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편집  2017.11.19 [06:09] 시작페이지로
장경률 <두만강 따라 천릿길>
개인정보취급방침
사람일보소개
광고/제휴 안내
기사제보
HOME > 장경률 <두만강 따라 천릿길> >
HOME > 장경률 <두만강 따라 천릿길>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장경률 <두만강 따라 천릿길>
일엽편주에 민족의 애환을 싣고
[장경률의 두만강 따라 천릿길(9)] 새하얀 모래의 고향 백금
기사입력: 2012/10/29 [12:42] 최종편집: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험난하고 가파른 골짜기를 헤쳐서 굽이굽이 산굽이를 에돌아 두만강변에 이르니 백금부락이 나타난다.    ©김승산 기자

“산이 첩첩, 물이 첩첩, 길이 없는가 하였더니 버드나무 우거진 곳에 또 한 마을 나타났네.” 중국고대 동진시대의 저명한 시인 도연명의 명시이다. 이 명시는 재래로 인간선경 같은 무릉도원을 비유할 때면 즐겨 인용되었다.
 
험준한 산발을 타고 험악한 준령을 넘고 굽이굽이 높게 길게 뻗은 협곡을 지나면서 인가가 없겠거니 하는데 뜻밖에 아담한 동네가 신선동처럼 나타나는 곳이 있다. 바로 백금이다.
 
천리 두만강이 백두봉에서 흰머리를 풀어헤치고 천혜의 가파른 협곡, 소소리 높이 솟은 천년림, 수많은 여울을 에돌면서 남평 그리고 용화를 지나 백금에 이른다. 여기부터는 두만강 중류, 이 구간은 도합 480리에 달한다. 이 고장의 명칭 유래는 다름 아닌 수천수만년간 맑디맑은 두만강에 씻기며 세례를 받아 우리 민족의 혼을 받은 것 마냥 새하얀 모래로 이루어진 고장이라 하여 백금(白金)으로 불리게 됐다.
 
백금은 룡정시 소재지로부터 35킬로미터 상거한 남부에 위치하였다. 향 소재지는 합박동에 터를 잡았는데 이 고장의 지형 역시 우리 민족이 화식칸에서 즐겨 쓰는 함지박, 나무로 만든 대야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백금에는 남양동, 곽장동, 룡암동, 안가동 등 우리 민족이 동네이름을 지을 때 즐겨 쓰는 동(洞)자가 많다. 그리고 백금, 함박동처럼 이웃 간에 화목하게 산다고 안화촌, 해마다 새로운 풍수를 거둔다고 신풍촌, 산곡간으로 시냇물이 일년 사시절 쉼 없이 흘러내린다고 산계촌, 제방뚝을 보호하는 나무들이 우거졌다고 하여 버들방천에서 이름을 딴 상방천, 하방천… 이처럼 모두 제 나름대로 뜻이 있고 의미가 심장한 것이다.
 
역사기재에 따르면 백금은 광서년간부터 인가가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당시 청나라 초기라 누르하치는 이 고장도 자기들이 일떠선 성스러운 고장이라는 데서 봉산하고서 주로 말을 기르는 목장을 하였다. 그러다가 19세기말 조선에서 화전민들이 드나들면서 백금, 산계 두개 사가 설립되어 안원보에 귀속되었다. 1909년에 화룡현 용화사에 귀속되고 1937년에 화룡현 용화촌의 한개 부락으로 되였는데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연길현 용신구로 옮겨 앉았다.
 
예가 바로 하늘 아래 첫 동네

백금에는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평정촌이 있다. 백금향 경내에 뿌리를 내린 해발고가 1024미터 되는 평정산을 의탁하고 해발  880미터 되는 곳에 사는 동네라는 데서 붙여진 별칭이다. 헌데 누가 이처럼 해발고가 높은 데 사방 40여리에 달하는 거대한 벌판이 펼쳐졌다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 해발고가 1000미터 넘는 평정산 산정에 사방 40리에 달하는 벌판이 펼쳐져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린다.     © 김승산 기자
우리 두만강답사팀 일행이 백금에 도착하니 백금향 당위 유동근 서기가 친히 맞아 주고 현황소개를 하였다. 그는 이어 향 간부 조명파를 파견하여 우리를 안내해 평정촌을 향했다. 평정산과 그 주위는 개발이 시작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백여년이 된다. 하지만 산정에 올라가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몇 갈래로 된 타이어 자국이 움푹하게 꺼져 내려갔고 거기에는 물까지 가득 고여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서도 평형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또 튕겨 오르는 흙탕물 때문에 차창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다행이나마 백금과 평정을 여러 번 오갔던 조명파의 숙련된 운전기술로 차는 20여분간 몸부림치며 달려서야 드디어 평정촌에 도달했다. 소개에 따르면 작년부터 백금에서 평정까지 통하는 길을 시멘트 길로 새로 닦느라고 대형트럭이 오가면서 땅이 많이 눌려졌다고 한다. 이미 시공에 들어간 시멘트 길은 오래지 않아 완공될 듯싶다. 완공되면 너비 4.5미터 도합 12리에 달하는 이 시멘트 길은 촌민들의 출행에 편리를 갖다줄 것이다.
 
덜컹거리던 차에서 내렸다. 일망무제한 벌판, 푸르른 하늘, 두둥실 떠있는 구름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들푸른 수목들이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려 놓은 듯했다. 가슴이 한순간에 확 틔였다.
 
평정촌은 해발고가 높아 얼음이 일찍 어는 관계로 경작면적이 814헥타르에 달하는 한전밭에 주로 보리, 옥수수, 콩 등 일반 농작물을 심었다. 재배업과 사육업은 촌민들의 주요 경제원천이다. 그들은 주로 옥수수, 콩, 호박을 재배하고 있고 그중에서 호박은 대규모 재배를 하고 있는 바 해마다 재배면적이 300헥타르에 달한다. 또한 사육업에서 연변소를 사양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600마리에 달했고 올해는 1100마리에 달할 듯싶다.

지난 세기 40년대부터 평정은 전염병이 나돌아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로 치부되어 기본 외지로 이사를 갔다. 지방병에 걸리는 사람 중 여성이 점하는 비율이 높다고 해서 “안해가 미우면 평정에 가 살아라”는 말도 떠돌았다. 몇 백호에 달하던 촌민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했고 당시 심한 증세를 보인 촌민은 대부분 사망했다. 후에 정부에서 음료수 개조공정을 벌려 문제를 해결하면서 다시 인가가 살기 시작한 것이다.
 
두만강도 한 입에 삼키는 룡바위

백금지역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명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룡바위와 그 바위에 엉킨 전설이다. 백금향 소재지에서 두만강을 따라 10리가량 내려가다 보면 거세차게 흐르는 두만강도 한 입에 집집 삼킬 듯 입을 쩍 벌리고 물 우에 불쑥 솟아나온 바위가 있다. 룡바위이다.

그젯날부터 전해 내려온 데 의하면 먼 옛날 두 형제가 백두산에서 홍송을 채벌하여 떼를 무어 가지고 두만강을 내려 왔단다. 그 뗏목이 굽이굽이 300굽이를 에돌고 험난한 물곬도 헤가르면서 합박골(백금)을 방금 지났는데 불시에 젖빛 안개가 한치 앞도 보일 수 없게 앞길을 막았다. 바로 대가리가 아홉 개 달린 룡왕인 것이다. 두 형제는 말로만 빌지 룡왕은 대노하여 비줄기를 확 뿜어 떼를 산산쪼각으로 흩어 놓았다. 오도가도 못한 형제는 자기다리를 찍어서 제물로 바치려 하였는데 형은 자기가 이상이니 자기 다리를 찍어야 한다고 하고 동생은 형님이 부모님들을 모시고 있으니 자기 다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서로 우겼다. 힘이 센 동생이 형님의 손에서 도끼를 뺏어 쥐고 자기 다리를 찍으려는 순간 먹장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찬연한데 칠색무지개가 비꼇다. 옥황상제가 노하여 룡왕의 목덜미를 잡아 강기슭에 태를 쳤던 것이다. 룡왕은 그 자리에서 룡바위로 굳어졌는데 바위에 뚫린 큰 구멍은 룡왕의 눈알이고 강복판에 솟은 바위는 입을 벌린 룡왕의 위턱이란다.

일엽편주에 애환을 싣고서 온 가정을 살리고자 목숨도 마다하는 뗏목꾼들의 마음이 가상하다. 이에 감동받은 옥황상제는 칠선녀를 내려 보내 산지사방에 흩어진 홍송으로 다시 떼를 묶어 주었는데 두 동생은 그 덕분에 무사히 귀가하여 부락민들에게 덕을 베풀면서 잘 살았다고 한다.

천리 두만강 굽이굽이 구백구십 굽이, 그 굽이를 에돌면서 삐져나온 들쑹날쑹한 벼락바위에서 고패치는 여울은 또 얼마던가. 저 멀리 흰구름을 떠이고 하늘을 치받은 백두산 산상봉에서 채벌한 아름드리 목재를 고성리에서 남평, 여기 함박골을 지나서 조선의 회령, 중국의 개산툰으로 유벌하였는데 그 400백리 구간에 물굽이가 240개라고 한다. 이 구간에 세찬 물결이 안고 돈다는 물개굽이, 물이 두 번이나 바위굽에 터졌다는 부엉이굽이, 물이 갈지자로 에돌아간다는 냉굽이, … 그 중에서도 가장 험한 곳, 가장 무서운 곳이 바로 여기 강 한복판에 웅크리고 앉아 뗏목을 당금 집어 삼킬 듯한  룡바위라고 한다. 이처럼 물이 바위 밑으로 빠진다는 님딱바위, 물이 소용돌이치게 하는 두리소바위, 물길을 가로막는 기둥바위, 소뿔같이 삐져나온 소뿔바위, 숨을 쉬며 강물을 통째로 들이 켠다는 청룡바위 이런 바위무더기들을 에돌고 헤집고 하면서 대협문을 빠져나오고 나면 한다하는 뗏꾼들도 바지에 오줌을 싼다고 한다. 이처럼 뗏목이 룡바위까지 지나면 그제야 숨통을 돌리면서 “야, 이제야 돈내 난다”고 웃고 너스레를 떨면서 안도의 숨은 내쉬였다고 한다.

룡바위전설은 그처럼 고된 노동에 부대키며 억척스레 삶을 영위하여 온 우리 조상들, 그 뗏목꾼들의 한 많은 애환과 처절한 소망과 미래에 대한 동경이 아니겠는가.
 
▲ 뗏목이 구룡바위 지역의 험난한 수로를 헤쳐 내려가고 있다.     © 김승산 기자

 
 
<연길 = 글 : 장경률/ 사진 : 김승산 기자>
장경률 장경률의 다른기사 보기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 사람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장경률] 형제봉, 천평벌을 호위하는 병풍산 장경률 2013/05/19/
[장경률] 어린이를 대자연 품에 폭 안기게 장경률 2013/05/13/
[장경률] 항일독립운동의 성지, 연두봉 장경률 2013/03/10/
[장경률] 극한의 추위 속에 즐기는 빙설 축제 장경률 2013/01/15/
[장경률] 천불지산, 무학대사가 절찬한 천혜의 명산 장경률 2012/12/29/
[장경률] 오랑캐령 올라서니 삼합벌이 안겨 와 장경률 2012/12/13/
[장경률] 한왕산성과 오국산성 기각지세 이뤄 장경률 2012/11/20/
[장경률] 일엽편주에 민족의 애환을 싣고 장경률 2012/10/29/
[장경률] 수백년 간 조·중 인민들의 친선 이어져 장경률/김승산 2012/10/22/
[장경률] 백두산호랑이가 출몰한 호곡령 장경률/김승산 2012/10/06/
[장경률] 남강·마천령 산맥 두 마리 용이 춤추는가 장경률 2012/09/22/
[장경률] 남평, 봄꽃이 제일 먼저 피는 고장 장경률 2012/09/12/
[장경률] 연변 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돌 축제 ‘성황’ 장경률 2012/09/04/
[장경률] 연변 조선족 자치권리노래비 세워져 장경률 2012/09/04/
[장경률] 고대 유적과 비경으로 이름난 고성리 장경률 2012/08/31/
[장경률] ‘하늘 아래 첫 동네’, 두만강 1번지 숭선 장경률 2012/08/25/
[장경률] 백두산 정상에 오르다 장경률 2012/08/15/
[장경률] 중국 연길서 우리 말글 시상식 열려 장경률 2012/08/10/
연재소개 전체목록
형제봉, 천평벌을 호위하는 병풍산
항일독립운동의 성지, 연두봉
천평벌, 유서 깊은 겨레의 개척지
대소, 시루봉이 옹위하는 대우동골
천불지산, 무학대사가 절찬한 천혜의 명산
오랑캐령 올라서니 삼합벌이 안겨 와
한왕산성과 오국산성 기각지세 이뤄
일엽편주에 민족의 애환을 싣고
수백년 간 조·중 인민들의 친선 이어져
백두산호랑이가 출몰한 호곡령
남강·마천령 산맥 두 마리 용이 춤추는가
남평, 봄꽃이 제일 먼저 피는 고장
고대 유적과 비경으로 이름난 고성리
‘하늘 아래 첫 동네’, 두만강 1번지 숭선
두만강의 발원지 적봉
백두산 정상에 오르다
오늘의사진
6.15 10.4 자주통일평화번영결의대회
많이 기사
  개인정보취급방침사람일보소개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대전 동구 동부로 55-58 603동 306호(판암동) ㅣ 전화 : (02)747-6150 ㅣ 전자우편:saram@saramilbo.com
등록번호 : 대전, 아00255 제호:사람일보ㅣ창간일: 2003년 6월 15일ㅣ발행·편집인 박해전ㅣ후원 : 하나은행 555-810120-77607 박해전
Copyright ⓒ 2003~2017 saramilbo.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 saram@saram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