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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의 <우리 말글 살리기>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가 부른 ‘고질병’
1994~1995년 정책과 세상 돌아가는 꼴 살피기
기사입력: 2010/05/08 [11:0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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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무너진 성수대교.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 자료 사진

나는 2010년 4월 20일 대전시 유성구청(구청장 진동규)이 새로 생기는 마을의 행정 명칭을 외국어로 짓겠다고 해서 그 잘못을 일깨워주려고 대전시 유성구청에 간 일이 있다. 그 때 유성구청장이나 구의원, 유성구민이 모두 제 나라말을 버리고 영어로 마을의 이름을 짓는 게 세계화로서 잘하는 거로 생각하는 걸 보고 놀랐다. 그런데 내가 사는 서울의 구청장도  한글과 우리말 지키기 운동이 세계화 시대에 거스르는 거로 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마치 토종 한국인으로 살려는 내가 한국에서 바보가 된 기분이다. 도대체 한국 사람이 한국 정부에 한국말과 글을 쓰자고 할 수밖에 없는 꼴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바보 멍청이가 되니 이 나라가 언제 제 정신이 들 지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김영삼의 국제화, 세계화가 15년 만에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된 것을 확인하고 그 정책 결정과 시행초기 모습을 많은 분들과 함께 살펴보려고 15년 전 내가 모아 논 신문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 때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15년 전 철저한 준비와 대비책이 없이 조급하게 밀고 나가는 국제화 세계화는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발 벗고 반대하고 막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진짜 점쟁이처럼 그 3년 뒤에 기업은 외국 투기자본의 밥이 되고 나라살림이 망가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그 세계화가 계속 우리 발목을 잡고 있기에 그 문제점을 짚어보련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1993년 11월 21일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대통령의 국제화”라는 제목으로 “국제화에서  영어와 한자를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고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김영삼은 1994년 초에 ‘국제화 원년’이라면서 국제화추진위원회, 교육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영어조기교육과 한자조기교육을 하겠다면서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날마다 떠들어 댔다. 그래서 국민은 혼이 빠지고 얼떨떨해 하면서 불안해했다. 공무원들도 들떠있었고 무엇이 자기가 할 일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3월 25일 신문에 한 대학생은 “공무원도 일반인도 이제 영어 하나만큼은 해야 살 수 있다고 영어공부와 걱정만 한다. 나도 10년을 영어 공부했는데 한마디 말을 못한다. 영어 공부나 하자.” 외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국제화'가 초래한 '영어 망국 열풍'

온 국민이 국제화와 영어에 정신이 빠져있다. 제 자리에서 착실하게 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그 해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땅 속에서까지 큰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고 죄 없는 국민이 떼죽음을 당했다. 3월에 종로구 통신공동구에 불이 나고, 4월에 과천선 개통 후 8일 동안 21번이나 갑자기 서고, 8월에 삼량진 열차 충돌사고가 나고, 10월에 성수대교가 무너지더니 3일 뒤에 충주호 유람선이 불타고, 12월에 아현동 가스가 폭발해서 수  많은 목숨을 빼앗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그밖에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데 김영삼 정권은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처럼 여긴다. 그리고 연말에 아시아태평양 회의에 다녀오더니 세계화 구호를 요란하게 외치며 국민들 정신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 그 큰 사고 원인이 전부터 생긴 거라고 해도 그때 공직자나 기업과 국민이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면 얼마든지 예방하고 막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성남시 분당아파트에서 살고 일터가 서울이어서 날마다 성수대교를 건너서 출퇴근을 했다. 다리가 내려앉기 1년 전부터 다리에 구멍이 나서 철판을 깔아놓기도 했고, 큰 차가 옆에 지나가면 다리가 흔들려서 날마다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그 몇 달 뒤에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때 다리에 구멍이 나서 철판까지 깐 서울시 공무원들이 그 다리가 위험하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 정신이 다른 데로 빠져서 그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이다. 나는 요즘 박사 학위까지 있다는 구청장들과 또 다른 공무원들이 세계화를 지껄이며 제 겨레말을 헌신짝 보듯 하는 것을 보면서 그 때 불안했던 일이 떠올라 이 글을 쓰고 있다. 두 번 다시 그런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때 신문에 보인 세상 모습을 소개하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국제화 원년이라는 1994년 2월 22일 김경순 세계은행자문관은 한 신문에 쓴 시론에서 “정부는 국제화를 주도하기보다 건전한 방향제시나 민간분야의 자생력을 회복하는 데 보조역할을 하는 정도로 그쳐주었으면 좋겠다.”고 쓴다. 그러나 정부는 설익은 정책을 마구 쏟아낸다. 1994년 3월 26일 서울시 교육청은 96년부터 영어를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친다고 발표한다. 3월 10일 한겨레신문은 ‘지구촌 풍경’에서 “미 사립학교 살리는 한국 유학생”이라며 영어 조기유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린다. 1994년 10월 4일 한겨레신문은 “무역수지 적자행진 계속, 9월에도 5억 달러 적자”라고 쓰면서 나라를 걱정한다.

그리고 1994년 5월 19일 중앙일보는 “허울뿐인 국제화위원회니 뭐니 위원회만 요란하고 각종 생색용 과제와 교육으로 진짜 일은 할 수가 없어 공무원 생활에 흥미를 일었다. 상공부 모 과장은 사표를 내고 공인회계사 사무실 냈다.”고 쓰고 있다. 9월 15일 한겨레는 “개혁 실종이 공직부패 키운다. 경악스런 공직 부패지수, 느낌 쫓는 즉흥정책 혼선 초래”라는 기사로 김영삼 정부를 타이른다. 그런데 그 때 모신문사의 이종구 국제부장은 ‘국제화와 배타주의’라는 제목으로 외제를 무조건 배격하고 국제화 열기가 식은 것을 탓한다. 그러나 서울신문 최택만 논설위원은 9월 8일치에 “고소득층 과소비 자제해야 한다. 해외여행비가 늘고, 외제차 판매가 급증한다. 2세들에게 절약과 근검정신을 심어야 한다.”라고 걱정했다.

그런데 11월 18일 한국일보는 김영삼 대통령은 그런 걱정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호주에서 “개혁에서 변화로 국정목표 전환, 차세대 위한 세계화 구상”을 선언했다. 11월 20일 귀국해서 “세계로 미래로 뛰자”면서 “세계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라고 큰소리로 떠든다. 그러나 경제부처 장관도 집권당 당직자도 그 세계화가 무언지 몰라 헤맨다. 한 신문 기사에서 기획원 장관 주재로 4시간이나 토론을 하고 나온 한 참석자는 “지금까지 올해를 국제화 원년으로 정하고 각종 작업을 추진해왔는데 갑자기 세계화로 바꾸라니,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쓰고 있다. 집권당 김종필 대표와 당직자들도 세계화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장님들 코끼리 만지듯 저마다 딴 소리를 하고 있었다.

'국제화에서 세계화'로...나라 경제는 낭떠리지로

1994년 12월 6일 치 한겨레신문은 “개인 외화보유 자유화, 해외예금 3만 달러까지, 여행경비도 2배로 늘려”라며 경제를 걱정한다. 2월 23일치 서울신문은 “외제 선호 병 다시 기승, 거의 사치품 과소비 풍조 심각”이라는 제목으로 “물가안정을 위해서 밀과 옥수수 등 어쩔 수 없이 들어오는 수입액은 20%이고 거의 사치품이다. 국제화의 영향이었다.”고 보도했다. 해외 조기 유학과 여행으로 달러가 물밀듯 빠져나간다. 1995년 1월 3일 세계화 한다고 금성사는 회사 이름을 LG로 바꾸고, 이어서 선경이 SK로 바꾼다. 1995년 1월 22일 서울신문은 “세계화 교육개혁 최우선 추진, 영어조기교육 강화한다.”고 쓴다. 1995년 5월 2일치 한겨레신문에 김태동 교수도 정부가 잘못한 것 열 가지를 알려주면서 “이렇게 잘못한 게 많은 데도 정부는 자화자찬이 심하고 국제화 추진 일 년도 안 돼 세계화를 추진하는 등 구호정치로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 타일렀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끄덕도 하지 않고 “세계화는 선진국이 되는 길, 세계 1등만이 산다.”면서 영어 조기교육을 강화하는 등 세계화를 외친다. 1996년 7월 29일 중앙일보는 “경제관료, 일도 익히기 전에 툭하면 이동. 정책 전문성 설 틈이 없다. 재경원과 건교부 국장 2년 새 4명 교체”라고 말한다. 경제는 엉망인데 경제정책 전문가도 없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때 하이텔통신에 김영삼이 외국에 한번 갔다 오면서 ‘국제화’ 한다더니 두 번째 다녀오더니 ‘세계화’를 한다고 하는 걸 보면서 다시 외국에 갔다 오면 ‘우주화’를 한다고 하다가 망국화로 갈 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세계화는 1997년 1월 한 신문에 “되살아나는 외채 망국론, 94년 이후 증가율 년 30% 넘어, 작년 말 1100억불 세계 3위, 단기외채 60%로 심각”이라고 나타난다. 1월 14일 경향신문도 “국제수지 위험수위, 무역적자 200억불 첫 돌파”라며 걱정했다. 1997년 1월 5일 경향신문은 “어른 사치병, 동심은 허영병, 고가수입 어린이용품 선풍, 외제 없으면 못 어울려, 초등생이 수표 써”라고 보도한다. 이제 갈 때가지 간 것이다. 그때라도 심각함을 알아야 하는데 김영삼은 솔직하게 국민과 기업에 호소하고 대비책을 세우지 않고 계속 흥청망청한다. 결국 그해 연말에 국제통화기금의 경제 식민지가 된다. 그리고 회사는 외국인 손에 넘어가고 일터를 잃은 노숙자가 서울역 지하도를 메운다. 국민은 금모으기를 한다.
 
 
1996년: (주)건영(현 LIG건영), 우성건설 부도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 (현 현대제철) 부도
1997년 1월 30일: 한보건설및한보그룹 최종 부도 처리
1997년 4월 7일: 한보 청문회(4/7~4/25)
1997년 3 ~ 6월: 삼미, 진로그룹, 대농, 한신공영그룹 등 대기업 연쇄 부도
1997년 5월 2일: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20->23%)
1997년 7월 15일: 기아그룹 협조융자 신청, 사실상 부도, 청와대 확대경제장관 회의.
1997년 8월 15일: 재경원 종금사에 외화자금 긴급지원 검토, (3억$이상)
1997년 8월 25일: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 대책
1997년 8월 27일: 무역관련 자본자유화 폭 확대조치 시행
1997년 8월 30일: 재경원 증시 안정대책 발표
1997년 9월 1일: 무디스 방한 협의(9.1~5),주식매매수수료 자율화 시행
1997년 9월 10일: 산업은행 외환채권 발행(15억불)
1997년 9월 19일: ASEM 재무장관 회의 및 IMF/세계은행 총회 부총리 참석
1997년 9월 22일: 진로그룹에 대한 6개사 법정관리를 신청
1997년 9월 29일: 외환시장 개장 40분만에 대미달러 환율이 1일 변동폭 상한선인 964원까지 상승, 사실상 거래 중단
1997년 10월 15일: 쌍방울그룹 부도
1997년 10월 16일: 태일정밀 부도, IMF 조사단 한국방문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 경제 일지- 위키백과사전 자료]

내가 김영삼의 세계화 정책 흐름을 살펴본 것은 일반인의 눈에도 뻔히 보이는 망국의 길을 다시 가지 말자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때 세계화를 부채질하던 학자와 언론인과 경제 관료가 지금 국회의원도 하고, 그 때 공무원들이 정부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그때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게 하고 나라 말과 경제를 망친 대기업들도 공적자금을 물 쓰듯 하며 그 뒤 더 잘살고 있다. 이들은 지금 내가 이렇게 설명해도 이해하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보고 헛소리한다고 할 것이다. 지금도 성수대교에 구멍이 난 거처럼 무너질 게 많은데 정부와 공무원은 모르고 있다. 또 다시 착한 백성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꼴을 보지 않기를 두 손을 모아 빈다.
 
▲ 1994년 일간지 보도 자료, 사고 대책은 뒷전이고 세계화와 영어 조기교육만 외치고 있다.     ©이대로


<이대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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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참말로> 논설위원은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과 한글과 우리문화의 세계화에 힘쓰고 있다. 1967년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 창립 초대 회장 1990년 한말글사랑겨레모임 공동대표 1994년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 조직위윈장 1997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2004년 한글날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사무총장 2008년 중국 절강성 월수외국어대학 한국어과 교수 2009년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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