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편집  2020.06.01 [22:04] 시작페이지로
강대석의 <철학산책>
개인정보취급방침
사람일보소개
광고/제휴 안내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HOME > 강대석의 <철학산책> >
HOME > 강대석의 <철학산책>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강대석의 <철학산책>
비트겐슈타인의 주관적 관념론
[강대석 철학자의 철학산책] 실증주의철학 비판 24
기사입력: 2020/02/28 [00:30] 최종편집: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24. 비트겐슈타인의 주관적 관념론

 

▲ 비트겐슈타인     © 사람일보

비트겐슈타인은 “참된 사유의 총화가 세계상이다.” 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는 사물의 총화가 아니라 사실(Tatsache)의 총화라는 것이다. ‘사물의 총화’를 전제로 하는 것은 유물론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은 ‘사물’ 대신 ‘사실’, 곧 대상간의 관계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러셀이 지적한 것처럼 ‘사실’의 엄밀한 규정은 용이하지가 않다. 비트겐슈타인은 현실적인 ‘사실’(Tatsache)과 가능적인 ‘사태(Verhältnis)’를 구분한다. ‘사태’는 대상의 결합 속에서 나타나는 ‘사실’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대상’을 어떤 결합되지 않는 실체로 이해한다. 실체를 가정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은 자기도 모르게 전통적인 존재론으로 나아간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 고찰방식과 존재론적 고찰방식을 뒤섞고 있다. 실체는 논리적 조작에 앞서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논리적 주체는 사물이나 실체를 하나의 명제 속에서 언급하며 그러므로 실체는 아직 결합되지 않는 상태로 있다는 점에서 유물론의 실체와 구분된다.

 

비트겐슈타인에서 논리적 고찰방식과 존재론적 고찰방식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이 그의 『일기』(1914-1916)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서 그는 하나의 진술이 세계의 논리적 구조를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진술이 가능하고 하나의 명제가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세계가 이미 논리적 구조를 가져야 되기 때문이다. 세계의 논리가 명제의 진위에 우선한다. 이러한 주장은 플라톤적인 관념론에 가깝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통한 사물의 논리적 반영이 진리관계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것은 한 명제의 진·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명제 속에 현실과 일치하는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매우 정당한 주장이다. 후기 저서들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다시 언어주의에 접근하면서 언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사태를 가정하는 것은 관념론적인 가상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자체가 먼저 존재하고 그것이 언어를 통해서 옳게 혹은 그르게 진술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세계가 진술된다고 주장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은 다시 주관적 관념론으로 빠져든다. 언어가 객관적 사실을 반영한다는 주장이 더 관념론적인가 아니면 사실이 언어에 의해서 구성된다는 주장이 더 관념론적인가?

 

언어와 현실의 관계를 해명하려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은 다소 합리적인 면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관념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주관과 객관(대상)의 관계 대신에 주관과 주관적인 대상과의 관계가 들어선다. 이러한 오류는 인식과정의 사회적, 역사적 측면이 고려되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물론 인간은 세계를 전체로서 직접 파악할 수 없다. 개념, 언어, 추상화, 법칙 등을 통한 인식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가 구체성과 추상성, 개별성과 보편성, 현상과 본질 사이의 상호연관성이다. 구체적인 사실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법칙을 통해서 세계인식이 가능해지고 우리는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 강대석 저서 <왜 유물론인가?> 표지     ©사람일보

철학적인 진술이나 진리는 항상 세계관의 문제와 결부된다. 다시 말하면 철학은 세계에 관한 보편적인 원리를 추구하고 진술한다. 분석철학자들은 왜 세계관의 문제를 기피하는가? 세계관적인 명제는 필연적으로 유물론과 관념론의 문제를 야기하며 그것은 다시 자연과 인간사회에 관한 보편적인 법칙의 탐구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신실증주의자들은 철학을 언어분석에 국한시키고 인과법칙을 거부하면서 인류의 위대한 철학전통을 파괴하려 한다. 그 결과는 영국의 경험론에서처럼 회의주의와 불가지론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태양이 내일 다시 떠오른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이 다시 떠오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른 어떤 것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발생해야 되는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논리적 필연성이 존재할 뿐이다. 모든 현대적 세계관에는 자연법칙이 자연현상을 설명해 준다는 환상이 깃들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은 버클리나 흄의 주장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 강대석 유물론철학자     ©사람일보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강대석 유물론철학자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하여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독일사를 공부했고,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철학, 독문학, 미학을 연구했다.


광주 조선대학교 사범대학 독일어과 및 대구 효성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제헤겔학회 회원, 국제포이어바흐학회 창립회원이다.

 

주요 저서로는 『미학의 기초와 그 이론의 변천』(1984)을 비롯하여 『서양근세철학』(1985), 『그리스철학의 이해』(1987), 『현대철학의 이해』(1991), 『김남주 평전』(2004), 『왜 철학인가』(2011), 『왜 인간인가?』(2012), 『왜 유물론인가?』(2012), 『니체의 고독』(2014), 『무신론자를 위한 철학』(2015),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vs. 불꽃을 품은 철학자 포이어바흐』(2016), 『루소와 볼테르』(2017),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꿈꾼 유토피아』(2018), 『카뮈와 사르트르』(2019)  등이 있다. 역서로는 포이어바흐의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2006)와 『기독교의 본질』(2008),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11) 등이 있다.

강대석 강대석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사람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강대석 / 실증주의비판 / 비트겐슈타인 / 버클리 / 신실증주의] 비트겐슈타인의 주관적 관념론 강대석 2020/02/28/
연재소개 전체목록
관념론철학의 발생
신화와 철학
철학적 의미의 유물론
할머님과 어머님의 소박한 유물론
서양철학의 비판적 수용
과학철학
실증주의와 구조주의
실증주의와 현상학
실증주의와 종교
실증주의와 예술
실증주의와 도덕
진리의 문제
의미론
분석철학
포퍼의 한계
비판적 합리주의
물리주의
카르납의 ‘프로토콜 명제’
빈 학파
또 하나의 신비주의
오늘의사진
6.15 10.4 자주통일평화번영결의대회
많이 기사
  개인정보취급방침사람일보소개광고/제휴 안내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광고 대전 동구 동부로 55-58 603동 306호(판암동) ㅣ 전화 : (02)747-6150 ㅣ 전자우편:saram@saramilbo.com
등록번호 : 대전, 아00255 제호:사람일보ㅣ창간일: 2003년 6월 15일ㅣ발행·편집인 박해전ㅣ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해전
후원 : 하나은행 555-810120-77607 박해전
Copyright ⓒ 2003~2020 saramilbo.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 saram@saram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