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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률 <두만강 따라 천릿길>
대소, 시루봉이 옹위하는 대우동골
[장경률의 두만강 따라 천릿길(13)] 서울서 가져 온 사과나무 대소서 뿌리내려
기사입력: 2013/01/19 [08:3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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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면 과농들이 사과나무에 화분접종을 하여 사과생산량을 늘이고 있다.     © 김승산 기자

웅위로운 백두성산 한 자락이 동북쪽으로 천리두만강을 따라 굽이굽이 뻗어 흘러 내려 오면서 형성된 그 산줄기가  바로 남강산맥. 이 산맥이 백금에 이르러  200리로 끝나는가 싶었다. 성칼지고 숭엄한 남강산줄기가 백금을 지나면서 갑자기 로쇠하여 진듯이 산발이 늬연하고 봉우리들이 둥그스럼한 것이 구릉지를 방불케 한다.

백금에서 대소까지는 50리, 두만강을 따라 시루봉을 에돌아서면 곧바로 대소에 이른다.
 
흥미로운 지명취담

대소는 동편에도 시루봉, 서편에도 시루봉. 시루처럼 생긴 두 개의 산봉우리가 5리를 상거해 마주섰다. 이런 지역으로 활시위같이 두만강이 곧추 흘러흐르는데 대소골안은 활등같이 휘여져 들어갔다.

대소도 우리 민족이 첫 발자욱을 남기면서부터 연변지역에서 가장 일찍 개척된 고장의 하나이다. <<연변지명지>>에 의하면 대소라는 그 이름 자체가 기이하다. 원래 이 지역은 전문적으로 소를 방목하는 골안, 그래서 소골이라고 불리웠다. 일찍 지난 19세기 중엽 후반부 때부터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이 가만히 월강하여 농사도 하고 소도 방목하면서 화전농사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큰 골안을 <<큰 소골>>, 작은 골안을 <<작은 소골>>이라고 부르면서 점차 지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후 우리 민족이 정착하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지방관청이 들어서게 되였는데 호구와 지명을 등록할 때 조선말의 뜻에 따라 <<큰 소골>>은 <<대우동(大牛洞)>>, 작은 소골은 <<소우동(小牛洞)>>으로 기록되였다. 그렇던 대우동, 소우동이 하나로 합치면서 대우동에서 큰 대(大)자를 따오고 소 우(牛)자 대신에 소라는 뜻에서 소자를 붙이고 동(洞)자는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원래의 뜻과 의미와는 상관이 없는 대소로 된 것이다. 두만강연안에는 이처럼 원래의 뜻과 의미와 상관없는 지명과 산명이 수두룩하다.

동서 량편에 갈라서서 두 형제와 같이 대소를 지키고 있는 시루봉도 최초의 시루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시루봉과는 상관없이 한어로 그 음을 따서 시리봉(西立峰)으로 표기하였는데 그 뜻에 대한 음미도 없이 멋도 모르고 직접 음역하여 서립봉이라고 불러서 완전히 와전되였다. 웃시루봉은 서쪽에 위치하였으니 그런대로 서립봉(西立峰)이라고 하여도 괜찮지만 동쪽에 위치한 시루봉도 서립봉(西立峰)이라고 하니 틀려도 한참이나 틀린 오역이 아닐 수 없다.
 
연변의 강남, 사과의 고향

대소는 마을 앞에 두만강이 흐르고 삼면은 산으로 둘러싸여서 잠풍하고 일조가 좋아 옥황상제가 하사한 천연적인 과일산지이다.

오늘날 <<연변의 강남>>, <<사과의 고향>>으로 국내외에서 그 명성이 높지만 이 고장을 놓고 말하면 50년 전에는 아주 가난한 산간마을이 였다. 그때 대소촌에는 전기도 없어 밤이면 집집마다 초롱불로 어둠을 밝혔고 사람들이 외지로 볼일 떠나자면 삼합까지 70리 오솔길을 걸어 다녀야 했다. 이렇게 외진 마을에 사과 농장이 세워진 데는 남모르는 깊은 사연이 있다.

때는 1962년 겨울, 우리나라에서는 3년 자연재해와 국제적으로 구쏘련의 경제 봉쇄로 말미암아 경제상에서 매우 곤란한 시기였다. 특히 계획경제시대이다보니 연변 인민들이 사과 한 알 먹어보자 하여도 당지에서 사과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구경조차하기 힘들었다.

이때 중국조선족의 걸출한 지도자 주덕해가 (그때 자치주 당위서기이며 주장이였음) 당시의 연길현 명동향 대소대대에 개인이 경영하는 과원에 사과나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삼합공사에서부터 70리 산길을 걸어서 대소에 오게 되였다. 그때 그 사과나무는 손영송이라고 하는 개인집에서 경영하였는데 그 사과나무는 해방 전에 성이 허가라는 지주가 조선 서울에서 올 때 국광 품종이라는 사과묘목을 가져다 심은 것이였다. 그 당시 손영송이네 가정에서는 1962년 그 해 가을에 사과를 수확한 것을 감자움에 저장 하였는데 주덕해는 대소대대 간부들과 같이 그 사과를 친히 맛 보면서 이 고장에 사과농장을 건설할 청사진을 구상하였던 것이다.
  
주덕해는 그 즉시 연길로 돌아와 주당위 상무위원회를 소집하고 연길현 대소대대에 사과농장을 세울 것을 토론, 결정한 후 그 과업을 당시 연길현당위에 시달하여 집행하게 하였다.
 
▲ 해마다 5월초면 대소의 산과 들은 온통 꽃바다에 잠겨 무릉도원을 방불케 한다.     © 김승산 기자

▲ 과농들이 달콤하고 시원한 사과를 열심히 수확하여 포장하고 있다.     © 김승산 기자


<연길 = 글 : 장경률/ 사진 : 김승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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