로 나아가지 못할 때 스콜라철학 못지않은 오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실증주의가 잘 보여주고 있다. 사물과 거기서 나오는 법칙을 무서워하는 철학자들에게 남은 길은 불가지론과 신비주의뿐이다. 비트겐슈타인도 그것을 인정한다.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이다.” 객관적인 세계의 합리적인 근거가 부정될 때 필연적으로 비합리적인 신비가 등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의미론이나 언어철학에 미루어보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신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곤경에 빠진다. 비트겐슈타인도 삶의 의미라는 문제를 철저하게 배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사회적 실천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자연법칙이나 사회법칙을 부정하는 철학들이 삶의 문제에 관하여 대답해야 할 때는 항상 비합리적이고 신비적인 가정으로 도피한다.

 

비트겐슈타인은 후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논리·철학논고』속에 들어있는 합리적인 요소를 제거해 간다. 『논리·철학논고』에서 주장된 ‘논리적 의미에서의 객관적 필연성’이 거부된다. 그의 철학에 나타나는 ‘형이상학적 경향’이 그것을 말해 준다. 비트겐슈타인은 한편으로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잔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며,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인 논리학이나 수학에서 타당성을 얻는 수학적 진리의 객관성마저 거부하려 한다.

 

주관적 관념론자들도 논리적, 수학적 인식의 객관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연구』에서 전개한 언어이론은 주관주의적인 인식론에 국한되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단순하게 그 자체의 현상으로 파악한다. 인간이 어떻게 객관적 현실의 여러 현상과 과정을 파악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언어적 소통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다시 말하면 언어와 현실이 어떻게 인식론적으로 연관되는가를 비트겐슈타인은 문제 삼지 않는다.

『논리·철학 논고』에서 잠시 엿보인 언어의 반영설, 곧 언어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생각이 후기 저서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언어의 의미가 객관적 사실의 인식과정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유희(Sprachspiel)에 의해서 규정된다. 언어발생과 발전을 사회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려는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근원현상’(Urphänomene)이라는 신비적인 가설을 내세운다.

그는 ‘근원현상’에 대해서 과학적인 해명이나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중세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도 언어를 ‘언어유희’로 파악하였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연구』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많이 인용한다. 언어의 정화를 통한 철학의 혁신이라는 실증주의적 이념은 다소의 공적에도 불구하고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을 포기하는 언어지상주의로 나아간다.

▲ 강대석 저서 <현대철학의 이해>     ©사람일보

비트겐슈타인과 논리적 실증주의자들은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논리분석이나 언어분석에 만족한다. 자연과 사회의 객관적 법칙을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을 통하여 인류사회가 보다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도와주는 철학의 과제를 방기한다. 이들은 논리학과 언어학 분야에서 다소 공적을 쌓았지만 개별과학의 방법적인 근거나 세계관적인 기초를 제공하지 못한다.

언어철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인 “인간이 어떻게 정치사회적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그런 문제의 제기마저 회피하려 한다. 그런 문제는 이들이 간접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상유지에 이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도 20세기에 들어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소시민적 지식인들은 의식적으로 은폐하거나 체념하면서 받아들인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속에는 현상을 옹호하려는 요소와 체념의 요소가 공존한다.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사람일보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강대석 유물론철학자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하여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독일사를 공부했고,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미학을 연구했다.


광주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독일어과 및 대구 효성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제헤겔학회 회원, 국제포이어바흐학회 창립회원이다.

 

주요 저서로는 『미학의 기초와 그 이론의 변천』(1984)을 비롯하여 『서양근세철학』(1985), 『그리스철학의 이해』(1987), 『현대철학의 이해』(1991), 『김남주 평전』(2004), 『왜 철학인가』(2011), 『왜 인간인가?』(2012), 『왜 유물론인가?』(2012), 『니체의 고독』(2014), 『무신론자를 위한 철학』(2015),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vs. 불꽃을 품은 철학자 포이어바흐』(2016), 『루소와 볼테르』(2017),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꿈꾼 유토피아』(2018), 『카뮈와 사르트르』(2019)  등이 있다. 역서로는 포이어바흐의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2006)와 『기독교의 본질』(2008),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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