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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률 <두만강 따라 천릿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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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률 <두만강 따라 천릿길>
항일독립운동의 성지, 연두봉
[장경률의 두만강 따라 천릿길(15)] 개산툰편(2)
기사입력: 2013/03/10 [15:0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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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산툰 지역에서 가장 높은 연두봉, 그젯날 항일투사들이 주름잡던 산봉이 그 어엿한 자태를 한껏 과시하고 있다.     © 김승산 기자

천리두만강의 중류지역 하넓은 천평벌을 동으로 바라보며 펑퍼짐한 소재덕이 고즈넉히 틀고 앉았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40리 채수골의 막차기에는 하늘을 떠이고 소소리 높이 치솟아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연두봉이 한 눈에 안겨온다. 그 산봉우리를 따라 북켠으로 저 멀리 두만강기슭까지 남강산맥의 하단이지만 형제봉이 개산툰지역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천혜의 곡창 천평벌이 펼쳐진다. 소재덕을 뒤로하고 골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이 바로 자동촌이다.
 
자동의 유래

자동은 19세기말부터 우리 민족이 두만강을 건너와서 제일 먼저 발을 붙이고 개척한 고장의 하나이다. 청나라 광서초년에 여기는 원래 조선의 북방 6진의 하나인 회령과 이웃한 부령사람들이 많이 정착하였다고 하여 부녕촌으로 불렸으나 후에 다시 자동으로 개칭되였다. 또 하나는 당시 이곳 동네에서는 아들만 많이 낳고 딸은 적게 낳는다고 하여 자동(子洞), 아들만 낳는 마을이라고 불리면서 촌명으로 되였다는 설도 있다.

자동에서 북으로 5리쯤 떨어진 곳에는 《제동(弟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때 젊은이들이 장가를 들면 우리 민족의 전통적 풍속에 의하여 차자들은 세간을 나게 하였는데 자동에서 가까운 곳에 많이 살았다. 그래서 형수가 시동생네 집에 자주 다니게 되면서 《애끼골에 다녀 옴메!》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애끼골》이 지명으로 되였고 지방관청에서 지명을 등록할 때 한어로 번역되여 자동(子洞)과 제동(弟洞)으로 적히게 되였다고 한다.
 
정동학교, 가장 일찍 설립된 현대 학교

《여기가 그젯날 정동학교가 설립되였던 자리입니다.》자동 6촌민소조에 사는 김승철 농민이 우리들을 자동6대 남쪽마을 펑퍼짐한 산언덕 밑에 있는 옛집터를 가리키면서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 민족은 자고로 헐벗고 굶주려도 자식교육만은 절대 등한시하지 않았다. 자동에 정착한 우리의 선조들은 아름드리나무를 베여 황무지를 개간하고 비탈밭을 일구고 근근득식하면서도 우선 서당을 꾸려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1908년 10월 28일 개운사 자동툰 후저동, 오늘의 자동6촌민 소조에 터를 잡고 강백규, 강의헌, 유한풍 등 유지인사들이 연변지역에서 가장 빠른 배움터의 하나인《정동서숙》을 설립하였다. 당시 학생은 20여명. 1913년 3월 정동서숙은 사립정동학교로 발전하고 교원은 5명, 학생은 80여명으로 늘어났다. 조선어, 한어, 체육, 음악 등 학과를 설치하고 현대식 교육을 진행하였다. 1914년에는 녀학부를 설치하고 1918년에는 중학부를 설치하였다.

당시 연변지역에는 개산툰의 정동학교, 지신의 명동학교, 덕신 장골의 창동학교 등 우리 민족의 학교들이 우수죽순마냥 일떠섰는데 이런 학교들에서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교재를 쓰기는 하였지만 수신, 국어, 조선력사, 조선지리, 등 교재는 조기 공산주의자 리동휘 선생이 애국적 조선인 계봉우(桂奉禹) 등 지식인들을 조직하여 편찬한 애국애족정신이 고양된 자체교재를 주로 활용하였다.

이제 <<고등소학독본>>의 제2과 <<고향>>의 한 단락을 적어 본다.

<<오인(吾人)의 고향은 원쑤의 수라장이 되여 오인의 자유행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대한을 건설할 활동지는 외국이 아니고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조국광복의 대지(大志)를 품은 소년남아들은 고향에 대한 각자의 정을 버리고 해외에 나와 확실한 목적과 강고한 수단으로 오척의 단구를 조국광복의 희생으로 바쳐야 한다. 유골이 어찌 무덤 속에만 묻힐 소냐. 남아에겐 어디에나 청산이 있도다.>>
 
시인 박창익(朴昌溢)선생이 선생의 시 <<자유를 찾아서>>를 적어 본다.
 
나는 자유를 찾아서
두만강을 건넜다.
강가에서 조약돌을 뒤집어 봐도
돌마다에는 자유가 없었다.
나는 걷고 또 걸어서
호천포(자동촌의 산너머 마을) 들어가면서
길가에 있는 우물을 자꾸자꾸 들여다봐도
자유는 없었다.


나는 또 문암골(앞에서 언급한 그 석문촌)을 지나면서
좌우 산 옆을 살펴봐도
자유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 발붙인 이곳에서
자유를 찾으리라고 속다짐 하였노라.
 
정동학교에서는 이처럼 반일교육과 애국애족교양을 철저히 하였기에 혁명투쟁정신이 특히 강하였다. 얼마 후 1919년 3월 룡정에서 성세호대한 “3.13” 반일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에서 정동학교의 교원과 학생들은 주력이 되여 이 대중적 반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따라서 자동일대는 개산툰지역 반일운동의 요람으로 되었다.

정동학교는 상기투쟁을 계기로 일본제국주의의 눈에 든 가시로 되였다. 그리하여 1920년 10월에 일본놈들이 감행한 《경신년대토벌》에서 정동학교도 액운을 면치 못하고 항일지사들을 학교 교실에 처넣고 불태우는 참상을 당하였다. 결국 잿더미로 된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자녀교육만은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겨레들은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자금을 모으고 물자를 모아 정동학교를 다시 일떠세웠다. 1932년 연변지역에서 혁명세력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자동은 역시 혁명근거지로 되였다. 이에 음력 5월 일제놈들이 다시 쳐 들어와 혁명자들을 살해하고 집을 불사르는 3광정책을 실시, 정동학교는 또다시 불타버리는 참상을 겪었다. 1945년 10월 28일 일제의 패망 후 얼마 되지 않아 일제의 탄압에 페교되였던 정동학교가 창립 37돐이 되는 뜻깊은 날에 개산툰 남산덕에 정동중학교로 다시 일떠섰다. 그후 천평벌의 광소촌으로 다시 이사하였다. 헌데 새로운 시기에 진입하면서 조선족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더불어 조선족 학생 래원이 끊기는 바람에 1990년대초 정동학교는 아쉽게도 페교되고 말았다. 오늘날  유지인사들에 의하여 정동학교를 복구하는 사업이 재개되고 있다고 하는데 기필코 훌륭한 결실이 맺어지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명인 많은 복 받은 고장

《저의 증조부 김우상, 조부 김차률은 19세기말 조선반도에서 의사로 활약하면서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신 분들이다. 부친 김창수는 1900년경 두만강을 건너 개산툰 자동(원 개산툰화학섬유팔프공장이 들어 앉은 곳)에 정착한 후 조상들의 위업을 이어받아 한평생 환자 치료에 전념하신 중의이다. 형님 김원과 저도 조상들의 유지에 따라 조선민족 의학사업에 한생을 헌신하고 있다.》김권현선생의 말이다. 그는 개산툰진 병원 원장, 연변조의병원 부원장으로 사업하다가 정년퇴직한 후 지금 연길시 철남중의전문병원 원장으로 사업하는 지성인이다. 이들은 고상한 의덕을 견지하고 화자치료에 일심하면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며 의술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평생의 기본취지로 삼고 있는 바 명실상부한 《중의세가》로 자동의 전형적 대표라 할 수 있다. 김권현 원장의 동생 김정해는 현재 연변인대상무위원회 부주임으로 2기째 활약하고 있는 사회정치 활동가이다.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민족시인이며 저항시인인 윤동주의 조상들인 파평 윤씨 가문도 1886년에 조선의 종성으로부터 두만강을 건너와서 처음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자동이다. 그네들은 여기서 10여년을 살다가 1900년에 파평윤씨 가문의 일가 18명이 자동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가지고 달라자의 명동에 이주한 것이다.
 
《현춘월이 ‘연변민간가수칭호’를 받았다.》 당시 무릇 이 소식을 접한 자동 사람들은 하나같이 흥분되였다. 자동이 낳은 민간 연예인의 탄생인 것이다. 자동은 문인, 연예인들의 요람이기도 하다. 얼마 전 《연변민간가수》칭호를 수여받은 현춘월은 비교적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춘월은 1964년부터 당시 연변가무단에서 독창가수로 활약하다가 최근에는 정년퇴직한 후 지금도 연변불로송예술단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강장룡, 강순옥은 그젯날 정동학교 창시인들의 후예로서 올해 70세를 넘은 로인들이다. 하지만 오늘도 자동에서 시가창작을 하면서 그 터전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자동에서는 강위룡, 박윤서 등 저명한 항일투사, 직업혁명가들이 적지 않게 배출하였다. 강위룡은 김일성 장군의 경위패장으로 있으면서 경기관총을 휘두르며 김일성 장군을 호위하여 200리 포위망을 뚫었다는 데서 유명한 항일명장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저 푸르른 창공을 찌르고 치솟은 연두봉 줄기를 따라 흘러내려온 채수골막치기에는 그젯날 항일유격대들의 동굴이 지금도 력사의 견증물로 남아 있다. 지난 세기 20년대 여기는 혁명근거지였던 것이다. 정동학교를 졸업한 박인은 조직의 파견을 받고 광주에 가서 북벌전쟁과 광주봉기, 남창봉기에 참가하였다. 1926년 정동중학교를 졸업한 박의정은 한영섭, 김영식, 등과 함께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광주봉기와 남창봉기에 참가하였다. 장개석이 정변을 일으킨 후 이들은 자동에 돌아와 혁명활동을 견지하였다. 후에 이들은 소련에 망명하여 독소전쟁에서 영용하게 전사하였다.

1930년 중공만주성위 특파원 박윤서(조선족)는 광주봉기에 참가하고 돌아 온 장자관 등을 중국공산당에 입당시킨 후 자동촌에서 연변지역에서 가장 일찍한 중공당조직을 건립하였다. 이들은 연변지역에서 첫 무장단체 무장유격대를 조직하여 조개선철도를 파괴하고 악질한간을 척결하였던 것이다. 해당 부문에 따르면 이는 연변에서 제일 처음 조직된 무장항일유격조직이였던 것이다.
 
▲ 연두봉에 올라서면 두만강이 저 멀리에 바라보이는데 만리에 얼음 덮히는 엄동에는 그 모습이 더욱 뚜렷하다.     © 김승산 기자
▲ 개산툰 지역의 두만강변에는 겨울이면 이처럼 아름다운 설경과 빙하폭포를 흔히 감상할 수 있다.     © 김승산 기자

 
<연길 = 글 : 장경률/ 사진 : 김승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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