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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세계
프랑스시민들이 '마크롱 처형' 외치는 이유
프랑스 전역에서 잇따른 대규모 시위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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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2/0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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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함께 유럽연합(EU)을 떠받쳐 온 프랑스의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프랑스 전역에서 잇따른 대규모 시위다. 

 

▲ 도로를 점거한 트랙터.  ©  KBS 화면 갈무리.

 

프랑스에서는 오랫동안 시위와 파업이 일상·문화처럼 여겨져 왔다. 예컨대 시위 현장에서는 “마크롱 퇴진” 구호와 함께 “우리는 루이 16세를 처형했다. 마크롱도 똑같이 만들어줄 수 있다”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불타는 거리에서 유유히 식사 중인 파리 시민들 ‘화제’」, YTN, 2023.3.29.)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처단된 루이 16세는 절대왕정의 부정부패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비교할 정도로 프랑스 국민의 분노가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0%대에 그친다. 

 

이런 분위기에서 마크롱 정권은 새해 초 트랙터 등에 쓰이는 경윳값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농민 수만 명은 트랙터 수천 대를 끌고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프랑스 최대 규모 농산물 도매시장인 남부의 헝지스 시장, 북동부 스트라스부르 등 프랑스 곳곳이 트랙터로 뒤덮였다.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며 수도인 파리 진격 투쟁까지 선언했다.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부장관은 농민들이 프랑스 전역에서 고속도로 등 100여 곳 이상을 점유했다고 밝혔다.

 

농민들의 시위에서 눈에 띈 건 어린아이, 청년, 중·장년, 노년 등 세대를 가리지 않은 참여다. 특히 농민들의 자녀인 어린아이들은 ‘내가 미래에 당신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농민을 구하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등의 구호를 내걸었다. 어떤 이들은 트랙터의 고속도로 통행을 가로막는 경찰을 앞에 두고 프랑스산 밀가루로 만든 빵을 건네며 ‘빵을 받는 대신 협상하자. 농민들을 위해 달라’라고 제안했다.

 

좁은 골목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간 트랙터는 시청 등 공공시설 앞에 분뇨와 돌, 달걀을 쏟아붓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경찰이 트랙터의 통행을 막으려 쳐둔 바리케이드를 치웠다. 또 어떤 이들은 대형마트에 진열된 농산물을 짐수레에 한가득 싣고 나와 길바닥에 버리는 집단행동도 벌였다.

 

그렇다면 프랑스 농민들은 왜 이런 시위와 행동을 시작한 걸까.

 

이번 시위의 본질은 낭떠러지로 떠밀린 농민들의 생존 투쟁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농민 인구는 전체 인구(대략 6,488만 명)의 1.5%인 90만 명 정도에 그친다. 프랑스는 식량자급률이 150%를 넘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농업 강국인데, 그것을 전체 인구의 1.5%인 농민이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가 2월 2일 ‘법률저널’에 기고한 칼럼 「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EU·중앙정부·지방정부가 농민들에게 지급하는 직불 농업 보조금 비중이 80%에 이른다고 한다. 농업 보조금 없이는 소농들이 농사를 이어가기조차 어려운 구조다. 예를 들어 경윳값 등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기면 소농이 받는 피해가 막대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경윳값 인상을 발표하자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거리에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뜩이나 힘든 농민들의 처지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바로 마크롱 정권의 우크라이나 지지-러시아 적대 정책이었다.

 

이번 트랙터 시위는 2월 1일(프랑스 현지 시각) EU 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 지난 1월 18일부터 EU 회원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EU 지도부가 하는 우크라이나 농산물, 소속 회원국의 농민 지원 논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다. 이 가운데 프랑스에서 벌어진 농민 시위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유럽 농민들이 시위에 나선 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비료 등의 물가 폭등과 우크라이나에 특혜를 주는 EU의 정책 때문이다. 대다수 EU 회원국이 그렇듯, 프랑스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우크라이나 지지-러시아 적대 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비료의 원료인 러시아산 암모니아와 암모니아를 만들 수 있는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프랑스에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고, 비료 가격은 나날이 뛰어올랐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대량으로 프랑스에 들어오면서 프랑스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그런데도 마크롱 정권은 러시아 적대 정책을 고수하며 자국 농업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프랑스는 EU의 기준에 따라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 도왔다. 마크롱 정권은 프랑스에 들어오는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을 면세했다. 또 환경 보호를 명목으로 자국 농민들이 EU에 보조금을 신청할 때, 환경 보호를 위해 농경지의 최소 4%를 휴경지로 둬야 보조금을 준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프랑스 농민들의 살충제 사용을 줄이거나 금지했다. 

 

문제는 EU가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에는 아무런 규제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자국민만 차별하는 이중 기준 속에서 농민들은 더더욱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을 프랑스로 들여오는 유통 과정에서 대기업화된 극소수 대형 농장만큼은 배를 불렸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EU를 따른 마크롱 정권의 우크라이나 지지-러시아 적대 정책이 자국 농민들을 낭떠러지로 몰아넣은 셈이다. 농민들이 대규모 트랙터 시위를 주도한 데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다.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89%가 농민들의 시위를 지지했다. 또 프랑스 국민 94%는 ‘프랑스 농민들에게 요구되는 농산물 재배 기준을 수입 농산물에도 똑같이 요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긍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들이 강경하게 시위를 이어가는 가운데 여론까지 나빠지자, 경찰을 동원해 트랙터의 파리 진격을 막겠다고 엄포했던 마크롱 정권은 일단 고개를 숙였다. 

 

또 마크롱 정권은 자국 농민을 상대로 한 환경 규제를 보류하고,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입 제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축산 농가에 1억 5,000만 유로(대략 2,167억 원)를 지원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EU 회원국 27개국이 모두 만장일치 합의를 이뤄야 하고, 마크롱 정권이 약속을 뒤집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마크롱 정권은 EU와는 상관없이 별도의 국내용 정책도 발표했다. 농산물의 생산 가격이 오를 경우 농민들이 유통 업체에 가격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한 ‘에갈림법’을 강화하겠다고 한 것이다. 마크롱 정권은 제조 업체와 슈퍼마켓 체인이 유통 가격을 제대로 매기고 있는지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농민 단체는 마크롱 정권의 발표를 환영하며 트랙터를 동원한 봉쇄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언제든 새로운 방식으로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아르노 루소 프랑스 전국농민연맹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투쟁은 끝나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라면서 “정부의 발표가 가짜인지를 지켜보고 만약 가짜임이 드러날 경우 그 후폭풍은 엄청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크롱 정권이 내놓은 안이 농민들을 위한 근본 대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립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를 볼 때 마크롱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 동안 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9일 마크롱 대통령은 분위기 전환을 노리며 아탈 총리를 임명했다. 위기에 몰린 마크롱 대통령은 34살로 ‘역대 최연소 프랑스 총리’인 아탈을 얼굴마담으로 앞세워 프랑스 국민의 분노를 누르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오히려 프랑스 국민의 분노가 더욱 커질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마크롱 대통령이 총리만 갈아치웠을 뿐. 프랑스 국민을 고통에 빠트린 우크라이나 지지-러시아 적대 정책은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마크롱 정권에서 프랑스의 경제·사회 상황 전반은 갈수록 나빠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해 보인다. 프랑스의 EU 내 입지가 큰 만큼 유럽 전반에도 후폭풍이 밀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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